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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입] 지난3년 ‘천국’이었으면 여당 찍고 지옥이었으면 야당 찍자

풍월 사선암 2020. 4. 14. 08:03

[김광일의 입] 지난3천국이었으면 여당 찍고 지옥이었으면 야당 찍자


 

이번처럼 선명한 선거는 처음 본다. 이미 결판났다. 전국 사전투표율이 26.69%를 기록했고, 그중에서도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 사전 투표율이 34.56%였다. 수도권에서 1위다. 이곳은 여당 대표 이낙연, 야당 대표 황교안, 두 장수가 맞붙은 곳이다. 유권자들이 만사 제쳐놓고 투표장에 달려갔다. 왜 그랬을까. 왜 종로구 유권자들은 사전투표일이 금·토 주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성난 얼굴을 하고" 투표장으로 달려갔을까.

 

이번처럼 선명한 선거는 처음 본다. 고뇌할 필요 없다. 그냥 가슴에 대고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수도권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3년 문재인 정권이 낙원이었으면 여당 찍고, 지난 3년 문재인 정권이 악몽이었으면 야당을 찍으면 된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지고지순한 학자 출신으로 진정한 사법 개혁자라고 생각되면 여당 찍으면 된다. 조국을 다시 불러내어 복권 시키고, 나중에 대통령 후보까지 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면 여당 찍으면 된다. 그러나 조국을 희대의 파렴치범으로 보고, 그와 그의 일가족이 웅동학원 비리, 자녀 입시비리, 사모펀드 비리 같은 온갖 비리 백화점의 운영자였다고 본다면 야당 찍으면 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실은 가족 비리를 숨기고 있는 사람이며, 임명권자에게 항명을 하고 있는 사람이며, 사법 개혁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당 찍으면 된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총장이 우리 역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 있는 권력에게도 칼을 들이댔던 헌법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야당을 찍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너무 간단하고 선명하다. 선거 끝나고 윤석열 총장을 거리로 쫓아내려면 여당 찍으면 된다. 반대로 윤석열 총장이 권력의 고름덩이를 솎아낼 수 있는 소금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야당에게 표를 주면 된다.

 

한국은 이미 마지막까지 중립을 지켜야할 국가기관이 허물어진 나라다. 어떤 경우에도 당파적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헌법적 가치와 국민적 양심을 지켜야할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 몇 곳 있다. 대법원, 헌법재판소, 방송통신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이런 곳들이 이미 문재인 정권 사람들로 점령당해 버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나왔다. 중앙선관위는 야당의 선거 피켓인 민생 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 ‘거짓말 OUT, 투표가 답이다’, 이 두 문구를 사용 못한다고 막아버렸다. 대신 여권이 들고 나온 ‘100년 친일 청산 투표로 심판’ ‘투표로 70년 적폐 청산은 괜찮다며 허용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민생 파탄이 현 정권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잘됐다. 중앙선관위 덕분’(?)에 유권자들은 오히려 더 선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됐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지난 70년을 적폐 청산의 대상이라고 본다면 문재인 당을 찍으면 된다. 그것이 문재인 당의 피켓이요, 선관위가 괜찮다고 한 피켓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난3년 민생이 파탄 났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민생 파탄을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반 문재인 당을 찍어야 한다.

 

지금까지 여당·야당의 선대위 본부는 겸손 모습’ ‘낮은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려고 애썼다. 어느 선거든 유권자가 보기에 오만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막판 선거를 망쳤기 때문이다. 우리 유권자들은 다소 무능해 보이는 것은 참아줘도 오만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하고 응징해버린다. 그런데 여당은 어느 순간 겸손이라는 용수철이 끊겨 버린 것 같다.

 

주말 범여권에서 나온 180석 압승론이 끊어진 용수철이다. 이해찬 대표는 "1당은 확보했고, 150석이 넘는 과반수 정당을 만들어야 개혁 과제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다"고 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선거 판세가 민주당의 압승 분위기로 흐르고 있어 180석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지난 대선 때도 봤지만 우리 선거에서 ‘180축복의 숫자가 아니라 저주의 숫자. 그 숫자를 입에 올렸던 정당은 국민들에게 참담한 버림을 받아 몰락하고 말았다.

 

요즘 몇몇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넘게 나오자 그것을 근거로 해서 여당 우세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방역 실패로 사망자가 2만 명에 달하는 이탈리아의 주세페 콘테 총리 지지율이 3월말 71%였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총리 본인이 감염돼 중환자실 신세를 졌고, 사망자가 11000명에 달하는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 지지율이 72%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지지율은 감염 공포에 질린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현직 정부 수반에게 심리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반증일 뿐이다.

 

언론사들도 지난 20대 총선 때 여론조사에 그렇게 속았으면서도 벌써 다 잊은 듯 또다시 여론조사를 기계적으로 따라가는 보도를 하고 있다. 언론은 유권자보다 과거를 빨리 잊어버린다. 선거 직전 조사는 물론이고 출구조사까지 엉터리였던 불과 4년 전 실수를 잊어버리고 이번에도 여론조사 결과를 앵무새처럼 되뇐다. 그래서 내놓은 기사들이 여당 우세. 때로는 압도적 우세라는 말도 쓴다.

 

언론이 여당 우세라고 규정해버리면 막판에 자유·보수 쪽으로 기울었던 중도파와 부동층이 투표를 포기해버릴 수가 있다. 판세는 절대 그렇지 않다. 빅데이터가 가리키는 지표는 박빙이거나 오히려 야당 우세인 곳도 많다. 수도권에서도 그렇다. 국민일보가 경기대 빅데이터 센터 김택환 교수팀과 공동으로 320일부터 49일까지 주요 격전지 6곳에서 게시글 52만 건을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기법으로 분석했다. "디지털 빅데이터 민심은 여론조사 결과와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에서 이낙연은 "지난 2일부터 부정 감성어가 증가하고, 긍정 감성은 다소 감소하는 추세를 나타냈다"고 한다. 황교안은 "‘n번방 호기심’, ‘키 작은 사람 투표용지등 발언과 막말 후보 제명 논란이 다시 부정 평가를 증가시켰다"고 했다. 마지막 표심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을까. 서울 강남갑에서는 여론 주목을 받는 통합당 태영호 후보의 인지도가 4선 의원인 민주당의 김성곤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 수성갑에서는 주호영에 쏠렸던 민심이 후반엔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서울 동작을에서는 민주당 이수진 후보의 부정 평가가 증가하면서 통합당 나경원 후보와 초박빙세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서울 광진을에서는 민주당 고민정 후보가 우세했으나 빅데이터는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고민정 후보에 대한 부정 감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을에서도 뒤지던 통합당 배현진 후보가 총 언급량에 있어서 민주당 최재성 후보를 앞서고 있다고 한다. 추세는 격전지에서 통합당이 뒤집기를 하고 있다는 쪽이 많다.

 

외부로 알려지면 오만하다고 할까봐 쉬쉬하면서 갖고 있는 내부 판단은 미래통합당이 제1당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그래서 통합당은 유권자들에게 "지금 투표를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7년이 송두리째 걸려 있는 선거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세계적 경기 침체가 코앞에 닥쳐 있는 상황에서 해외 수출 의존도가 70%에 이르는 대한민국 경제를 다시 한 번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에게 맡길 것인가, 아니면 독일 경제학 박사 김종인에게 맡길 것인가, 그 갈림길이기도 하다. 지난3년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52시간제’ ‘탈원전’ ‘부동산정책으로 국민이 살만했다고 생각하면 문재인 당을 찍으면 된다. 그러나 청와대 여민관 문 대통령 집무실에 마련됐던 일자리 상황판은 3년 전 딱 한번 공개됐을 뿐 그 뒤로 지금껏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을 만큼 일자리는 망했고, ‘소득주도실패였다고 생각한다면 반() 문재인 당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


조선일보 입력 2020.04.13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