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활/맛집,음식

영원한 이인자...고기집서 깻잎이 상추에 밀린 이유

풍월 사선암 2018. 10. 3. 12:24

[문득,궁금]'고기엔 상추쌈', 깻잎은 왜 상추에 밀렸나

 

삼겹살에 채소 쌈은 한국인이 대표적인 외식메뉴다. 채소 쌈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상추와 깻잎이다. 그런데 대부분 고깃집은 깻잎보다 상추를 더 많이 내온다. 상추만 내는 고깃집은 있어도 깻잎만 내는 고깃집은 찾기 힘들다.

 

한국인의 상추편애는 사실일까. 깻잎은 어째서 삼겹살 주군의 오른팔이 아닌 왼팔에 머무는 걸까. 상추에 밀린 깻잎은 영원히 2인자 신세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서울 성북구 정릉 '청수장'의 생고기 돼지갈비 상차림. 가득 담겨 나온 상추가 눈에 띈다.


상추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인의 상추 사랑에 있다. 고깃집에서 실제 상추를 더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재벌 총수들이 자주 찾는 고깃집으로 소문난 서울 중구 신당동 금돼지식당의 박세영(29) 사장은 에서 상추 선호의 배경을 찾았다. 박 사장은 "기본 쌈 채소로 상추와 깻잎을 각각 5, 3장씩 내고 있지만 추가 주문은 대부분 상추"라면서 "상추를 더 많이 드시기 때문에 처음부터 (깻잎보다)더 많이 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의 상추 사랑은 전통에 가깝다. 중국문헌 천록식여(天祿識餘)’에는 "고려 상추는 질이 좋아 사신이 가져온 상추 씨앗은 천금을 주어야 구할 수 있다 하여 천금채(千金菜)로 불린다"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로 넘어와서도 상추 선호 사상은 변하지 않았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조선 풍속은 지금까지도 소채(채소) 중에 잎이 큰 것을 모두 쌈을 싸서 먹는데, 상추쌈을 제일로 여기고 집집마다 심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때부터 상추가 쌈의 왕자로 불렸던 것이다.

 

팬층이 두터운 상추에 반해, 깻잎의 맛은 호불호가 갈린다. 특유의 향, 까끌까끌한 식감으로 깻잎을 꺼리는 고객들이 있어 상추보다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간다는 사람도 있다. 박 사장은 "특유의 향을 낯설어하는 외국인 손님들은 깻잎을 아예 먹지 않는다"면서 "간혹 깻잎만 찾는 분들이 있지만, 먹지 않는 손님도 많다"고 말했다.

 

 상추와 깻잎은 쌈 채소의 양대 산맥이다. 취향에 따른 쌈의 모습.


상추보다 세 배나 비싼 깻잎

깻잎이 상추보다 비싸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이날 기준 청상추 상품(上品)의 평년 가격은 4kg12530. 상등품 깻잎의 평년 가격은 4kg35874원으로 같은 무게 상추의 2.86배나 된다. 요리연구가 홍신애 나인스파이스 대표는 "3일이면 잎이 다시 자라나는 빠른 생육주기도 상추가 널리 보급되는데 도움을 줬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대를 이어 돼지고기 식당을 운영중인 문창헌(29) 조형이왕소금구이 사장은 상추와 깻잎을 41 비율로 낸다. 한때는 21 비율로 깻잎을 좀 더 늘여도 봤지만, 대부분 남더라는 것이다. 문 사장은 "상추 가격이 싼데다 소비자 입맛에도 익숙하다""요식업자 입장에서는 상추를 더 많이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폭염·한파로 상추 작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오를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삼겹살보다 상추가 더 비싸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식당 주인들은 이런 특수한 경우깻잎을 더 많이 내놓기도 한다.

 

상추, 더 풍성해 보이는 비주얼

선수들만 아는 숨은 이유도 있다. 잎이 넓고, 울퉁불퉁한 모양의 상추는 몇장만 담아내도 풍성해 보인다. 초록부터 적보라색까지, 색도 다양해 단조로운 상차림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반면 표면이 편평한 깻잎은 쌈 바구니에 담아도 풍성해 보이지 않는다. ‘비주얼에서 밀리는 것이다. 서울 중구 전주풍남회관은 쌈 채소로 상추 한 가지만 내놓고 있다. 이 가게 정상영(52) 사장은 "상에 낼 때 성추가 더 풍성해 보이지 않느냐"고 했다.

 

상추가 깻잎보다 주방에서 관리하기 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문 사장은 "상추는 풀이 죽어도 물에 담가 놓으면, 물을 먹고 금세 싱싱해진다"면서 "반면 깻잎은 물에 오래 닿으면 시들해져서 상품 가치가 사라진다"고 했다.


조선일보 입력 2018.10.03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