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 / 이해인

풍월 사선암 2018. 6. 7. 11:51


가수, 배우, 운동권 노래달라진 현충일 추념식

 

대통령, 19년만에 서울현충원 대신 대전현충원서 행사

배우 주원 등 복무 4은 애국가, 가수 최백호씨 '늙은 군인' 불러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충일 추념식도 이전과 달라졌다. 문 대통령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6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에는 대중에 익숙한 연예인들이 많이 등장했고 과거 같으면 선택되기 어려웠을 노래가 불렸다. 추념의 대상도 6·25전쟁 및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 독립운동 유공자 중심에서 소방관 등 일상 속 의인(義人)들로 넓혀졌다.

 

이날 추념식에는 대중 예술인들이 주요 장면마다 등장했다. 먼저 현재 군 복무 중인 배우 지창욱·주원·강하늘·임시완 등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부르기를 이끌었다. 이어 배우 한지민이 이해인 수녀의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라는 추모시를 낭송했다.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6일 거행된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에 군 복무 중인 배우 지창욱·임시완·강하늘·주원(왼쪽부터)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왼쪽 사진). 가수 최백호는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고(가운데 사진), 배우 한지민은 이해인 수녀의 추모시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를 낭독했다.

 

대통령의 추념사 이후 후반부에는 가수 최백호씨가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고 록밴드 장미여관이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발매한 '우리, 함께'라는 곡을 연주했다. '늙은 군인의 노래''아침 이슬'의 가수 김민기의 노래로 창작자 의도와는 무관하게 '군의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시절도 있다. 가사 중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등이 문제가 됐었다. 1980년대 집회·시위 현장에서 더 널리 불리기도 했다.

 

현충일 추념식의 이 같은 형식 파괴도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탁 행정관은 지난 5·18 추모 행사,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 등 정부가 공을 들이는 중요 행사의 기획자 역할을 하고 있다. 엄숙함을 강조했던 과거 행사와 달리 대중에 친숙한 예술인을 활용하고, 음악과 극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여권 관계자는 "여성 비하 성() 의식 논란에도 탁 행정관이 계속 기용되는 것은 그가 기획한 행사가 청와대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형식적 변화에 치우치면서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전도(顚倒)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날 현충일 메시지의 핵심은 '생활 속 보훈'이었다. 문 대통령은 작년 현충일 추념사에선 '애국'이라는 단어를 22번 언급했었다. 올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애국'7번으로 줄이고 대신 '가족' '이웃' '평범'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보훈'에 대해 "국가를 위한 헌신에 대한 존경"이라며 "이웃을 위한 희생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가슴에 깊이 새기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1999년 이후 처음으로 서울현충원 대신 대전현충원을 추념식 장소로 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대전현충원은 의사상자, 소방 및 순직 공무원들의 묘역이 조성돼 있다""독립 유공자, 참전 유공자, 군인 위주로 묘역이 조성된 서울현충원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애국과 보훈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권 관계자는 "보훈 개념의 확장은 냉전(冷戰)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라며 "보훈과 애국은 더 이상 보수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최근 남북 대화 분위기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안보'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킴으로써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이완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 / 이해인

  

민족 위해 목숨 바친

수많은 님들을 기억하며

우리 마음의 뜰에도

장미와 찔레꽃이 피어나는 계절

경건히 두 손 모아 향을 피워 올리고

못다한 이야기를 기도로 바치는 오늘은 66

몸으로 죽었으나 혼으로 살아있는 님들과

우리가 더욱 사랑으로 하나 되는 날입니다


바쁜 것을 핑계로 더러는 무심하고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 속에도

님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결코 잊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순하게 태어났고

언젠가는 묻혀야 할 어머니 땅

작지만 정겹고 아름다운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침묵의 소리로 말씀하여 주십시오


깊고 간절한 그리움 끝에

하늘과 땅을 잇는 바람으로 오시렵니까

오랜 기다림 끝에 남과 북을 이어주는

평화의 빛으로 오시렵니까

설악산과 금강산이 마주보며 웃고

한강과 대동강이 사이좋게 흐르는

한반도의 봄을 꿈꾸는 우리와 함께

이미 죽어서도 아직 살아있는

님들의 환한 미소가 태극기 속에 펄럭입니다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비석을 적시는 감동을

님들과 함께 나누는 오늘입니다


피 보다 진한 그리움으로 다시 불러보는 이름

세월이 가도 시들지 않는 사랑으로

겨레의 가슴 속에 푸른 별로 뜨는 님들이여

우리의 영원한 기다림이시여

힘들 때 힘이 되는 위로자시여


우리가 잘했을 땐 함께 웃어주고

잘 못 했을 땐 눈물 흘리며

잠든 혼을 흔들어 깨우는

지혜로운 스승이시여

미움을 사랑으로 녹이는

불이 되라 하십니까. 우리에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노래가 되라 하십니까.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의 길 위에서 이제 우리는

다시 사랑하고 다시 희망하며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되겠습니다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라고

서로 먼저 고백하고

서로 먼저 배려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아름다운 이 땅에서

내가 먼저 길이 되는 지혜로

내가 먼저 문이 되는 겸손으로

깨어 사는 애국자가 되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디딤돌이 되겠습니다

인내와 용기가 필요한 일상의 싸움터에서도

끝까지 견뎌내는 승리의 용사가 되겠습니다


분단과 분열의 어둠을 걷어내고

조금씩 더 희망으로 물들어가는 이 초록빛 나라에서

우리 모두 존재 자체로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

선이 승리하는 기쁨을 맛보며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늘 우리 곁에 함께 계셔주십시오

새롭게 사랑합니다

새롭게 존경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감사합니다.



넋은 별이 되고 / 유연숙

 

모른 척 돌아서 가면

가시밭 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당신은 어찌하여

푸른 목숨 잘라내는

그 길을 택하셨습니까

 

시린 새벽 공기 가르며

무사귀한을 빌었던

주름 깊은 어머니의 아들이었는데

바람소리에도 행여 님일까

문지방 황급히 넘던

눈물 많은 아내의 남편이었는데

기억하지 못 할 얼굴

어린 자식 가슴에 새기고

홀연히 떠나버린 아들의 아버지었는데

무슨 일로 당신은 소식이 없으십니까

 

작은 몸짓에도 흔들리는

조국의 운명 앞에

꺼져가는 마지막 불씨를 지피러

뜨거운 피 쏟으며 지켜낸 이 땅엔

당신의 아들 딸들이

주인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 무엇으로 바꿀 수 있었으리오

주저없이 조국에 태워버린

당신의 영혼들이 거름이 되어

지금

화려한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

파도처럼 높았던 함성

가만히 눈 감아도 보이고

귀 막아도 천둥처럼 들려옵니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수 많은 푸르른 넋

잠들지 못한 당신의 정신은 남아

후손들의 가슴속에 숨을 쉬고

차가운 혈관을 두드려 깨웁니다

 

이제 보이십니까

피맺힌 절규로 지켜진 조국은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몸을 태워

어둠을 사르는 촛불같이

목숨 녹여 이룩한 이 나라

당신의 넋은 언제나

망망대해에서 뱃길을 열어주는

등대로 우뚝 서 계십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잊혀지는 일 많다 하지만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은

우리들 가슴속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배우 이보영씨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유연숙 작가 추모 헌시 '넋은 별이 되고'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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