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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일곱 대통령의 퇴장

풍월 사선암 2006. 12. 16. 10:02

[김대중 칼럼] 일곱 대통령의 퇴장


입력 : 2006.12.03

여섯 대통령의 퇴장(退場)을 지켜본 기자의 눈으로 볼 때 권력의 누수현상은 비슷했다. 이제 일곱 번째 대통령의 퇴장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의 임기 말은 과거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누구도 국민의 절대적이고 총체적인 신망과 존경을 받기 어려웠던 상황이었기에 임기 말년(末年)의 권력적 이완과 긴장감의 해이는 불가피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각기의 개성과 통치방식 그리고 그 당시의 사정이 달랐던 만큼 그들의 임기 또는 집권 말년과 각각의 대처하는 자세는 지금과는 달랐다.


박정희는 장기 집권으로 권력적 매너리즘에 빠진 피곤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스스로 권력을 흘려 보냈다. 어쩌면 그는 지치고 외로워 다른 것에 관심이 없었는지 모른다. 스스로 권력의 문(門)을 열어놓은 셈이었다. 최규하는 권력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누수할 것도 없었다.


전두환은 밖으로는 권력 장악의 무리수로 많은 적(敵)을 만들었으나 그들 탈권자들의 성(城) 안에서는 즐거운 대통령이었다. 나름대로 7년을 즐겼고 권력의 이양도 동질적(同質的)인 것이어서 그런지 크게 애태울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의 불운과 레임덕은 오히려 임기 이후에 있었다.


노태우는 민간 출신 후임자를 만들어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힘썼다. 어떻게 보면 그는 군부의 통치에서 민간 통치로 넘어가면서 그 보복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중간지대의 계주자로 자처했음직하다. 그래서 그의 임기 말에 모처럼 언론 자유가 급팽창하면서 그는 스스로 레임덕 속에 숨었다고 할 수 있다.


김영삼의 말년은 그 거대한 출발에 비해 왜소했고, 실명제 등 개혁적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지워진 회색의 세월로 점철됐다. 그는 대통령 시절보다 야당의 당수 시절에 더 향수를 느꼈음직했다.


김대중은 한국 정치에 리버럴리즘과 좌파를 소개한 이념형 대통령이었다. 그의 말년은 오로지 ‘햇볕’과 ‘김정일 답방(答訪)’에 목매어서 보낸 세월이었다. 노벨상과 ‘통일의 선구자’라는 이미지로 남고 싶었겠지만 그의 말년은 가족의 비리와 북한에의 지나친 집념으로 인해 퇴색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은 다른 대통령들과 다르다. 통상적인 권력 누수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의 레임덕은 정치게임의 속성상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런 통과 의례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시중(市中)의 입에서는 대통령 취급을 받기 어려웠지만 노 대통령은 온갖 희롱의 대상으로 떨어진 지 오래여서 오히려 민망할 정도다.


“노무현은 격(格)을 잃은 언행으로 대통령직을 지나치게 희화화한 나머지 스스로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김호진·‘대통령’). 그의 임기는 오만과 오기, 편 가르기, 술수(術數)의 정치로 시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측은함을 넘어 비참할 정도다. 어느 대통령도 노무현의 시절처럼 국가와 국민을 불안하게 한 적은 없었다. 그들은 비록 지도자로서의 콤플렉스와 인간성과 도덕성 그리고 통찰력과 적응 능력에 많은 의문점을 남겼고 어느 대통령은 나라의 진로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장애가 된 적은 있었을지라도 지금처럼 국민이 나라의 안위(安危)를 걱정하게 하고 경제의 추락에 노심초사하는 사태로 이끌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정체성의 열병을 앓고 있다. 우리는 국민을 세계화의 대열에서 끌어내 고립화의 회로로 집어넣으려는 얼치기 민족주의자들로 인해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집단은 핵으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미국은 기어코 이땅을 떠나고 있다. 길거리에 나서면 안다. 매일 확성기 소리와 폭력시위에 주눅들어 살아야 하고, 교통 질서와 법치 의식은 실종된 지 오래다.


서로의 멱살을 잡고 치고 받는 광경은 만인(萬人) 대 만인의 투쟁을 상기시킨다. 교육도 방향 감각을 잃었다. 집값이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주거가 문제다. ‘세금 불복(不服)’은 전례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권력자들은 나눠 먹기 코드 인사로 잔치하고 그 꼴에 자기들끼리 신당 운운하며 피 터지게 싸운다. 가히 무정부상태를 연상시킨다.


이것이 ‘노무현 4년’의 대차대조표다. 오늘의 현상에 한 가지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또다시 ‘노무현’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말에 기교를 부리는 정치, 약속을 어기는 정치, 국민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 자신이 하면 지역 탈피고 남이 하면 지역주의라는 뻔뻔한 정치, 어제 한 말 다르고 오늘 하는 말 다른 두 입의 정치, 무엇보다 국민 알기를 자기들 선거게임의 소도구쯤으로 아는 정치―이런 정치는 이제 ‘노무현 정치’ 하나로 충분하다. 그리고 실수도 한 번으로 충분하다.


(김대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