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고전음악

한국인의 애청 클래식 베스트 60 - [12] 베토벤 : 전원 제2악장

풍월 사선암 2006. 2. 4. 16:06

한국인의 애청 클래식 베스트 60 - [12] 전원 제2악장

Pastoral Symphony No. 6 

F major Op.68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 -1827)
독일 빈 태생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

(Symphony No.6 in F Major "Pastorale" Op. 68)

2악장 : Andante molto mosso


교향곡 제 6번<전원>2악장 청각장애가 극심한 39세때의 작품. 인간과의 대화가 어려울 수록 자연에 대한 사랑은 더욱 친밀해지는 것, 5개의 각 악장마다 표제를 붙이고 있으나, 풍경묘사를 넘어서 대자연의 숭고함을 공감하게 한다. 제2악장 “시냇가의 정경” 흐르는 시냇물의 속삭임을 연상케하는 반주 위에 바이올린이 테마를 제시한다. 새들의 지저귐이 전원의 정경을 한껏 묘사하고 있는데 제 2테마는 햇살 가득한 들의 정취를 그린다. 재현부에서는 밤꾀꼬리 소리(플루트), 메추리소리(오보에), 뻐꾸기소리(클라리넷)가 묘사되고 있다.


교향곡 제6번 바장조 op.68 '전원‘
이 곡이 완성된 1808년 경 베토벤의 귓병은 한층 악화됐고, 의사의 권유로  번잡한 빈을 떠나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하일리겐시타트에 파묻혔다. 푸른 나무들과 아름다운 꽃, 노래하는 새소리에 몸을 맡긴 것이다. 산책을 좋아하던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고부터는 사람들과의 대화보다는 산책을 통한 자연과의 대화를 더 즐겼다고 한다. 그가 여름마다 가던 하일리겐시타트에는 베토벤이 산책하던 길에 '베토벤의 산책로'라는 이름이 남겨져 있기도 하다. 항상 마음의 고뇌와 격렬한 감정, 몸의 병 때문에 고생을 하던 그에게는 자연이야말로 안온함과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천국이었을 것이다. 이때 그의 일과는 아침 하늘이 밝아짐과 동시에 일어나 오후 2시까지 일을 한 후 저녁때까지 산책을 하는 것이었는데, 가끔은 모두가 잠든 후까지 산책만을 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는 이때의 감상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전능하신 신이여, 숲 속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여기서 나무들은 모두 당신의 말을 합니다. 이 곳은 얼마나 장엄합니까!”이 곡은 자신을 잃어 절망한 나머지 유서를 쓰기까지 했던 베토벤이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욕구를 심어 준 자연에 대한 사랑 고백인 셈이다. 그가 이 곡을 특별히 '전원'이 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후세의 사람들이 창작 당시의 베토벤의 상황과 곡에서 받은 느낌으로 붙인 이름이다. 베토벤 자신은 '전원 생활의 회상'이라고만 했고, 듣는 사람 각자의 입장에서 음악을 들어주기를 희망했다. 베토벤은 그때 수첩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적었다. "전원 교향곡은 회화적인 묘사가 아니다. 전원에서의 즐거움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환기시키는 여러 가지의 감정 표현이며, 그에 곁들여서 몇 가지의 기분을 그린 것이다." 즉 이 작품은 낭만파의 교향시처럼 직접 전원의 풍물을 묘사한 음악이 아니고 전원이라는 주제가 곡의 내용적인 표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베토벤은 이 교향곡의 주제를 1806년의 노트에 기록했으며, 본격적인 스케치는 1807년 7월을 전후해서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완성은 1808년이고, 그 해 12월 22일에 빈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초연 되었다. 제5번 교향곡과 같이 로프코비츠 공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되었다.  5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시골에 갔을 때의 유쾌한 감정을 담은 2/4박자의 제1악장으로 시작해서, 시냇가에서 자연을 묘사한 놀랄 만한 표현력이 담긴 12/8박자의 제2악장,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축제'라는 부제가 달린 3/4박자의 제3악장, 폭풍우와 우뢰의 소리가 실감나게 재현되는 4/4박자의 제4악장이 있다. 그리고 이 곡을 특징짓게 하는 제5악장에는 교회의 종소리, 숲 속의 나무 흔들리는 소리, 아이들의 떠들썩함, 목동들의 피리 소리 등이 자연과 사람의 조화된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베토벤이 자연의 모습을 음에 의해 생생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제5번이 인간 해방의 영웅적인 남성적 성격을 갖는데 비해 거의 즉흥적으로 단숨에 쓰여진 <전원>은 자연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감정이 충만한 여성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극히 대조적이다. 하지만 전개부 구성이나 곡 전체의 구성 모두 두 곡이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는 점을 비교하여 듣는 것도 재미있을 듯 싶다.


곡 해설
베토벤의 걸작 중의 하나인 이 전원 교향곡은 그가 38세 때인 1808년에 작곡하여 그 해 12월 22일에 빈의 데어 안 빈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는 빈 근교에 있는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귓병으로 1802년 여름에 정양한 일이 있었는데 병에 자신을 잃어 절망한 나머지 비통한 유서를 쓴 일이 있다. 1808년 여름 그는 다시 이곳에서 정양했는데 그 때 자연에서 받은 감명을 작품에 담은 것이 이 전원교향곡이다. 그는 이 작품을 특징있는 교향곡, 전원생활의 회상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듣는 사람으리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씌어 있다.다시 말해서 이 해석은 듣는 사람의 자유에 맡기게 했고 별로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일종의 회화라기보기는 오히려 감정의 표현이라는 단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는 자연을 그리려했으며 그가 귓병으로 고생했을 때는 자연을 사람보다 더 사랑한다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곡은 운명교향곡과 같이 로프코비츠 공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되었다.베토벤의 중기 교향곡의 걸작이며 자연으로부터 받은 감동와 정서를 이 곡으로 표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회화(繪畵)보다 오히려 감정의 표현이다"라고 한 그의 말에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운명교향곡(運命交響曲)》,《제9교향곡》등과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전원'이라는 제명은 베토벤 자신이 붙였다고 하는데, 모두 5악장으로 되었으며 각 악장에도 다음과 같은 표제어를 직접 붙여 놓았다.

 

 
제1악장 : Allegro ma non troppo

-시골에 닿았을 때의 유쾌한 감정의 눈뜨임-(Awakening of cheerful Feelings upon Arrival in the Country)


F장조 2/4박자, 소나타 형식.  서주 없이 곧바로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제시하면서 밝고 신선한 전원의 풍경과 시내물의 한가로운 흐름을 연상케하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묘사합니다. 마치 밝고 따사로운 햇살과, 미풍을 따라 흙내음이 감도는 듯한 악장이다.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F장조 2/4박자는 소나타 형식을 채택했으며, '시골에 갔을 때 받은 유쾌한 감정'이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다. 서주없이 곧바로 제1주제가 시작된다. 이것은 명랑한 전원을 생각함과 같은 기분이다. 따라서 전원이 밝은 풍경, 다시 말해서 조용하고 평화에 찬 분위기를 여기에 그렸다. 온갖 초목들을 푸르러 무성한데 새들은 지저귀고 미풍은 스쳐, 자연은 정숙하기만 하다. 제1주제는 전체 8마디의 악절 중 앞의 4마디가 생략되어 버린 독특한 유형으로 청자로 하여금 이미 곡의 중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주는 시작이다. 제 1바이얼린으로 나타나는 제 2주제는 시원스런 분산화음적 하행을 바탕으로 하되, 전체적으로는 음계적 상행을 보여준다. 발전부는 제 1주제의 세 가지 모티브를 활용하여 이루어지고, 제 2바이얼린과 비올라가 제 1주제를 재현함으로써 재현부가 시작된다. 제 1바이얼린의 카덴차에 이어 코다로 악장을 마친다..

 

 

제2악장 : Andante molto mosso

-시냇가의 정경(情景) (Scene by the Brrok)


b플랫 장조, 12/8박자, 소나타 형식. 제1주제에서 바이올린 선율에 의한 자연의 소리를 묘사하고 제2주제는 아름답고 평온한 들판의 정경을 노래하였다.특히, 재미난  특징은 코다(Coda ; 소나타 형식의 악곡 끝 꼬리) 부분에서  플룻의 밤 꾀꼬리, 오보에의 메추라기, 그리고 클라리넷으로 뻐꾸기 소리를 묘사하고 있다.안단테 몰토 모소 Bb장조 12/8박자 소나타형식, 시냇가에 자연을 묘사한 가장 놀란만한 표현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반주는 흐르는 물을 연상케 하며 여름날 들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들을 연상케하는 제1테마가 제1바이올린에 의해 제시되는데 자연의 소리를 방불케 한다.제2테마는 아름다운 들의 정취를 묘사했으며 코다에서는 나이팅게일(Nightingale 밤 꾀꼬리)소리, 메추리 소리, 뻐꾸기 소리들의 정경을 묘사했다. 소나타 형식의 악장으로 <냇가의 정경>이란 표제가 붙어 있다.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의 흘러내리는 시냇물의 속삭임을 느끼게 하는 3련음의 반주가 악장 전체에 흐르고 있다.여름 들에서 울리는 자연의 소리를 연상시키는 제1주제가 제1바이올린에 의해 나오는데 이것은 단편적인 것에 그 치고 전체의 정서는 화창한 리듬을 타고 흐르는 하모니로 무르익게 하고 있다. 제2주제는 같은 제1바이올린에 유도되어 아름다운 경치를 그려준다. 얼마 안되어 춤추는 듯한 멜로디가 낮은 음부 에 나타나 시냇물이 한없이 평화에 넘쳐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끝부분에서는 플루트가 꾀꼬리의 소리를, 오보에가 메추리의 소리를 그리고 클라리넷이 뻐꾸기의 소리를 묘사하고 있어 더욱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로망 롤랑은 [새소리의 자연적인 모방이 아니고 이것은 이를테면 자연이 들려주는 가지가지의 노래와 속삭임으로 엮어진 것이고 보면 새소리도 역시 작곡자에게는 이미 소멸된 하나의 세계를 자기의 정신속에 재창조한 일부분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제3악장 : Allegro

-시골 사람들의 단란함-(Merry Gathering of Country Folk)


F장조 3/4박자(트리오는 B플렛 장조 2/4박자), 스케르쪼와 트리오 형식.오스트리아 고유의 춤곡을 기본으로 하여 시골 사람들의 정겨운 모임을 묘사하였다.축제일의 흐뭇한 생활 모습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표현한 악장이다.축제의 마무리 춤이 끝나면, 오보에가 전원풍의 선율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파곳이 뒤따라 들어 온다.알레그로 F장조 3/4박자, 트리오는 Bb장조 2/4박자, 3부형식의 스케르쪼 악장이다. 이 악장에 붙은 표제는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했던 베토벤의 눈은 농촌의 생활 풍경으로 옮겨지고 있다.3부로 된 현악기에 나타나는 주제는 지금까지 자연만을 그리고 있던 곡을 바꾸어 시골 사람들의 풍경과 시골 잔치 에서 춤추는 농민들의 모습을 그려 주고 있다. 이것은 소박한 3박자의 무곡이다. 시골 사람들의 즐거움 감정은 차츰 고조된다. 바순의 반주 위에 오보에가 독일 민요에 의한 유쾌한 가락을 독주한 다.트리오는 2/4박자로 변해서 거칠고 기운찬 무도곡을 새로 연주한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3박자인 스케르쪼로 돌아가 흥분된 기분 속에서 절정을 이룬다

 


제4악장 : Allegro

-천둥 ·폭풍우(Thunderstom)


F단조, 4/4박자, 트레몰로가 주요 동기로 이어지면서 폭풍우의 정경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이윽고 폭풍우가 그치고, 플룻이 가볍게 음계를 상승하여 그대로 끝악장으로 들어간다.알레그로 f단조 4/4박자 폭풍우와 우레 소리라는 표제인데 팀파니, 피콜로, 트럼본등으로 된 폭풍의 묘사가 효과적이다. 트레몰로가 폭풍의 경고와도 같이 불안하게 주요 동기로 나타난다. 광야에 몰아치는 푹풍우의 정취를 그대로 나타냈다. 일정한 형식이 없는 일종의 간주곡이다. 표제는 <천둥폭풍우>이다. 낮은 현악기가 트레몰로로 바람을 일으키고, 팀파니의 연타로 천둥이 울린다. 지금까지의 즐거웠던 춤도 자취를 감추고 현의 단편적인 가락이 쓸쓸하게 나타난 다음, 전합주는 치열한 음향속으 로 뛰어든다. 관악기의 울부짖음과 현악기의 트레몰로로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피콜로가 번개와 같이 위협적인 소리를 낸다. 이윽고 바람도 자고 비도 멎으면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한 가닥 햇살 같은 오보에의 멜로디가 나타난다. 마침내 폭풍우가 사라졌을 때 청아한 플루트의 가벼운 상승 멜로디로 곡은 다음 악장으로 넘어간다,

 

 

제5악장 : Alegretto

-목장 사람들의 노래-

폭풍우 뒤의 기쁘고 감사에 가득찬 감정(Shepherd's song - Happy and Thankful Feelings after the Storm)F장조, 6/8박자, 론도 소나타 형식. 클라리넷이 목동의 피리소리를 표현한 서주가 나타난 뒤, 호른이 이를 받아 메아리 친다. 대자연을 에워싸는 듯한 느긋한 코다(coda)로 곡을 끝 맺는다.알레그레토 F장조 6/8박자, [양치는 사람의 노래, 폭풍우가 지난 후의 감사] 멀리서 양치는 목동들의 피리 소리가 들려 오는데 폭풍우가  지난 뒤에 볼 수 있는 전원 풍경이다. 나중에는 자연과 사람과의 조화된 감정을 생각게 하는 장엄하면서도 숭고한 마지막 악장이다.목가적인 도입부를 가진 론도 형식의 악장이다. 이 악장에 붙은 표제는 <목동의 노래 - 폭풍우 뒤의 기쁨과 감사 의 기분>이다. 목동의 피리를 연상케 하는 클라리넷의 명쾌한 멜로디가 멀리서 들려온다. 이 도입부는 얼마 안되어 호른에 옮겨진다.이어서 바이올린으로 제시되는 평화로운 론도의 주제가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호른 등에 의하여 되풀이된다. 현에 의한 제2주제, 클라리넷에 의한 제3주제가 매번 론도 주제를 끼고 나타나서 정규적인 론도 형식으로 힘차고 순수한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그리하여 곡은 대자연과 인간 사이에 엮어진 조화를 상징하듯 웅대한 코다로서 끝난다. 행복과 감사의 찬미로 절정에 달했던 코다는 차차 열기를 식히며 가라앉아 격조 높게 곡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해서 자연에 대한 베토벤의 장대한 묘사는 끝을 맺는다.

베토벤 [Beethoven, Ludwig van, 1770.12.17~1827.3.26]
독일의 본출생


할아버지 루트비히와 아버지 요한도 음악가였으며 악재(樂才)를 인정한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적 소질을 과시하려고 4세 때부터 과중한 연습을 시켰으며, 7세 때에는 피아노 연주회까지 열었다.  베토벤은 몇몇 선생의 지도를 받았는데 1779년에 그를 가르친 크리스찬 고트로프 네페로부터는 음악뿐만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인 영향까지 받았다. 1782년 궁정예배당 오르간 연주자로 출발, 2년 만에 정식 멤버로 임명되고 1787년에는 빈에 가서 흠모하던 모차르트를 만났으나, 어머니의 위독으로 곧 본으로 돌아와 이 해에 끝내 홀아비가 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을 떠맡았다.그러다가 1792년 바르트슈타인백작을 비롯한 친구들의 원조로 빈에 유학, 결국 그 곳이 그의 영주의 땅이 되었다. 빈에 자리 잡은 베토벤은 귀족들의 보호를 받았으며, 셴크 ·알브레히트베르거 ·하이든 ·살리에리 등에게 사사하여 음악가로서의 지식과 능력을 키워 나갔다.1795년 피아노 연주자로서 데뷔하고 이 시기에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피아노 3중주곡》을 발표하여 착실한 첫발을 내디뎠다. 1796년 프라하 ·드레스덴 ·베를린을 여행하고, 1800년에는 《제1교향곡》과 6곡의 현악4중주곡을 발표했다.그러나 이 무렵부터 귓병이 나서 점차 악화하였다. 절망한 그는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고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포기, 작곡에만 전념했으며 두문불출로 외부와의 접촉을 피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제2교향곡》(1802), 오라토리오 《감람산상(橄欖山上)의 그리스도》(1803), 그리고 1804년에는 《제3교향곡(영웅교향곡)》을 작곡하여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개성적인 스타일을 확립하였다.1805년 오페라 《피델리오》의 초연에 실패하고, 이듬해 이를 손질하여 재연하였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 작품이 최종적인 형태로 무대에서 인정을 받은 것은 1814년의 일이다. 베토벤의 작품은 빈을 비롯하여 유럽 각지의 출판사가 앞을 다투어 간행하였다. 출판에서의 보수와 귀족들의 지원으로 모차르트와는 달리 안정된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후원자로서 특히 유명한 귀족은 루돌프대공(大公), 롭코비츠공작, 킨스키공작 등이었다. 1810년에는 괴테의 극시(劇詩)로 《에그몬트》를 작곡하였다. 그 후에 유명한 《영원한 연인》에 부치는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누구에 대한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러한 여성에의 동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영웅교향곡》이 작곡된 이후의 약 10년간은 창작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으며, 교향곡 ·서곡 ·협주곡 ·피아노소나타 ·바이올린소나타 ·기타 실내악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씌어진 것들이다. 특히 《제5교향곡(운명교향곡)》(1808) 《제6교향곡(전원교향곡)》(1808) 《피아노협주곡 제5번(황제)》(1809) 《바이올린협주곡》 (3곡, 1806), 피아노곡《아파시오나토 소나타》(1805) 등이 유명하다.1815년 이후의 12년간은 베토벤의 창작기 중에서 후기에 속한다. 이 무렵에는 정치와 사회 정세의 변화도 있었고, 친지(親知)도 적어졌으며, 또 귓병의 악화로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필담(筆談)을 통해서만 의사를 소통할 수 있었다.그 자신의 연주회 횟수도 줄었고, 빈에서는 보다 가벼운 음악이 애호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의 일련의 창작활동은 1817년에 가장 저조했으나, 그 이후 다시 힘찬 작곡활동을 계속하여 뛰어난 대작들을 내놓았으며, 루돌프대공에게 바친 《장엄미사곡》(1823)과 합창을 포함한 《제9교향곡》(1824)이 그 정점을 이루었다.장례는 29일에 거행되었는데, 2만을 넘는 시민들이 참가, 애도하였다고 한다.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더불어 빈고전파(古典派)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확립한 고전파의 형식이나 양식은 베토벤에 의하여 더 개성적으로 다듬어졌으며, 또한 그의 손으로 낭만파에의 이행(移行)도 준비되었다.본 시절에는 만하임악파의 영향 아래 습작적인 작품을 썼으나, 벌써 이때부터 개성적인 특징이 엿보였다. 1800년 전후에는 특히 하이든에게 받은 영향을 나타내면서도 개성적인 스타일의 작품들을 거쳐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하였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이를테면 정적(靜的)인 고전성(古典性)에 비하여 베토벤의 작품은 동적인 다이내믹한 힘을 특징으로 하는데 형식적으로는 강고한 형식감(形式感)으로 일관되어, 곡마다 독자적인 스타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후기의 창작활동은 중기에 비하여 다이내믹한 힘은 부족하지만, 보다 깊은 마음의 세계가 표현되어 신비스러울 정도의 감동적인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이 시기는 낭만파의 초기의 대표자들인 베버나 슈베르트의 활동과도 겹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베토벤의 작품들은 그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후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지금도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음악가이면서도 청각을 잃었지만, 이를 극복한 정신력은, 인간의 집념과 생활태도의 귀감으로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