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시월 새벽 - 류시화

풍월 사선암 2008. 10. 5. 17:14

 

 

시월 새벽 - 류시화 


1

시월이 왔다


그리고 새벽이 문지방을 넘어와 차가운 손으로

이마를 만진다

언제까지 잠들어 있을 것이냐고

개똥쥐빠귀들이 나무를 흔든다

 

  

2 

시월이 왔다  


여러 해만에 평온한 느낌 같은 것이 안개처럼 감싼다

산 모퉁이에선 인부들이 새 무덤을 파고

죽은 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3 

나는 누구인가  


저 서늘한 그늘속에서

어린 동물의 눈처럼 나를 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 그것을 따라가 볼까

 

 

4 

또다시 시월이 왔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침묵이 눈을 감으면

밝아지는 빛이 여기에 있다

 

 

5 

잎사귀들은 흙 위에 얼굴을 묻고  


이슬 얹혀 팽팽해진 거미줄들

한때는 냉정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그럴수록 눈물이 많아졌다

이슬얹힌 거미줄처럼

내 온 존재에 눈물이 가득 걸렸던 적이 있었다

 

 

6 

시월 새벽, 새 한 마리

가시 덤불에 떨어져 죽다  


어떤 새는 죽을 때 가시 덤불에 몸을 던져

마지막 울음을 토해내고 죽는 다지만

이 이름없는 새는 죽으면서 무슨 울음을 울었을까

 

 

7 

시월이 왔다  


구름들은 빨리 지나가고

곤충들에게는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하리라

곧 모든 것이 얼고 나는 얼음에 갇힌 불꽃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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