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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 만일암기(重修挽日菴記) <정약용>

풍월 사선암 2020. 4. 6. 17:17

중수 만일암기(重修挽日菴記) <정약용>



 

집짓기


열흘 만에 버리는 것은 누에고치이고, 여섯 달 만에 버리는 것은 제비의 둥지이고, 일년 만에 버리는 것은 까치둥지이다. 그러나 그 집을 지을 때에 누에는 창자에서 실을 뽑아내고, 제비는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고, 까치는 열심히 풀과 볏짚을 물어오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져도 피곤한 줄을 모른다.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지혜를 낮게 생각하고 그 삶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을 자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붉고 푸른 정자와 누각도 잠깐 사이에 먼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니, 인간들의 집 짓는 것도 이 미물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백년을 살다가 그를 버린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할 것이 없는데, 하물며 목숨의 길고 짧음이 정해지지 않았음에랴. 우리가 처자식을 잘 살게 하고 후손에게까지 전한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할 것이 없는데, 하물며 머리를 깎고 물들인 장삼을 입은 승려의 처지에 있어서랴. 승려이면서도 집을 고치는 것은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승려 두운(斗雲)이 그의 집을 새롭게 단장하고 크게 확장하였는데 이미 준공이 되자, 다산(茶山)에 있는 나의 초당(草堂)으로 찾아와 말했다. 이 지방에 있는 절만 해도 바둑판에 바둑알 벌려 놓은 것과 같아 종과 북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니, 가는 곳마다 내 집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 머리도 이미 다 빠져 늙은이가 되었는데, 내가 비록 어리석으나 어찌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다만 잘 보수하여 후인들에게 남겨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나는 그 말을 착하게 여겨 글을 짓고 그 집 이름을 물어 보니, ‘두륜산(頭輪山)의 만일암(挽日菴)’이라고 하였다. 산은 해남현(海南縣)에 있고, 그 암자를 창건한 사람은 백제(百濟)의 승려 정관(淨觀)이라고 한다.


<대흥사(大興寺)에서 바라 본 두륜산(頭輪山) 전경>


重修挽日菴記

 

十日而棄者蠶之繭也六月而棄者鷰之窠也一年而棄者鵲之巢也然方其經營而結構也或抽腸爲絲或吐涎爲泥或拮据荼租口瘏尾譙而莫之知疲人之見之者無不淺其知而哀其生雖然紅亭翠閣彈指灰塵吾人室屋之計無以異是也使吾人必百年而棄之猶不足爲矧脩短未定哉使吾人必廕其妻孥傳之雲仍猶不足爲矧剃染爲僧哉僧而繕室屋者其非自爲身謀可知也浮屠斗雲新其室而大之旣竣過余于茶山之館而語之曰蘭若之在域中者如棋布楸鍾鼓之聲相聞無適而非吾室也而吾之髮已種種吾雖愚豈爲是哉聊繕之以遺後人余善其言而識之詢其室曰頭輪山之挽日菴也

山在海南縣剏建其菴者百濟僧淨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