행복의 정원/생활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친다

풍월 사선암 2008. 12. 24. 19:14

 

[권대우의 경제레터]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친다


2008년이 저물어갑니다.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에송년모임도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늦은 저녁 길거리 풍경이 그렇고 여의도나 강남의 식당가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긴 불황터널 속에서두려움의 공포도 없지 않습니다.

앞으로 불황의 골이 더 깊어지리라는 예상 때문입니다. 우리경제는 물론이고 세계경제 불황의 끝이 어딘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앞이 캄캄한 것입니다.


백수와 半백수를 합친 인구가 317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그렇고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는 자산가치의 붕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포스코가 창사이래 첫 감산에 들어갔고 LG디스플레이의 파주, 구미공장이 휴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며 위기의 전염병이 빠른 속도로확산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버락 오바마 차기 미국대통령 당선인은 최대 1조 달러를 투입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공황으로 가느니 차라리 거품이 낫다는 판단에서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무제한 달러를 찍어 풀겠다는 뉴스도 눈에 띕니다.


우리나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지금 문제는 속도다.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 붙여야 성공할 수 있다. KTX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들도록 정책을 신속하게 집행해야한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이 말이 섬뜩하면서도 국민들은 “그렇게 급하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위기 땐 일하다 접시 깬 공무원이 더 낫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기 위한 비상대책 물론 중요합니다. 무제한 돈을 푸는 것도 중요합니다. KTX가 달려 가는듯한 정책의 집행속도 역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뭘까 생각하던 중 문득 문병란 시인의 ‘희망가’가 떠올려졌습니다.

  

희망가 - 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인생행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그렇습니다. 한편의 詩가 이처럼 삶의 동력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우리경제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암울하기 때문일까요?


‘시련없이 성취는 오지 않는다, 단련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뜬다’는 소중한 생각들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연말인 것같습니다.


문병란 시인의 ‘희망가’는 김승연 한화 회장의 애송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난달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이 시로 그룹 내 수험생 가족들을 격려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우리은행의 이종휘 은행장이 임원진과 비즈니스클럽 회장단 송년모임에서 이 시를인용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 역시 ‘희망가’가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아 최근 한 송년모임에서 써먹어 봤습니다. 반응이 무척좋았습니다.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우는데 힘이 됐다는 말들을 했습니다. 詩가 주는 힘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송년회였습니다.


누가 뭐래도 시간은 가게 돼 있습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잡아매 둘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천지창조의 이치입니다. 이를 거스르면 인간은 벌을 받게 돼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의 흐름에 잘못된 것, 실수는 떠내려 보내고 새로운 출발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나가는 시간이 제대로 마무리되고 다가오는 시간을 희망과 새로움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주말입니다. 12일 후면 2008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08년은과거 속으로 묻혀버릴 것입니다. ‘희망가’를 떠올리며 가는 해를 아쉬워하기보다는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를 생각하는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겨울이 추우면 봄볕은 더 따스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이코노믹리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