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슬픔에게 - 원성스님

풍월 사선암 2008. 10. 2. 10:45

슬픔에게


슬픔이라 일컫는 그대여!

안녕 하신가?


그대를 애타게 기다려 온 나는

가슴이 여린 사람인가 보오.


가끔씩은 그대와 함께

삶을 엮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고맙게도 너무 자주 찾아 주니

정말 반갑구려.


내 성숙의 키를 자라게 하는 그대는

착한 마음의 소유자인가 보오.


또 다시 그대 내게로 가깝게 온다면

기꺼이

기꺼이

눈물을 준비하고

행복스레 맞이하리다. 

 

 

나 자신을 바라보면은


늘 그렇다는 건 아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듯한 멍한 기분, 현실 속의 내가 본연의 모습을 잃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마치 먼 하늘에 둥실 떠 있는 풍선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 순간 내가 살아 숨쉬는 나 자신에게서 멀어져 버린 불분명한 몽상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늘 그렇다는 건 아니다.

복잡한 도시의 길거리를 걷다가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환영과도 같은 허상이고 멈추어진 시간에 또 다른 차원의 공간 속으로 정처 없이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삶이 현실을 직시하고 있지 않음을 자각한다.


늘 그렇다는 건 아니다.

즐겁고 유쾌한 일로 웃고 있다가도, 괴롭고 슬픈 일로 울고 있다가도 순간 웃고 있는 내가, 울고 있는 내가 나의 참모습이 아님을 느낄 때가 있다.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내 안의 내가 몰아치는 감정에 휩싸여 있음을 알게 된다.

  

늘 그렇다는 건 아니다.

깊은 계곡에서 맑은 달빛 아래서 한 호흡을 하고 있는

대지와 하늘과 공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육신과

영혼에서 벗어나 대자유의 적정寂靜만이 느껴질 때,

참나眞我의 모습은 형상이 없는 고요한 우주임을 알게

된다.


늘 그렇다는 건 아니다.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이 진정 내 모습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계속 내 참모습을 찾아 거울을 바라

보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숨이

막혀 오는 것을 느낀다. 육신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

중간에서 고독한 내 본연의 모습에, 아직 나 자신이

열리지 않은 미완성의 인간임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면 그렇듯 생활 속에서

지나 치기 쉬운 여러 가지 일깨움이, 새로운 발견이

나 자신의 마음 문을 열게 해준다.

그다지 훌륭한 문체의 유려한 글도 아니지만, 특별한

이야기나 남다른 교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없이

내 안의 나, 참나에게로 인도해 준다.

그것은 아마도 벌거벗은 참나의 모습이 아이들과 같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 있어서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마세요.

그만큼 아픔 또한 클 테니까요.


더이상 나를 미워하지 말아요.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괴로울 테니.


차라리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면

나 역시 마음이 편하겠지요.

떠나보내는 슬픔이 클수록 나도 가슴 아파요.


아껴주고 보살펴주었던 그대 친절함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내겐 너무도 큰 짐이 되어 버렸어요.

앞서가는 그대 마음을 따라갈 수 없어..

그대 생각 속에 머무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이젠 내 마음에서 그대 잊혀지길 기다릴 뿐이에요.

내 안의 그리움이

내 안의 기다림이

나를 마르게 해요.

 

나를 사랑하게 했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워...

마음 안에 그려 왔던 망상들이 죄스러워...


더이상 나만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으려해요.

그러함에 더 힘들어야 할 그대 아픔을 알고 있기에

이젠 그대 마음에서 내가 잊혀지기를 기다릴 뿐이에요.


정겨웠던 시간들도, 아름답던 기억들도

번뇌의 머리칼과 함께 태워 버리고

당신을 잊기 위해 나 떠나요.


그대 사랑했던 것만큼이나

그 긴긴 시간을 호올로 고독해야 할 거예요.

차라리 그게 나아요.

차라리 그게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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