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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신화' 이명박 후보는 누구

풍월 사선암 2007. 8. 20. 19:07

'도전과 신화' 이명박 후보는 누구

 

'샐러리맨의 신화'에서 '대권 신화' 꿈꾸는 한나라號 선장


image'빈농'의 아들에서 '대기업CEO'로,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 후보'까지.


한나라당 17대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명박 후보의 삶을 규정하는 아이콘은 '도전'과 '신화'다. 가난을 극복하고 숱한 '도전' 끝에 '샐러리맨의 신화'가 됐다. 그런 그가 이젠 대한민국호(號)의 선장이 되기 위해 또 다른 도전장을 던졌다.


이 후보는 1941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무척 가난했다. 포항의 재래시장에서 아이스크림과 김밥을 팔았다. 뻥튀기 장사, 엿장수도 했다.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래도 공부가 하고 싶어 포항 동지상고에 들어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야간부 '고학생'이었다. 고교 졸업 후에는 서울로 올라왔다. 물론 빈손이었다. 둥지를 튼 곳도 고단한 삶으로 점철된 어느 '달동네'의 한 귀퉁이. 일당 노동자로 일했다.


그러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대학시험이라도 한 번 쳐보자". 도전했다. 교재가 없어 청계천 헌 책방 주인이 준 책으로 공부했다. 1961년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에 지원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가 이룬 첫 '작은 신화'였다.


1964년에는 '6.3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옥고'를 치렀다. 한일국교정상화회담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였다. 겨우 풀려났지만 '운동권'이란 딱지가 붙어 취업이 제한됐다.


억울함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결국 이 후보는 '삶의 전환점'이 된 현대건설과 조우했다. 오늘의 '이명박'을 있게 한 고리가 라이벌 박근혜 후보의 선친인 박 전 대통령이 었던 것은 운명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1977년 만 35세의 나이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기업인'의 태를 벗고 '정치인'으로 본격 변신을 시도한 것은 1992년 14대 총선.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정치1번지' 종로에 출마했다. 당시 청문회 스타였던 노무현 대통령과 4선이었던 이종찬씨를 누르고 지역구 첫 배지를 달게 된다.


'시련'이 없지 않았다. '선거법 위반'이 발목을 잡았다. 의원직을 내놨다. 이 후보의 전 비서관 김유찬씨가 폭로했던 사건이 바로 이때 있었던 일이다. 이 후보는 그러나 2002년 7월 '청계천 복원' 공약으로 민선 제3대 서울시장에 도전, 당선되면서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대통령'의 꿈을 본격적으로 키워나간 것도 그 무렵이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 청계천 복원사업과 대중교통체계 개편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지난해 6월 퇴임 후 본격 경선 레이스를 시작, 1년 2개월간 단 한 차례도 지지율 1위 자리를 놓지 않은 끝에 20일 17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부인 김윤옥씨(60)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뒀다.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이 친형.

 

△경북 영일군(현 포항) 출생(66세)

△포항 동지상고(야간), 고려대 상대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대표이사 회장

△14대, 15대 국회의원

△민선 3기(32대) 서울시장 △한나라당 17대 대통령 후보


머니 투데이 오상헌 기자 | 08/20 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