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기품과 단종의 애조(哀調)가…
해질 녘 방문한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서원의 만대루. 1527년 서애 유성룡 선생이 글을 쓰고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다. 노을 질 무렵, 복례문(입구)을 지나 만대루(유림들이 앉아 시를 읊던 곳) 밑을 지나쳐 서원 중앙에 있는 입교당(교실) 마루에 걸터앉는다.
만대루 기둥 너머 보이는 옥빛 낙동강과 그 뒤에 있는 병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햇살을 받은 병산은 산 굽이굽이 빛이 교차하면서 한 폭의 병풍이 된다.
홍매나무, 무궁화나무, 청매나무, 350년 된 목백일홍이 어우러진 사원은 금세라도 유림들이 걸어 나올듯한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든다. 미술사학자들이 한국 최고의 서원으로 꼽는 병산서원의 만대루는 인공 건축물이 아닌, 자연의 숲 같다. 건축구조 속 기둥은 휘어지면 휘어진 대로, 곧으면 곧은 대로, 나무 모양 그대로 사용해 자연미가 물씬 풍긴다. 기둥 주춧돌까지도 자연석을 깎지 않고 그대로 이용했고 서원 전체가 단청을 입히지 않은 나무 색 그대로여서 서애의 손때를 느낄 수 있다. 24년간 이곳을 지킨 류시석(50) 씨에게 커피 한잔 얻어먹는 건 덤.
‘슬픈 왕자’ 단종의 비사(悲史)와 전설이 얽힌 강원 영월군 청령포. 1452년 12세에 왕위에 오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1457년 유배된 곳이다.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여 반도 모양의 지형을 이룬 청령포는 동·북·서쪽이 깊은 강이고 남쪽이 절벽인 천혜의 유배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치가 오히려 슬픈 비극과 부조화를 이룬다. 사약을 받고 단종이 짧은 생을 마감한 관풍헌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소나무인 관음송(수령 600년·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듣고(音), 비참한 모습을 봤다고(觀)해서 생긴 이름)이 쓸쓸히 서 있다.
○천년 문화재의 보고(寶庫)
불국토(佛國土)가 따로 없다. 천 길 물줄기를 한꺼번에 절벽 아래로 쏟아내듯 경주 남산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에는 100여 곳의 절터, 60여 의 석불, 40여 기의 탑이 있다. 순례길만 70여 곳.
삼릉골로 올라가 용장골을 거쳐 칠불암으로 내려오는 산길이 전문가들의 추천 코스. 남산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암자 상선암에 있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의 살진 두 뺨과 입 언저리는 친숙한 신라인의 미소 그 자체다.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일본 사람들까지 경주 남산을 불국토라고 생각한다”며 “신라는 불교를 통일의 원천으로 삼았으며 석굴암, 불국사 등 절정의 예술도 여기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천년고토의 유물에 관심이 끌린다면 백제의 불상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서산 마애삼존불, 태안 마애삼존불을 찾아가자. 6세기 말 제작된 두 불상은 한국 최초의 마애불이자 백제의 은은한 미소를 담고 있다.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은 “불상은 정면만이 아니라 빙 돌아가면서 봐야 조각 자체가 뛰어난 걸 알 수 있다. 또 같은 불상의 표정을 한 사람은 미소로 보지만 다른 사람은 울음으로 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 미륵사지에는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유혹하기 위해 노래를 퍼뜨린 서동(백제 무왕)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은 사랑을 이룬 뒤 미륵산 앞을 지나다 연못에서 미륵불을 보고 이곳에 미륵사를 세웠다. 전문가들의 추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석탑(서탑)때문. 동탑은 조선시대 완전히 무너져 없어졌다가 1993년 화강암으로 복원됐다. 20세기 동탑과 1000년 전 서탑의 대비가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