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5월 - 피천득

풍월 사선암 2019. 9. 6. 18:14


5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치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의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 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섬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노라, 사랑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잃었노라, 사랑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이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 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반포 '피천득 산책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