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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07] 대선후보의 가족|이명박

풍월 사선암 2007. 1. 2. 18:59

[선택 2007] 대선후보의 가족|이명박


이명박(66) 전 시장에게 12월 19일은 무척 뜻 깊은 날이다. 이 전 시장은 1941년 12월 19일생이다. 자신이 큰 뜻을 품은 2007년 대권이 결정되는 투표일이 공교롭게도 자신의 생일과 겹친다. 12월 19일은 이 전 시장에게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다. 부인 김윤옥(60)씨와 결혼을 한 날도 이 날이다. 


이 전 시장은 1970년 12월 19일 그 해 2월 이화여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김윤옥씨와 결혼했다. 1965년 입사한 현대건설에서 이사로 승진해 승승장구할 때였다. 김씨와는 자신이 나온 포항 동지상고 은사의 소개로 만났다. 동지상고의 영어교사가 부인 김윤옥씨의 오빠와 경북고교 동창이었다. 두 사람은 동창회에서 ‘잘 나가는 제자’와 ‘예쁜 여동생’ 자랑을 하다 중매를 주선했다. 이 전 시장은 결혼날짜를 잡으면서 일부러 자신의 생일로 택일을 했다고 한다. 그래야 부부끼리 결혼기념일과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부인 김윤옥씨는 대구의 평범한 공직자 집안 출신으로 대구여중ㆍ고를 나왔다.  이 전 시장 부부는 3녀1남을 뒀다. 장녀 주연(36), 차녀 승연(34), 막내 딸 수연(32)씨와 외아들 시형(29)씨가 있다. 주연, 승연씨는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 유학해 기악을 전공했고 수연씨는 이화여대 미대를 나왔다. 주연씨의 남편은 현재 삼성화재 법무담당 상무보로 있는 이상주(37)씨. 이씨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 검사로 임용돼 부산ㆍ수원지검에서 근무하다 2004년 삼성화재로 옮겼다.

 

차녀 승연씨의 남편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내과 전문의로 있는 최의근(34)씨. 현재 승연씨 부부는 이 전 시장 소유의 논현동 집에서 아버지 대신 살고 있다. 과거 정주영 회장이 지어준 논현동 집은 대지 200여평, 건물 100평가량의 양옥으로 이 전 시장은 2002년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이 집을 떠났고, 지난 6월 서울시장직을 마치고 공관을 나오면서도 이 집에 돌아가지 않고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전세를 구했다.


논현동 집에는 아직 미혼인 막내아들 시형씨도 함께 살고 있다. 시형씨는 얼마 전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국내의 한 외국계 투자은행에 취직했다. 시형씨는 대학교 2학년 때 군에 입대, 육군 8사단에서 병장 제대했고 이후 미국 유학을 갔다.  


이 전 시장의 막내 딸 수연씨는 2001년 9월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차남인 현범(35ㆍ한국타이어 부사장)씨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재벌(효성그룹)과 정치인 집안의 혼사라는 점에서 화제였다.


당시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 전 시장은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미래경쟁력 분과위원장을 맡아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 중이었다.


이 전 시장은 부인에게는 너그럽고, 자식에게는 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측근은 “이 전 시장이 자식에게 용돈을 박하게 주며 돈을 아껴 쓰는 법을 가르쳤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현재 외손자ㆍ손녀 6명을 봤는데 둘째 딸 승연씨가 지난 12월 22일 딸을 출산했다.     


이 전 시장의 부모는 이충우(1981년 작고)ㆍ채태원씨(1964년 작고)로, 부친은 경북 영일군의 가난한 농사꾼 집안 출신이었다. 부친 역시 물려받은 농토가 없어 어렸을 때부터 고향을 떠나 목축일을 했고, 일제 시대였던 1935년 일자리를 찾아 일본 오사카로 갔다. 이 때문에 이 전 시장을 비롯한 형제(7남매)는 막내만 제외하고 모두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평생 목부(牧夫), 옷감 장수 등으로 고단한 삶을 살다가 이 전 시장이 출세해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을 때 작고하였다.


모친 채태원씨는 이 전 시장의 삶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으로, 이 전 시장은 자신을 기른 스승이 ‘가난과 어머니’라고 말할 정도다. 생활력이 강했던 모친은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행상으로 남편과 자식을 부양하면서도 이웃이 “자식들 갖다 먹이라”고 주는 음식을 절대로 받지 않았다고 한다. 자식들이 가난에 주눅 들지 않고 ‘부자든 가난하든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당당하게 서로 만나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치려 했다는 게 이 전 시장의 회고다.


가족을 위해 새벽기도를 올리는 것이 가장 큰 일과였을 만큼 독실한 신자였다. 모친은 이 전 시장이 고려대 재학 시절 6ㆍ3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반년 간 복역하다 석방된 1964년 겨울 작고했다. 모친은 이 전 시장이 복역할 때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찾아와 “나는 네 소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네 소신대로 행동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전 시장의 형제로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다스(구 대부기공)’ 회장으로 있는 큰 형 상은씨와 한나라당 의원인 둘째형 상득씨, 누이 귀선씨, 여동생 윤진씨 등이 있다.


5선의 이상득(72) 의원은 이 전 시장과 같은 동지상고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코오롱그룹사장을 거쳐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 전 시장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본래 4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났지만 바로 손위 누이와 막내 동생이 6ㆍ25 때 사망했다.


정장열 주간조선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