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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후보는

풍월 사선암 2007. 8. 18. 09:44

●이명박·박근혜 후보는


권대열 기자 dykwon@chosun.com 

김봉기 기자 knight@chosun.com 

입력 : 2007.08.18


●이명박 후보는 … 가난… 6·3 학생운동 주도 ‘샐러리맨의 신화’ 주인공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일하는 대통령’ ‘경제살리는 대통령’ ‘강한 나라 만들 대통령’을 내세운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넝마주이까지 하며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현대건설에서 12년 만에 사장이 됐고 해외 사업에서의 잇단 성공으로 ‘샐러리맨의 신화’가 됐다. 서울시장 때는 “어려울 것”이라던 청계천 재개발과 시내버스 개혁을 했다. 이런 성공스토리를 무기로 “말 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 잘하는 대통령이 될 사람은 이명박뿐”이라고 하고 있다.


이 후보는 워낙 가난했던 어린 시절 시장에서 뻥튀기 장사, 김밥장사, 엿장수, ‘아이스케키’ 장사, 풀빵 장사 등 온갖 장사에 나섰다. 생선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함께 포항어시장과 서울 이태원시장에서 생활했다. 기업에선 건설, 자동차, 제철 등 10여 개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했다. 이 후보측은 “그의 삶은 ‘경제·서민 살리는 대통령’과 딱 맞는다”고 말한다. 지난 1년간 여론조사 1위 자리를 지킨 데는 이런 ‘경제’ 이미지가 톡톡히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이 후보는 ‘정치적’으로도 범여권을 이기기 좋은 이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고려대 4학년 때 6·3데모를 주동하다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군사정권이 씌운 죄목이 ‘국가내란선동’이었다. 학생운동 경력으로 취업 금지 인물로 ‘찍히기도’ 했고, 80년대엔 현대자동차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신군부와 맞서기도 했다. 이런 경력은 대선 때마다 ‘민주화’로 한나라당을 공격했던 범여권 인사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강한 추진력을 가진 이명박이야말로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대통령감이라고 이 후보측은 말한다.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의 꿈’ 완성 목표 40대 0 선거불패 신화 

‘5년 안에 선진국 진입’이란 기치를 내건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경선후보에겐 많은 애칭이 있다. 대부분 박 후보가 2년4개월간 당 대표로 재직할 때 이룬 업적들과 관련된다.


2004년 총선 때 탄핵 역풍을 뚫고 존폐 위기의 당을 121석으로 만든 데 이어, 여당의 국가보안법폐지 시도를 막아내 ‘박 다르크’(‘잔 다르크’에서 따옴)로 불렸다. 측근들은 원칙과 법질서를 중시하는 그를 ‘한국의 대처’라고 부르기도 했다. 7%의 당 지지율을 50% 넘게 끌어올리고, 각종 선거에서 여당을 상대로 ‘40대0’의 압승을 거둬‘불패(不敗) 신화’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대통령의 딸, 박 후보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흉탄으로 숨지자 22세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야 했고, 1979년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마저 떠났다. 인고의 세월을 지내다 1980년 후반부터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다.


1997년 IMF 사태 때 고생하는 국민들을 보고 “어떻게 발전시킨 나라인데…”라는 심정으로 정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1998년 4월 대구 달성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당선된 이후 10년만에 대통령에 도전했다.


이번 대선에서 박 후보의 목표는 아버지가 못다한 ‘선진국의 꿈’을 완성하는 것이다. 한·중 열차 페리 공약과 ‘줄·푸·세’ 운동 등을 제시했다. 열차페리는 화물이나 여객을 실은 기차가 그대로 배에 실려 이동하는 것이다. ‘줄·푸·세’는 각종 세금을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