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김삿갓]방랑자의 노래

풍월 사선암 2006. 9. 6. 19:20

장승의 모습만큼이나 김삿갓의 시는 다양하고 다채롭다.

 

[김삿갓]방랑자의 노래

 

스무나무 아래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멍할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설은 밥을 먹으리라.


二十樹下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二十樹 : 스무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이름

三十客 : 三十은 '서른'이니 '서러운'의 뜻.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 : 四十은 '마흔'이니 '망할'의 뜻. 망할 놈의 집.

五十食 : 五十은 '쉰'이니 '쉰(상한)'의 뜻. 쉰 밥.

七十事 : 七十은 '일흔'이니 '이런'의 뜻. 이런 일.

三十食 : 三十은 '서른'이니 '선(未熟)'의 뜻. 설익은 밥.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수 자 새김을 이용하여 풍자한 시다.

 

 

죽 한 그릇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無題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排徊(사각송반죽일기 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주인막도무안색 오애청산도수래)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의 저녁 끼니는 멀건 죽 뿐, 죽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주며 오히려 위로하는 여유를 부리는 멋쟁이 詩仙!

 

         

서당 욕설시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방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


辱說某書堂(욕설모서당)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추운 겨울날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하며 내쫓는다. 김삿갓이 누군데 그냥 못 지나가지. 인정 없는 훈장을 육두문자로 욕하는 시다. 아마 뜻보다는 욕설(소리)에 관심을 둔 그래서 소리나는대로 읽어야 제 맛이 나는걸! 요즘 수준없는(?) 게그하고는 수준이 다른걸!

 

 

나이 스물에 결혼한(당시로는 좀 늦은 듯) 그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사건은 어느 지방 백일장이었다. 과제는 "가산군수 정시의 충성을 찬양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한탄하라"였다. 평소 갈고 닦은 명문으로 장원에 당당히 급제하여 의기양양하게 집안에 낭보를 전하였으나 알고 보니 역적 김익순이 바로 자신의 할아버지일 줄이랴. 크나큰 충격을 먹은 김병연은 입신양명하려고 한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껴 글공부를 포기하고 농사를 지으며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김삿갓은 한평생 방랑을 통해 참으로 많은 글을 전국 방방곡곡에 남겼다. 위로는 강계, 금강산 뿐 아니라 아래로는 여산, 지리산, 동북까지 끝없는 방랑의 길이었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시가 탄생하였으며 그의 시는 해학과 풍자로 넘쳐흘렀다. 거들먹거리는 양반의 모습, 거짓에 찬 훈장의 몰골, 정에 굶주린 기생, 굶주림에 허덕이는 농민, 수탈을 일삼는 벼슬아치 등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모두 가식과 위선이었다. 이런 현실을 보며 그가 쓴 시는 단순히 풍자와 해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민의 애환을 노래하고 민중과 벗하며, 한문을 대중화하고 한시의 정형을 깨부순 것이었다. 당시 한시를 짓는 소위 인텔리(사대부)들은 문자를 맞추고 글자의 고저를 따졌다. 그래야만 시의 격이 높고 품위를 지킨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김삿갓은 이런 것을 거부했다. 그의 시가 기본적인 한시의 형식을 빌고 운자를 달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외형에 불과하였으며 그가 다룬 시의 주제는 세상만사 인간의 모든 일이었고, 시어는 더러운 것, 아니꼬운 것, 뒤틀린 것, 그리고 우리말의 속어나 비어가 질펀하게 깔려있다.


한 농부의 처가 죽어 그에게 부고를 써달라고 하자 그는 '유유화화(柳柳花花)'라고 써주었다고 한다. '버들버들하다가 꼿꼿해졌다'는 뜻이다.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표현한 것이다. 한자로 쓰는 부고가 스스로 못마땅하였던 모양이다. 그가 개성에 갔을 때 어느 집 앞에서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하자, 집주인이 나무가 없어 못 재워 준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시를 썼다.


읍명개성하폐문(邑名開城何閉門)-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어찌 문을 닫아걸며

산명송악개무신(山名松岳豈無薪)-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나무가 없다하는가


위 시를 단순한 해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문을 대중화한 것이다. 천재적인 놀라운 솜씨다. 김삿갓은 삐뚤어진 세상을 농락하고 기성 권위에 도전하고 민중과 함께 숨쉬는 탈속한 '참여시인'이었고 '민중시인'이었다 할 수 있겠다.


겉멋과 형식, 기교에 사로잡혀 있는 이 시대의 어여쁜 백셩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느닷없이 조선시대로 방랑하여 보았다. 김삿갓의 문학은 방랑자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내용과 다채로운 형식으로 우리 문학사에 이름을 올려놓은, 그것도 본명보다는 속명을 유명하게 만든 전통시대의 빛나는 문학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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