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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조치훈 1300승

풍월 사선암 2008. 6. 23. 08:21

 

조치훈 1300승

 

1985년 일본 최대 바둑타이틀 기성전(棋聖戰) 7번 승부 마지막 판. 기성 조치훈과 도전자 다케미야가 맞붙었다. 61수가 지나 50분간 머리를 쥐어뜯으며 수를 읽던 조치훈이 착수를 한 뒤 비틀거리며 나갔다. "이것으로 한 집 반 이겼다." 복도에서 그가 중얼거리는 말을 지나가던 기자가 들었다. 100수 가까이 더 진행돼 159수에 바둑은 끝났다. 조치훈의 한 집 반 승이었다. 조치훈의 '100수 앞 수읽기'가 알려지자 일본 바둑계는 전율했다.


▶1983년 기성전 전야제에서 기성 후지사와는 도전자 조치훈에게 "네 판만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조치훈은 "세 판만 배우겠다"고 했고, 그 말대로 3연패 뒤 4연승했다. 1986년 기성전 때는 교통사고로 전치 6개월 중상을 입고도 "목숨을 걸고 둔다"며 휠체어를 타고 대국장에 나왔다. 평생 라이벌 고바야시에게 두 판이나 이기며 선전했지만 2대4로 졌다. 그는 8년 뒤 기성전에서 고바야시에게 설욕했다.


▶1990년대 초 일본 바둑 주간지가 '고금(古今)을 통해 누가 가장 강한 기사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조치훈이 1위를 차지했다. 현대 바둑 1인자로 군림했던 우칭위안(吳淸源)이 2위, 19세기 최고 기사 혼인보 슈사쿠(秀策)가 3위였다. 일본인들은 혼인보를 10연패하고, 기성·명인·혼인보 3대 기전을 싹쓸이하는 대삼관(大三冠)을 두 차례나 이룬 그의 기록보다 불꽃 투혼을 더 높이 샀을지 모른다.


 

▶조치훈이 지난 19일 기성전 리그에서 왕리청을 이기면서 통산 1300승을 올렸다. 린하이펑(林海峯)의 1324승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다. 그러나 여섯 살 적인 1962년 일본에 건너가 1968년 입단한 지 40년 2개월 만에 달성한 최연소·최단기간 1300승이다. 그는 통산 71회 우승이라는 대기록도 갖고 있다. 지난 3월 기성 도전기에서 3대3 동률을 이뤄 이 기록 경신과 일본 랭킹 1위 복귀를 눈앞에 뒀다가 막판에서 아깝게 졌다.


▶1980~90년대 조치훈의 활약은 한때 국내 바둑교실이 1000개를 넘기는 바둑붐을 일으켰다. 이세돌 박영훈 최철한 원성진 송태곤처럼 지금 세계 바둑계를 주름잡는 고수들이 이때 바둑돌을 잡았다. 52세 되도록 목숨을 던질 만큼 최선을 다하며 진정한 프로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조치훈의 열정은 지금도 한국 바둑인들에게 큰 힘이 된다. 그의 신기록 행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홍진 논설위원 / 2008.06.22

 

19일 현재 우리나라 기사가 보유하고 있는 생애 통산 최다승 기록은 조훈현 9단의 1,765승(716패 9무승부, 승률 71.1%)이다. 2위는 서봉수(1,433승 810패 3무승부, 승률 63.9%), 3위 이창호 (1,411승 419패, 승률 77.1%)이며 유창혁(1077승 542패 2무승부, 승률 66.5%), 서능욱 (923승 639패 5무승부, 승률 59.1%)이 그 뒤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