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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기사론/ 한국 여자9단 1호 박지은

풍월 사선암 2008. 4. 22. 19:47

 

新기사론/ 한국 여자9단 1호 박지은

 


처음이란 것은 언제나 설렘과 흥분과 감격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 대한 기억이 몽고반점처럼 우리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첫사랑이든 첫 기록이든 세상 모든 첫경험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은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30) 씨일 것이다. 첫 우주인인 데다가 여성이니 그 가치가 더 돋보일 터이다. 우주인이라는 신분의 희귀성과 여성. 이 두 가지 요소를 짝패로 삼을 것 같으면, 이소연 씨가 뜨기 직전 가장 주목받았던 여성으로는 한국 최초로 여자프로바둑 9단에 오른 박지은(25)이 있다.


살짝 털어놓을 것이 있다. 사실 박지은의 9단 등극에 대한 바둑계의 반응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뜨겁지 않았다. 이미 45명이나 되는 남자 9단들이 탄생한 데다가(초단보다 9단의 수가 많아져서 역삼각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 여성으로서는 국내1호였기는 하나 세계적으로는 3번째에 해당하는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입신(入神: 9단의 별칭)에 올랐다는 의미보다는 세계최강으로 군림하던 ‘반상여제(女帝)' 루이 나이웨이(芮乃偉) 9단을 제압하고 1회 원양부동산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를 석권하며 박지은의 시대를 열었다는 데 더 주목했다.


정작 대단한 관심을 보인 쪽은 비바둑계, 언론매체였다. 여자프로기사라는 직업도 생소한데 우리나라 최초로 최고 단(段)인 9단에 오른 게 더할 나위없는 뉴스감이었나 보다. MBC 뉴스데스크 팀은 인천공항에까지 달려가 귀국(2008. 1. 18)하는 박지은 9단을 인터뷰해 보도했고, KBS에서는 공항에서 곧장 박지은 9단을 픽업, 여의도 방송국으로 데려가 마감뉴스 초대손님으로 출연시키기까지 했다.

 


박지은시대 열었다


원양부동산배에서 우승하면 특별 승단규정에 따라 1단이 올라 9단이 된다는 건 알고 있었나? 욕심이 났을 텐데….


“알고 있었다. 물론 욕심도 났다. 하지만 크게 의미를 두진 않았다. 그런데 언론에서 ‘최초 여자9단'에 대한 관심이 무척 커서 놀랐다. 그 바람에 귀국하던 날 집에도 못가고…. 오후 4시 반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방송국으로 직행했다. KBS 마감뉴스 시간까지 메이컵 하고 질문지 보며 기다리다 출연을 마치고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했다.”


한국 여자기사로는 최초로 9단에 올랐는데 감회가 특별하지 않겠는가?


“특별한 건 없는데 맥심커피배 나갈 수 있어서 좋다.”


맥심커피배는 9단들만 나갈 수 있는 기전이다. 하나라도 더 많은 대회에 나갈 수 있어 기쁘다는 얘기다. 한국바둑사에 남을 ‘최초 여성9단'의 소감치고 너무 소탈하지 않은가. 자나깨나 바둑만 생각하는 못 말리는 아가씨다.


동료 여자기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현미진 4단) “후배들이 잘해주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여자도 9단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나온다면 지은. 혜연 둘 중의 하나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입단은 지은이가 좀 늦었으나 특별승단 덕을 봐 입신 1호 테이프를 끊었다.”


(이민진 5단) “여자 최초라는 데, 이로 인해 언론에 바둑, 특히 여자바둑을 알릴 기회를 얻었다는 데 의미가 컸다고 생각한다. 프로기사들 자체는 이미 9단이 한둘이 아니어서인지 바깥에서 느끼는 것보다 그다지 반향을 보이진 않는 듯하다.”


(루이 9단) “9단…, 좋은 일, 축하할 일이다. 지은, 9단 되면 밥을 사야한다고 했는데 아직 안 샀다. 혜연도 9단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본다. 당연한 실력이다.”


(조혜연 7단) “9단, 대단하다. 초단 후배들이 더 의미 있게 생각하지 않을까.”


박지은의 9단 승단은 지난 1월 17일 막을 내린 1회 원양부동산배 결승3번기에서 루이 9단을 2-1로 꺾고 우승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입단한 지 11년 만에, 한국기원 기사로는 46번째로 9단에 승단했다. 1975년 윤희율(은퇴)과 조영숙이 첫 여류기사로 입단한 이후 33년 만의 9단 탄생이다.


박지은은 9단에 승단하기까지 세 번의 특별승단 덕을 봤다. 2004년 1월 2회 정관장배 우승으로 4단→5단 승단. 2007년 7월 1회 대리배 우승으로 7단→8단 승단한 것과 이번 원양부동산배 우승으로 1단 승단하여 입신 반열에 올랐다. 여자세계대회의 경우 우승하면 1단 승단 보너스를 준다(남녀 오픈 세계대회 우승은 3단 승단).


특별승단 혜택을 받기 시작한 세대인 40세 미만의 기사들이 9단에 이르기까지 평균 14년 여의 기간이 걸린 데 비하면(2007. 8. 20, 사이버오로 김경동의 기자수첩 <= 클릭), 게다가 여자기사임을 고려할 때 11년 만의 달성은 빠른 속도이다. 그만큼 세계대회에서 괄목할 성적을 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박지은 9단은 지금까지 ‘국제용' 소리를 들어왔다. 올 3월 13회 가그린배 여류국수전에서 이민진 5단을 2-1로 꺾고 우승하기까지 국내 여류기전 타이틀을 차지한 것은 딱 한번, 2000년 1회 여류명인전(대 이영신, 2-1)뿐이었다. 세계대회에서는 펄펄 날다가도 국내에만 돌아오면 설설 기었다. 초기 기풍도 공격적인 힘바둑을 구사해 ‘여자 유창혁'으로 불리기도 했다. 유창혁 9단도 국내기전에서는 이창호의 벽에 막혀 큰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으나 세계대회에 나가서는 기대 이상 실력발휘를 하곤 해 ‘큰승부에 강한 기사'로 사랑을 받았다. 유창혁에게 이창호가 장애물이었듯 국내에서 박지은을 번번이 가로막았던 존재는 라이벌 조혜연이었다.


박지은 9단의 기풍탐구와 조혜연-루이와 각축을 벌였던 여자바둑삼국지는 다음 회에 잇기로 하고,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은 먼저 박지은의 9단 승단을 축으로 바라본 한국여자바둑의 역사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아래의 글은 월간바둑 차영구 기자가 2008년 월간바둑 3월호에 쓴 기사를 옮긴 것이다.

 

박지은 9단은 세계대회인 대리배와 원양부동산배 석권에 이어

국내기전인 여류국수까지 차지하며 3관왕에 올라 여류기성,

여류명인 2개의 국내 타이틀만 갖고 있는 루이 9단을 추월하며

'박지은시대'를 열었다.


차영구의 기자수첩 박지은의 9단 승단으로 바라본 한국 여자바둑의 어제와 오늘


국내 첫 여류입단대회는 대한기원 시절인 75년 9월 개최돼 윤희율 초단(은퇴)과 조영숙 초단을 첫 여류기사로 탄생시켰다. 이후 명맥이 끊겼던 여류입단대회는 15년 뒤인 90년 재개돼 남치형 초단과 이영신 4단을 3번째와 4번째 여류기사로 맞이했다. 그리고 2008년 국내 첫 여성 9단이 배출됐다. 75년 처음 여성 입단자가 나온 이래 무려 33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여자로서 프로 9단의 경지에 오른 기사는 중국의 루이 나이웨이 9단과 펑 윈(豊雲) 9단 단 2명뿐이었다.


중국위기(圍棋)협회의 단위 제도가 확립된 82년 나란히 4단으로 출발했던 루이 나이웨이와 펑 윈은 승단제도를 통해 88년 루이가 중국에서 9번째이자 세계 최초의 여성 9단이 됐고 펑 윈은 97년 중국에서 16번째로 입신에 올랐다. 그러나 중국 출신 9단 1, 2호 여자기사는 현재 중국이 아닌 한국과 캐나다에서 활동 중이다. 이는 최근 중국 여자바둑의 침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루이 나이웨이가 99년 3월부터 한국기원의 객원기사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한국 여자바둑의 발전은 일본은 물론 중국을 넘어섰고, 이제는 세계최강이라던 루이 나이웨이와도 대등한 실력을 펼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국내의 젊은 여자기사들은 이런 루이의 존재에 항상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한국 생활에 앞서 일본 바둑의 문을 꾸준히 두드렸던 루이 나이웨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본은 현재 남자바둑과 마찬가지로 여성바둑 실력도 한국과 중국에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 9단 여류기사를 탄생시키지 못하고 있는 일본은 일본기원에 2명(杉內壽子, 靑木喜久代), 관서기원에 2명(吉田美香, 小西和子)의 8단만이 있을 뿐이다. 1927년생인 스기우치 8단이 1942년 입단했으니 일본은 여류기사 배출 66년이 넘어선 지금까지도 아직 9단 여성기사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를 들여다보면서 새삼 박지은의 九단 승단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느낄 수 있다.

 

세계최초 여자9단 1호 루이(왼쪽)와 2호 펑윈. 둘 다 중국출신이다.


한-중-일의 ‘반상(盤上) 아마조네스 여전사'들은 모두 합해도 200명이 채 안 된다.


중국기원이 대외적으로 발표한 여자기사는 루이 나이웨이와 펑 윈, 쿵 상밍(孔祥明) 등 현재 자국에서 활동하지 않는 기사까지 포함해 77명으로 가장 많다. 일본은 일본기원 60명, 관서기원 15명 등 모두 75명이며 한국기원 소속 여류기사는 40명으로 3국 중 가장 숫자가 적다.


숫자는 적지만 가장 내실 있다고 평가되고 있는 한국 여류바둑계의 실력이 나날이 향상되는 점은 고무적이다.


국내 여성프로기사 트로이카로 꼽히는 루이-박지은-조혜연뿐 아니라 제1회 대리배에서 준우승한 김혜민 5단, 정관장배의 신데렐라 이민진 5단, 제6회 정관장배 2연승과 제5회 전자랜드배 주작왕전 4강에 오른 이슬아 초단 등 계속해서 샛별들이 속속 수혈되고 있다. 특히 이슬아 초단은 주작왕전 8강전에서 박지은 9단을 꺾고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밋빛 소식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강자들의 출현으로 밝기만 한 것처럼 보이는 여성바둑계의 저변 확대는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언제부턴가 여자 연구생을 뽑는 선발전에 지원하는 인원이 격감해 아마단증만 있으면 선착순으로 여자 연구생에 입문할 수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지난해 1월부터는 여자 연구생의 정원도 미달되기 시작했다. 2002년 1월 시작된 여자 연구생 제도는 1~4조, 각조 12명씩 총 48명으로 운영됐지만 현재는 4조의 인원이 3명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달 4월부터는 여자 연구생의 총 인원을 40명으로 줄여 각조 10명씩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국내 첫 입신 등극에 뒤따르는 우울한 소식들이다.


기초가 부실하면 모래성에 불과할 뿐이다. 잘 나갈 때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박지은의 9단 승단으로 여자바둑계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기회삼아 착실히 내실을 다진다면 제2, 제3의 여자 9단 탄생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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