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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열풍] (2) 초등생 토플보고 중학생 美교재 ‘달달’

풍월 사선암 2008. 6. 30. 06:40

 

[특목고 열풍, 초·중교육 무너진다] (2) 초등생 토플보고 중학생 美교재 ‘달달’

 

특목고를 준비하는 초·중교 학생들은 우리나라 교과과정을 배우지 않는다. 초등학생이 토플영어를 익히고, 중학생은 미국·영국 교재로 고교수학을 공부한다. 과학고 지망 중학생은 여기에 물리·화학의 대학 전공서적까지 섭렵한다.


짧게는 1년에서 3년 이상 앞선 선행학습은 모두 학원에서 이뤄진다. 중·고교 교과서만 공부해 특목고에 들어간 학생은 없다. 학교가 ‘독서실’처럼 분위기가 바뀐 지 오래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학원 관계자들 모두 “사교육없이 특목고 합격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미 고교 교재·대학 전공서적이 수험서=지난 24일 오후 9시 서울 목동의 한 특목고 전문학원. 외고반 중학교 2학년생 20여명이 고등학생도 풀기 어려운 수열·조합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고1 때 배우는 조합원리와 수열 공식 여러 개를 동원해야 풀 수 있는 ‘창의사고력’ 수학문제다. 몇년 전부터 외고 입시에 등장해 지금은 당락을 결정짓는 문제 유형이다.


학생들은 이를 익히기 위해 미국 수학 교재로 공부중이다. 책은 미 고교생들이 1년에 한 번씩 치르는 수학문제들이 연도별로 정리된 것이다. 학원장은 “매년 미국이나 영국 고교의 중간·기말고사 문제, 교과서 일부분을 번역해 창의사고력 수학교재로 활용한다”며 “우리나라 중·고교 교과서엔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외국 고교 수학교재는 시작에 불과하다. 과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대학교 1·2학년 수준의 외국 전공서적을 번역해 본다. 올림피아드 입상 때 반영되는 가산점이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과학고 준비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올림피아드에 매달린다. 매년 열리는 수학·과학(물리·생물·지구과학·화학) 올림피아드에는 수만명의 응시생들이 몰린다. 화학 올림피아드의 경우 4∼5년 전 500여명이 응시했던 데서 지난해는 4700여명이 응시했다.


토플 230점(CBT) 이상의 영어 실력은 기본이다. 학원에서도 중1·2는 고교 수준, 중3은 토익·토플 수준의 단어를 가르친다. 영어듣기도 수능에 출제되는 듣기 수준을 넘어 토익·토플 듣기 문제를 참고한다. ‘영어는 기본, 외국어고의 경우 창의사고력 문제, 과학고는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입상’이 특목고 합격의 주요 공식으로 통한다.


◇학원이 학교다=서울 상계동 A중 2학년 박수진(14·가명)양에게는 학원이 학교다. 과학고를 목표로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일주일 내내 학원을 다닌다. 월·수요일은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토플 어학원, 화·목·금요일은 오후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수학 과외와 올림피아드 과학학원, 토·일요일은 물리 생물 지구과학 화학 보충수업이 있다. 주말을 빼고 일주일 내내 방과 뒤 반나절을 학원에서 보내고 새벽 2시에야 잠자리에 든다. 박양은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이 생활을 2년 넘게 하니까 적응이 돼 괜찮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과 노원구 상계동, 양천구 목동 등 서울의 특목고 학원 밀집지역은 365일 오후부터 새벽까지 수진이와 준석이 같은 ‘학원 키드’들을 쏟아낸다.


◇사교육없이 특목고 불가능=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실이 지난해 서울지역 6개 외고 신입생을 대상으로 고교 입학 전 학원수강 현황을 조사한 결과 98% 이상이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영외고는 지난해 신입생 289명 중 학원이나 과외도움없이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6명(0.02%)에 불과했다. 6개 외고 신입생 대부분이 과외보다 특목고 전문학원에 다녔고 명덕외고는 특목고 학원 출신 신입생이 82%에 이르렀다.


3개월 미만∼1년 이상 해외 어학연수 및 해외 거주 경험 학생도 적게는 14.2%(명덕외고)부터 많게는 63.3%(이화외고)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개발원 강영혜 실장은 “가계지출 중 교육비가 80% 이상을 넘는 학부모들이 많다”며 “교실에선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학생들간 위화감마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7.03.28 1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