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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 제대로 느끼려면 "산장서 하룻밤을"

풍월 사선암 2006. 12. 9. 11:00

겨울산 제대로 느끼려면 "산장서 하룻밤을"


“와~ 멋지다. 저게 설화(雪花) 맞죠?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아요. 이래서 겨울산을 제대로 보려면 산장에서 하룻밤 자야 한다니까요.”


강지은(31·서울 청담동)씨는 설악산 중청대피소 앞에서 잠시 황홀경에 빠졌다. 어제 오후 눈이 전혀 없는 오색을 출발해 늦가을과 다를 바 없이 을씨년스런 분위기의 산길을 오를 때만 해도 사뭇 지루한 표정이었고, 강풍 몰아치는 대청봉을 넘어설 때에는 잔뜩 웅크리고 얼굴도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중청대피소로 내려서자마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추위와 바람에 떨다 따뜻한 대피소 안에 들어서자 얼굴이 금세 펴진 것. 짐을 푸는 사이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쳤다.


이튿날 아침, 강씨는 산장 밖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눈앞을 막아서는 눈꽃나라에 놀라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이어 내설악과 외설악의 기운찬 능선과 기암을 바라보고 희운각 대피소를 거쳐 천불동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강씨의 표정은 동화 속 눈나라의 황홀경에 빠진 듯했다.



▲ 새벽녘 눈꽃이 만발한 충청대피소를 출발하는 등산인들. 마치 눈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조선영상미디어 정정현 기자 rockart.chosun.com


가을철 건조기 산불예방기간이 12월 15일자로 끝나면서 산장 산행을 계획하는 등산인들이 많다. 겨울산을 상징하는 상고대나 설화 같은 설경, 발이 푹푹 빠지는 깊은 눈은 적어도 1박2일씩 걸리는 큰 산을 찾아야 경험할 수 있다. 그 사이 안락하게 머물면서 마음놓고 취사할 수 있는 곳이 산장이기 때문이다.


밤새 불어댄 강풍에 시달리면서도 오히려 화려한 눈꽃을 피워내는 나뭇가지들. 암봉과 골바닥에 흰눈 얹은 채 환하게 빛나는 바위협곡은 당일산행으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겨울산의 진면목이다.


대피소라 일컬어지는 산장이 있는 산은 그리 많지 않다.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덕유산 정도이고 한라산의 경우에는 악천후와 같은 위급 상황이 아니면 숙박이 허용되지 않는다. 북한산이나 계룡산 같은 대도시 주변 산에도 산장이 있지만 아무래도 깊은 산중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산장은 긴요한 산행정보 제공처이기도 하다. 산행 전 각 산장에 문의하면 적설 상태와 눈길 개폐 여부, 식수 상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단, 산장 산행이라고 보온장비와 식량 준비에 소홀해선 안 된다. 겨울산의 복병인 저체온증에 대비하려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설악산 한계령~중청대피소~천불동계곡(공룡릉)~비선대 코스.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조망과 산행의 즐거움이 뛰어난 코스다. 한계령~서북릉~중청대피소 구간(6시간)은 산세와 조망이 뛰어난 반면 바람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 보온 방풍 의류를 철저히 갖추고 나서야 한다. 이튿날 공룡능선을 하산로로 끼워 넣을 계획이면 중청대피소에서 일찍 출발해야 한다. 첫날 희운각 대피소에서 묵는다면 아무래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 희운각대피소~마등령 5시간, 마등령~비선대 2시간, 희운각대피소~비선대 2시간30분 소요.


용대리~백담대피소~희운각대피소~소청대피소~중청대피소~대청봉~희운각대피소~양폭대피소~비선대~설악동 소공원을 잇는 동서 횡단 산행도 좋은 코스다. 첫날 희운각대피소나 소청대피소에서 묵는다면 이튿날 설악동까지 하산할 수 있다.


■지리산 중산리~법천계곡~장터목대피소~천왕봉~법계사~중산리 코스. 전형적인 천왕봉 일출맞이 산행 코스다. 주능선을 기준으로 중산리 반대편인 백무동에서 출발, 한신계곡~세석대피소~장터목대피소~천왕봉~장터목대피소~하동바위를 거쳐 백무동으로 돌아오는 코스도 인기 있다. 일출맞이를 위해서는 장터목에서 하룻밤 묵는 게 바람직하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2~3시간 거리 간격으로 대피소가 이어져 주능선 종주산행도 시도해 볼 만하다. 산행시간만 2박3일 정도 잡는 게 적당하다.


■덕유산 영각사(육십령)~남덕유~삿갓재대피소~향적봉대피소~삼공리 구천동(또는 곤돌라 이용 무주리조트) 2박3일 코스. 산행 경험이 많고 체력에 자신 있다면 육십령에서 시작하는 코스가 어울린다. 단, 영각사~남덕유 구간은 1시간 30분 정도면 가능하지만, 육십령에서 출발할 경우 4시간 이상 더 걸리므로 일찍 서둘러야 하고, 출발 전 삿갓재대피소에 문의해 적설량과 눈길 개방 여부를 확인하도록 한다. 향적봉대피소에 오후 3시쯤 도착하면 향적봉 너머 곤돌라 종점에서 곤돌라를 타고 무주리조트까지 내려설 수 있다. 바람이 강하면 운행하지 않으니 향적봉대피소에서 확인해야 한다. 운행시간 오전 10시~오후 4시. 요금 편도 6000원, 왕복 1만원. 무주리조트 (063)322-9000.


■오대산 진고개~노인봉대피소~청학동 소금강 1박2일 코스. 진부와 주문진을 잇는 6번 국도가 가로지르는 진고개에서 2시간 안팎 거리인 진고개대피소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계곡 절경지인 청학동 소금강을 따라 하산한다. 노인봉 조망과 계곡 풍광이 뛰어난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