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오십대의 애수(哀愁)

풍월 사선암 2008. 9. 26. 23:43

 
 
오십대의 애수(哀愁)
 
나는 나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시골장터에 엄마랑 손잡고 홍시 얻어먹기 위해 따라 가고,
동무들과 학교 가는 길엔 아직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개울물에서는 미꾸라지 와 송사리 떼가
검정 고무신으로 퍼 올려 주기를 유혹하고,

학교 우유가루 배급이 유일한 간식 이였고
고아원 패거리들이
가장 싸움을 잘하는 이유를 몰랐던 그때,
어린 시절에 보리 고개를 보낸 우리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생일 때나 되어야
도시락에 계란 하나 묻어서 몰래 숨어서 먹고,
아버지 밥그릇 속에 몰래 넣은 계란
아이들이 볼까 몰래 넣은 엄마의 아빠 사랑

소풍 가던 날 리꾸사꾸 속에
사이다 한 병 , 계란 세 개, 사탕 한 봉지 중
사탕 반 봉지는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들을 위해
꼭 남겨 와야 하는 걸 이미 알았던 그 시절에도
우리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일본 식민지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6.25 때 엄마 등에 업혀가다가 걸어가라 팽개쳐 질 때 설움.
저녁 밥상머리에서 빼놓지 않고 이야기 할 때마다
엄마 아빠는 일본말로 비밀 이야기 하고,
말없이 감자와 물을 먹으며........

누-런 공책에 바둑아 이리와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
침 묻힌 몽당연필을 쓰다가 .......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잠들 때에 우리는
역시 이름 없는 세대였다.

한글 배우기 시작 할 때부터 외운 뭉치면 산다는 반공 교육,
대통령은 당연히 이승만 혼자인 줄 알았고.
무슨 이유든 나라 일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빨갱이라고 배웠으며,

학교 골마루에서 고무공 하나로 편 갈라 시합해
고추사탕 유과사탕 따먹기 하고
엄마 몰래 들 기름병 갖다 엿 바뀌어 먹고,
우리는 이름 없는 그런 세대였다.

일제세대.
6.25세대.
4.19세대.
5.18세대.
모래시계세대.
자기주장이 강했던 신세대 등
모두들 이름을 가졌던 시대에도.

가끔씩 미국에서 건너온 베이비붐세대 혹은
6.29 넥타이 부대라 잠시 불렸던 시대에도.
우리는 자신의 정확한 이름을 가지지 못했던....
향토 예비군이라 불림의 세대였다.

선배 세대들이 꼭 말아 쥔 보따리에서
구걸하듯 모아서 겨우 일을 배우고
혹시 꾸지람 한 마디에 다른 회사로 갈까 말까 망설이고,
후배들에게 잘 보이려고 억지로
요즘 노래 부르는 늙은 세대들...

어느 날 자다가 불안하여 돌아보니
늙은 부모님은 모셔야하고 아이들은 어리고,
다른 길은 잘 보이지 않고
벌어 놓은 것은 한 겨울 지내기도 빠듯하고
은퇴하기에는 너무 젊고 도전하기에는 늙은 사람들,

회사에서 이야기하면 알아서 말 잘 듣고,
암시만 주면 짐을 꾸리는 세대.
주산의 마지막 세대이자,
유교사상이 투철한 부모님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
아이들을 독재자로 모시는 첫 세대.
늙은 부모님 모시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정작 자신들은

성장한 자식들과 떨어져 쓸쓸한 노후를 보냄을
받아들여야 하는 첫 세대.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처와 부모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아이들도 가정을 꾸려 독립 해 나가고
로맨스 사랑도 잃어가는
이제 우리는 우리를 퇴출세대라 부른다.

60대는 이미 건넜고.
30대는 새로운 다리가 놓이기를 기다리는....
이 시대의 경제보다 과거를 뒤집고 있는
위태로운 다리 위에서,
바둑돌의 사석이 되지 않기 위해기를 쓰다가.

늦은 밤 팔지 못해 애태우는
어느 부부의 국화빵을 사들고 와서
아이들 앞에 내놓았다가 아무도 먹지 않을 때.
밤늦은 방구석에서 혼자 우물거리며 먹는 우리를.....

모두들 이름을 가지고 우리를 이야기 할 때도
이름 없는 세대였다가.
이제야 당당히 그들만의 이름을 가진.
기막힌 세대 바로 이 땅의 오십대.
고속성장의 막차에 올라탔다가
이름 모르는 간이역에 버려진 세대.

이제 나 라는 것 보다 는
우리를 퇴출 이라고 부르는 세대.
진정 우리는 이렇게
불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돌아올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