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역사,인물

서동요/서동선화 사랑이야기

풍월 사선암 2006. 9. 16. 07:09

 

  

서동요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최초의 향가로서 4구체형식 이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결혼하고 맛둥서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卵乙抱遣去如) 간단한 노래지만 천사백년 전 백제와 신라의 국경을 초월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이다. 서동(薯童)의 이름은 장(璋)으로 백제 서울 남쪽 오금사에서 100여보 거리에 위치한 연못(마룡지)의 용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동은 도량이 크고 기골이 장대하여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마를 캐어 생활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마동(薯童)이라 하였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천하의 일색이라는 소문을 듣고 큰 뜻을 품고 신라 서울로가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주고 노래를 부르게 하였는데, 이 노래가 바로 서동요다.

 

서동요가 급속히 퍼져 신라 궁궐에까지 알려지자 대신들에 의해 공주는 결국 귀양을 가게 되었다. 왕비는 공주가 안쓰러워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순금 한 되를 주어 보냈다.


선화공주가 귀양 가는 길에 서동이 갑자기 나타나 따라가겠다고 하여 같이 가게 되었으며, 후에 그가 서동요의 주인공인 서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어찌할 수 없어 함께 익산 땅으로와 살게 되었다.


서동과 선화공주는 오금산의 금을 사자사 지명법사의 신통력으로 신라 진평왕에 보낸 후 인심을 얻어 백제 제30대 무왕에 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