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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생애

풍월 사선암 2006. 2. 26. 04:36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 하나 아직 난 부처를 찾지 못했다. 마음이 흔들리고 ''란 존재로 가득차 있어 아직 난 부처를 만나지 못했다. 중생의 습기(習氣)에 물들어져 내안에서 부처 찾는 일은 쉽지 아니하여 이제 밖에서 부처를 찾고자 길을 떠난다. 나보다 먼저 2500여년전에 이 땅에 오신 부처를 만나고 그 가르침을 듣고자 길을 떠난다.

 

석가모니와 제자 / 아난()과 마하가섭()

 

보통 부처님이라고 말하는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은 '샤카(석가)'족의 '성자'(muni)'를 뜻한다. 본래의 성은 고타마(Gotama, 瞿曇),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 悉達多)인데,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 佛陀)라 불리게 되었다. 부처님 또는 불타(佛陀)라 말해지는 붓다란 '깨달은 자(覺者)'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부처님은 사찰이나 신도들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석존(釋尊)' 등으로도 불린다. 불교의 교조가 되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통해 그가 이 땅에 오신 까닭이 무엇인지 살피고자 한다.

 

[탄생(誕生)]

[고타마 왕자님의 탄생(비람강생상) - 송광사 대웅보전 불단 팔상도 제2]

 

누구나 깨닫기만 하면 부처님이라 한다. 나도 깨닫기만 하면 부처님이다. 2600여년전 오신 부처님은 정확하게 석가모니 부처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고타마왕자님의 아버지는 슛도다나 정반왕이시고 어머니는 마야부인 왕비이시다.

 

마야부인 꿈속에 하얀 코끼리가 부인의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신후 잉태하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시다. 달이 차고 해산일 가까와지자 마야부인은 출산을 위해 친정나라로 가시게 되었다. 왕비의 행렬이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을 지나갈 적에 마야부인은 불행하게도 심한 산통을 겪게 되고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의 나무 가지를 잡고 해산을 하였다. 그런데 태몽의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를 뚫고 들어온 그 자리로 아기가 태어났다한다. 불행히도 어머니 마야부인은 그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시고 얼마후에 세상을 떠나셨다.

 

또한 신비로운 일은 어머니의 옆구리를 뚫고 태어나신 왕자님은 손가락 하나를 높게 들고 아장아장 동서남북으로 일곱걸음씩을 걸어다니시며 크게 외쳤다한다.

 

"天上天下 唯我獨尊 !"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엄하도다."


[출가(出家)]

어린 고타마 왕자님은 슛도다나왕으로부터는 왕도의 훈육을 받았으며, 계모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궁궐에서 훌륭하게 잘 자랐다. 어린 왕자는 스승과 함께 백성들이 사는 성밖으로 처음 나가게 되었다. 백성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늙은이, 병든이, 죽은이 등 생로병사의 모습을 보고서는 어린 왕자는 병들고 늙어가며 죽는다는 것은 고통스럽고 헤어지는 것은 두렵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이후, 어린 왕자는 이렇게 살아가고 늙어가고 병들어가며 죽어헤어진다는 것, 생로병사가 모두 고통인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완전히 일시에 해결할 수 있을까'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어린 왕자가 나무 아래앉아 오랫동안 깊은 명상에 잠겨있는데 주변의 다른 나무들은 시간을 따라 해를 따라 그늘이 옮겼는데 오직 왕자님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나무만 그냥 그대로 왕자에게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한다. 아버지 슛도다나 왕은 그러한 왕자의 거룩한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보고 두 손을 모아 예배를 드렸다한다.

 

아버지로부터 제왕의 학을 배우며 성장하던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는 생로병사의 고통뿐만아니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운 사람과 함께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려 애써지만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우리의 오감으로 들어와 쌓여있는 모든 고통인 오취온고(五取蘊苦) 등 수많은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까 명상에 젖어 사색적으로만 변해갔다. 슛도다나 왕과 왕비의 고민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궁궐에서는 왕자의 슬픈 번민을 씻어주기 위해 매일같이 즐거운 잔치가 벌어졌다. 그래도 왕자의 명상은 끊이지 않다.

 

이제 왕위를 계승할 자격을 가진 싯다르타 태자는 16세가 되어 야소다라를 맞이하여 결혼을 하였으며 아들도 갖게 되었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말에 태자는 이렇게 말했다한다.

 

"라훌라가 생겼구나."

 

왕자의 이름이 된 이 말은 장애(障碍)란 뜻이다. 이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어여쁜 자식이 '장애'라니 이 무슨 말인가? 고타마 태자에게 있어서는 사랑으로 맺어지는 인연은 수행생활에 장애가 되었는가 보다. 그러나 그 어떤 장애도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결심을 막을 수 없었다. '싯다르타'라는 이름 자체가 '자기 소원을 모두 이루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자기 소원인 출가의 뜻을 어느 라훌라 인들 막을 수 있겠는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궁궐파수꾼들이 태자의 출가를 막고자 궁궐문을 굳게 지키고 있었지만 태자는 애마 칸타카를 올라타고 훌쩍 궁궐 높은 담장을 넘었다. 마부 찬다카만이 칸타카의 고삐를 잡고 함께 날아갔다. 한나라의 군왕될 자리를 내팽개치고 그는 '이세상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해방시키리라'는 구도의 염원으로 출가를 결행하였다. 그때 태자 나이 스무 아홉 살이다.


[성도(成道)]

[석가모니의 고행상]


그 후 구도자 보살(菩薩)로서의 싯다르타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행의 삶이었다. 29년 동안의 쾌락에서 얻지 못한 진리를 짧은 동안이나마 극도의 고행으로서 '위없는 깨달음'[무상보리]을 얻으려 무진장 애를 썼다. 그러나 6년이 되도록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

 

싯다르타 보살은 6년 금식고행의 수행생활을 청산하고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받아 먹게 된다. 수자타가 이 우유죽을 끓이고 있을 때 죽 위에 '()'자와 같은 상서러운 표적이 나타났다한다. 오른손으로 주걱을 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분명 만()자 비슷한 모양이 생길 것이지만 그후, '()'자는 불교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드신 보살은 '위없는 깨달음(무상보리)'를 얻고자 보리수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명상에 들어가셨다.

 

나무아래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에 빠져 나무그늘에 자리잡고 명상에 잠기었던 왕자, 이제 출가수행자 보살이 되어 무상보리를 얻고자 보리수 나무 밑에 풀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메말라 가죽과 뼈와 살이 다 없어져도 좋다.

저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렇게 마구니를 내쫓고 깊은 명상에 들어 새벽녘 샛별이 반짝거릴 적에 드디어 보살은 모든 미혹의 번뇌를 일순간에 다 끊어버릴 무상보리의 정각(正覺)을 얻게 되었다. 바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라 말하는 '더 이상 위없는 올바른 깨우침'을 얻은 것이다. 태자 나이 35세 때 128일의 일이었다.

 

[설법(說法)]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녹원전법상) - 송광사 대웅보전 불단 팔상도 제7]

 

이제 싯다르타 보살은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제 어미를 죽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아존엄성을 선언하시며 이 세상에 오신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는 이제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셨다. 부처님의 입가에는 깨달음의 희열을 신비롭게 감춘 듯 미소가 피어났다.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은 때로부터 7주일 동안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거처를 옮겨가면서 보다 깊은 명상 속에서 깨달음을 음미했다. 마침내, 진리를 전하고 결정한 석가모니는 함께 고행을 닦았던 아야교진여, 아설시, 마하남, 바제, 바수 등의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다. 이를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하며 이들은 석가모니의 첫 제자가 되었다.

 

이로부터 전법에 나선 석가모니는 야사와 그의 친구 50여 명의 무리를 출가시켰으며, 녹야원을 떠나 마가다국으로 가는 길에서는 30명의 젊은이들을 교화시켜 제자로 받아들였다. 또 가장 큰 제자가 된, 마가다국 니련선하에 살던 가섭 3형제와 그들의 제자 1천명을 제자로 삼고, 사리불의 제자 1백명과 목건련의 제자 1백명을 귀의시킴으로써 초기 불교교단을 완성하게 된다. 그 후로 쉼없이 전도 여행을 다니며 수많은 제자에게 깨달음의 세계를 열어 보였고, 그들 또한 깨달음을 성취하도록 자신의 삶 전부를 바쳤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나는 일찍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며 말씀 전하기보다는 마음 전하기를 위해 팔십 평생을 바치셨다.

 

[입멸(入滅)]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쌍림열반상) - 송광사 대웅보전 불단 팔상도 제8]

 

이제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며 제자이며 시자인 아난다는 부처님이 곧 돌아가실 것만 같아 걱정은 태산이며 마음은 항시 초조하였다. 그래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제 스승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시면 저희들은 누구에게 의지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제자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아라.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나에게도 의지할 수도 없는 일이니라.

그러므로 오직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 의지할 것이며,-[자등명(自燈明)]

나의 가르침인 법의 진리를 등불로 삼아 의지할 것이니라. " -[법등명(法燈明)]

 

[석가모니 열반도]


이후, 석가모니께서는 이제 제자들 곁을 떠나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마지막으로 금속세공업자인 춘다가 바친 공양(供養)을 받으시고 병이 드셨다. 그럼에도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길을 걸어 쿠시나가라로 가셨다. 쿠시나가라의 사라나무 숲 속에서 부처님께서는 모로 누우셨고, 곧 입멸(入滅)하시리라는 전달을 받고 많은 제자들이 스승의 곁으로 돌아왔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제자들은 돌아보시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의문이 있거든 서슴치 말고 물어라. 뒷날에 가서, 여래께서 이 세상에 있을 때 물어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물어라."

 

여쭙는 제자는 아무도 없었다. 5백명의 제자들 어느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 참다운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이제 스승은 최후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너희들에게 전할 말은 이렇다.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름없이 항상 정진(精進)하라."

 

나무 밑에서 태어나시고, 나무 밑에서 명상에 젖으시며, 나무 밑에서 '더 이상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시면서도 나무 밑에서 돌아가셨다. 이 때가 기원전 543215일의 일이며 석존 80세의 일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아존엄성을 선언하시며 이 땅에 오신 석가모니 부처님. 사바속진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인류를 구원코자 일체의 쾌락도 고행도 뿌리치시고 깨달음과 중도로써 절대평화와 자유의 세계를 가르치셨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스스로의 등불을 밝히고 진리의 등불을 밝힐 것을 당부하시며 매사에 정진(精進)하라고 가르치신 후 선종(善終)하셨다.

 

이상이 부처님 이 땅에 오신 까닭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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