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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열풍] (1) 서울 초등생 70%∼80% 학원행

풍월 사선암 2008. 6. 30. 06:32

 

[특목고 열풍, 초·중교육 무너진다] (1) 서울 초등생 70%∼80% 학원행

 

지금 초·중학교에서는 특목고 광풍이 거세다. 내신비중 확대, 외국어고 입시 지역제한 등 교육당국의 각종 제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학교 대신 특목고 준비 학원에 올인한다. 어린 초·중학생들은 학교에서 학원 숙제를 하고 학원에서 밤 11시까지 쉬지 않고 공부한다. 일부 어머니들은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들의 매니저로 나선다. 교육세습, 고교 평준화 종언(終焉) 등 섬뜩한 말들이 공공연히 횡행한다. 우리사회의 또 다른 교육 현실인 특목고 쏠림 현상의 문제점들을 짚어본다.


몇 년 전만 해도 특목고 입시는 강남과 목동 등 일부 지역과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문제였다. 하지만 특목고 출신들이 주요 명문대를 휩쓸고 일반고교보다 교육여건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특목고를 노린 사교육 광풍은 강남을 넘어 일반 중학교로 확산됐다. 준비 연령도 초등학생까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초·중학교 공교육이 학생들의 진학지도를 사실상 방기하는 사이 '상위권 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준비를, 안정적으로 하려면 4학년부터'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특목고를 좌우한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학원들이 아이들과 교육시장을 접수한 것이다.


◇특목고 열풍, 초등학생으로 확대=조모씨(41·주부)는 중 3학년 명성(가명)군과 초등 6학년 명인(가명)군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두 아들 모두 초등학교 때 영재교육원에 합격할 만큼 공부를 잘했고 현재 과학고를 준비 중이다. 조씨는 두 아들의 수학·화학·영어 학원비로 월 250만원을 쓰고 있지만 내심 큰아들의 과학고 입학을 포기한 상태다. 명성군은 중학교에 입학한 뒤 과학고 대비 학원에 들어가려다가 실패했다. "중학교 선행학습이 돼 있지 않다"고 하자 학원에서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둘째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특목고 준비학원을 시작했다. 조씨는 "엄마 치맛바람이라고 할까봐 큰아들을 미리 학원에 보내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학원가와 초·중학생을 둔 엄마들 사이에서는 '초등학생=영재교육원+영어 연수+학원', '중학생=영어 연수+특목고 대비 수학·영어·과학 학원 올인'이 특목고 준비 공식코스로 자리잡았다. 2006년 현재 3만2938명이 다니는 각종 초등학교 대상 영재교육기관은 사실상 특목고 준비코스쯤으로 인식되는 형편이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산하 수학·과학 영재교육원 초등부 경쟁률은 8대 1(330명 정원에 2640명 지원)로, 전년 4.8대 1에 비해 2배 가까이 치열해졌다.


특목고 정원도 계속 늘고 있다. 2007년 현재 전체 특목고(외고·국제고·과학고·영재고·자사고 포함)는 55개교에 정원이 1만1709명이다. 지난해보다 11%포인트 증가했다. 학원가는 "지방자치단체들간 설립 경쟁 등으로 초등학교 4∼6학년이 고교에 진학할 5∼6년 뒤에는 특목고가 100개(전체 인문계 정원의 5%)로 확대되며 특목고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학부모들은 교육인적자원부보다 학원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학원가에서는 서울의 경우 전체 초등생 70∼80%, 중학교 1학년생 50∼60%, 2학년생 30∼40%, 3학년생 30% 정도가 특목고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너지는 중학교 공교육=지난 20일 오전 10시30분 목동의 한 중학교 3학년 사회 수업시간. 재석(가명·15)군은 영어학원 숙제를 하고 있었다. 과학고 입시에는 사회 과목이 필요없고 영어·수학·과학만 내신에 반영된다. 사회 선생님도 모른 체했다. 강남 A중학교에 갓 입학한 김모(13)양은 외고 진학 준비를 위해 3개월 캐나다 어학연수를 계획 중이다. 한 달 정도 학교를 빠져도 학교에는 체험학습계만 내면 된다. 신월동의 중3 담임교사는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은 체육시험 등을 볼 때 외고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너한테 피해 안 가게 해줄게'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2000년 이전까지는 중학교 심화과정만 알면 특목고 도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시험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현재 특목고 수학준비학원은 중학교 1학년이 3학년 과정을 선행학습으로 끝내고 중 2년생이 고 1·2학년 과정에다 '창의사고력 문제'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 교육과정과는 다른 미국 등 외국 수학 교재를 공부한다. 이러다보니 중학교 수업이 재미있을 까닭이 없다. 목동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특목고에 맞춰 공부하다 보니 자꾸 앞서 나간다"며 "특목고 열풍에 중3 교실은 무너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내신이 반영되지 않는 3학년 2학기 수업시간은 '자는 시간'으로 인식된다. 강남의 B중학교 3학년 배 모 교사는 "학부모들이 짧게는 3일, 보통 1주일치 병원 진단서를 끊어와 수업에서 자녀를 빼가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고교평준화 사실상 해체=학원가·학부모·학생·교사 모두가 "사실상 옛날 명문고가 부활했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대 합격자 5명 중 1명(전체의 19%)이 특목고 출신이었다. 2004년 14%에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 서울의 6개 외고와 2개 과학고 졸업생 절반 가량이 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고·경복고·서울고 등 비평준화 시절 명문고 자리를 과학고·외고·강남 고교가 차지한 셈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홍우조 교수는 "특목고 열풍으로 중학교 교육까지 비정상화됐다"며 "이런 식으로 가면 평준화 제도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7.03.27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