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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식구끼리만 찍은 가족사진… 시어머니가 거실 벽을 쳐다봤다

풍월 사선암 2020. 3. 30. 18:39

친정식구끼리만 찍은 가족사진시어머니가 거실 벽을 쳐다봤다

[아무튼, 주말-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고부간의 거리를 결정하는 건 시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입니다. 대개 시어머니는 다가가고 며느리는 도망치는데, 늙은 어머니가 젊은 며느리의 걸음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붙잡기보다는 놓아주는 게, 길들이기보다는 길드는 게 현명한 요즘 시어머니입니다. 그러다 정이 들면 감사할 일이고, 영 멀어진대도 어쩔 수 없는 일. / 홍여사

 

명절에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요즘은 그리 많다지요? 뉴스로 볼 때는 뭐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우리 아들 며느리들이 어느 해 그리한다고 해도, 선선히 허락해 줄 요량이었지요. 그런데 시집간 지 갓 1년 된 막내딸이 이번 설에 저희끼리 해외로 여행을 간다 하니, 말문이 막히더군요. 대체 누구한테서 나온 생각이냐고 물으니, 시아버님이 지난 추석 때 그러시더랍니다. 내년부터는 명절에 꼭 안 와도 되니, 둘이 여행 가고 싶으면 그리하라고요. 해맑게 들떠 있는 딸에게 저는 찬물 끼얹는 소리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차례도 지내는 집인데 외며느리가 어떻게 그래? 결혼하고 최소한 오 년은, 아니 삼 년은 참석해야지."

 

"아버님이 먼저 말씀하셨다니까."

 

"그래도 그렇지. 말씀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실천에 옮기니?"

 

"우리 아버님은 나중에 다른 말씀 하실 분이 아니네요."

 

정말 그렇게 믿는 것인지, 아니면 믿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더군요. 물론 매사에 배려심이 깊으시던 사돈 양반이니, 아이들을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실 겁니다. 특히 며느리가 시집에서의 명절을 힘들어할까 봐 걱정스러우셨겠지요. 저도 큰며느리를 보고 한동안 그런 눈치를 봤었답니다. 내가 요즘 세상에 맞지 않는 것들을 요구하고 있나? 본의 아니게 나쁜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괜찮다, 너희 좋도록 해라 소리를 하게 되더군요. 실은 괜찮지 않은 것들까지도 괜찮다고 사양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아마 우리 사돈어른도 작년 추석 때 그런 기분을 느끼셨는지 모릅니다. 요즘 아이인 새 며느리가 요즘 풍속대로 명절의 해외여행을 내심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싶으니, 내년엔 본가에 올 필요 없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신 게지요. 사전에 사부인과 상의도 없이 말입니다.

 

문득 돌아가신 나의 시어머님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 어느 시어머니보다도 너그럽고 신식이시던 우리 어머님. 심술이나 욕심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지요. 용돈을 드린대도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치셨고, 함께 여행을 가시자고 해도 절대 따라나서지 않으셨지요. 명절에도 차례만 지내면 며느리를 친정으로 등 떠밀어 보내셨고, 생신 날엔 밖에서 식사하고 잠깐 저희 집에 들르시는 것조차 삼가셨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친정 식구들이나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지요. 우리 시어머니는 여느 시어머니와 다른 분이라고요. 나도 훗날 그런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고요.

 

그 생각이 조금 바뀐 건 결혼 20년 차, 어머님 연세 여든이 가깝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로 오랜만에 저희 집에 와서 하룻밤 묵으신 어머님이 이튿날 돌연 노기 띤 얼굴로 저를 불러 앉히지 않으시겠어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조아린 저에게 하시는 말씀. "네가 시집와서 지금껏 며느리로서 딱히 한 일이 뭐냐?"

 

저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져 버렸습니다. 저 자신이 세상 편한 맏며느리인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시어머님께 그런 꾸지람을 들을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나 감히 말대꾸를 할 수는 없었죠. 그 길로 한사코 집에 가신다고 보따리를 들고 나서시는 어머님을 붙잡으며 부디 노여움을 푸시라는 말만 반복했답니다. 화를 내시는 이유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말입니다.

 

그렇게 어머님이 가시고 하루가 지나서야 깨달았지요. 사단이 된 것은 우리 집 거실에 새로 걸린 액자인 듯했습니다. 몇 달 전, 친정아버지 칠순을 기념해 가족사진을 찍었거든요. 며느리 사위 손주들까지 포함해 열다섯 명이 옷을 맞춰 입고 모여선 대형 사진. 그걸 보신 어머님은 부럽다 못해 몹시 서운하셨던가 봅니다. 어머님 칠순 때도 가족사진을 찍자는 말이 얼핏 나오긴 했었습니다. 그러나 바쁜 자식들 번거롭게 한다는 이유로 어머님 당신이 고개를 저으셨죠. 그때 두 번도 권하지 않고 입 다물고 있던 며느리가 제 친정에 가서는 대전 춘천 사는 동생들까지 다 불러올려 가족사진을 찍었구나 싶으니 야속하고 괘씸(?)하셨던 모양입니다. 저는 바로 어머님께 제 불찰에 대한 용서를 구했습니다. 서운하셨을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발심도 들었습니다. 용돈도 선물도, 그 어떤 효도 이벤트도 당신이 다 사양하셨으면서 이제 와 며느리로서 한 일이 무어냐니요. 이제 보니 우리 어머니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이신가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저 자신이 며느리를 보고, 딸 시집도 보내 보니 차츰 느껴지는 바가 있더군요. 겉 다르고 속 다른 건 우리 어머님의 인격이 아니라 고부 관계의 속성 그 자체가 그랬던 겁니다. 괜찮다, 필요 없다 말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딸한테 다르고 며느리한테 다르더군요. 딸은 정말 안쓰러워서라면, 며느리는 어렵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 크지요. 사양하는 어머니를 대하는 자식의 마음도 한 가지가 아닙니다. 시어머니가 사양하시면, 며느리는 못 이긴 척 그냥 넘어가고도 홀가분해합니다. 그러나 친정 엄마가 사양하면 딸은 기어이 제 생각대로 해 드리려 하죠. 엄마가 못 이긴 척 받아들일 때까지 말입니다.

 

사실 그 가족사진도 그랬습니다. 친정 부모님은 마다하시는 걸, 맏딸인 제가 몰래 강행했던 겁니다. 삼 남매가 약속을 잡느라 진을 빼면서도 액자를 걸며 기뻐하실 부모님 생각에 즐거웠었지요. 그러나 시어머님이 가족사진 필요 없다고 하실 때는, 솔직히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동서와 협의해서 어머님께 깜짝 선물을 할 생각은 안 들더군요. 아마도 어머님은 그날 아들 집에 걸린 사돈네 가족사진에서 그런 며느리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그토록 분별을 잃고 화를 내셨던가 봅니다. 며느리는 역시 딸이 아니구나 하고.

 

참 고단하고 어려운 길인 것 같습니다. 결코 분별을 잃지 않는 시어머니가 되는 길은 말입니다. 무조건 참고 허용해주시던 우리 어머님조차 어느 한순간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형식을 중시하지 않는 요즘 아이들을 며느리로 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슬픈 얘기지만, 고부 관계에 처음부터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게 유일한 방법인 듯합니다. 바라는 게 많아도 안 되겠지만, 무조건 내가 참고 허용하겠다는 생각 또한 또 다른 기대심리를 낳겠지요. 사람은 절대로 자기 그릇 이상의 너그러움을 담아낼 수 없으니 말입니다.

 

제 그릇을 놓고 여러모로 생각한 끝에, 저는 이번 명절에 아들 며느리들에게 선언했답니다. 앞으로는 너희도 명절에 번갈아 해외여행들 다녀오라고요. 다들 선뜻 못 믿는 눈치이기에, 진심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나는 속에 없는 말은 안 한다고, 그 대신 내가 꼭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 또한 너희 눈치 안 보고 요구할 거라고요. 괜찮은 것만 괜찮다 하고, 안 괜찮은 건 안 괜찮다 할 거라고요.

 

그나저나 명절에 기어이 여행 다녀온 딸은 요즘 시부모님과 어떻게 지내나 모르겠습니다. 그 역시 제가 알아서 헤쳐갈 일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