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활/바둑,오락

바둑 둘 때 미운 사람 ‘베스트 9’

풍월 사선암 2017. 8. 10. 11:24


바둑 둘 때 미운 사람 베스트 9’


바둑에 미친(!)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있습니다. 끼니도 거르고 잠도 안 자면서, 심지어는 생업까지 제쳐놓고 대국에 빠져드는 그 숱한 마니아들. “바둑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가요?”하고 물으면 그냥 미소지을 뿐입니다.

 

라이벌 골려줄 때의 통쾌감 때문에 둔다는 솔직한 대답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어쨌든 아마추어 마니아들의 바둑에 대한 맹목적 충성도는 대국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들의 그것을 오히려 능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로의 바둑에 학문적 깊이가 있다면 아마추어들의 수담(手談)엔 아마추어 나름의 정취와 애환이 있습니다. 한 판 승리에 천하를 얻은 듯 즐거워하고, 아쉬운 패배에 집행일 받아놓은 사형수처럼 땅이 꺼져라 한 숨을 쉽니다.

 

묘수를 터뜨린 희열에 들 떠 잠 못 이루고, 다 잡은 승기를 아차 실수로 놓친 자책감 속에 폭음 합니다. 이런 저런 애환들은 프로들은 누릴 수 없는 아마추어들만의 낭만권(浪漫權)’인 셈이지요.

 

아마추어 바둑 마니아들의 모든 애환은 상대 대국자로부터 출발합니다. 이른바 기적(棋敵)들이죠. 어떤 대국 파트너와 어울리느냐가 그날 바둑 분위기의 전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반외무인(盤外無人)이라고요? 우리 아마추어들은 그런 거 잘 모릅니다.

상대 대국자의 대국 버릇, 매너, 기풍 등에 따라 엄청난 기복이 발생하죠.

 

아마추어 팬들이 싫어하는 상대 타입 9가지.’ 언젠가 어느 외국 바둑 전문 사이트에 이런 제목으로 앙케이트 결과가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심심파적 삼아 한번 훑어보도록 할까요?



아마추어가 싫어하는 상대

 

1위는 좀처럼 던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돌을 던진다는 표현은 사실 거둔다는 쪽이 바람직합니다만, 어쨌든 이 대목은 보는 이를 절로 미소짓게 합니다. 너 나 없이 어디 한두 번 당해 본 일입니까? 만방을 간신히 면하고도 태연하게 반집 패까지 완성하는 기도 정신(?)을 보여준 뒤 장렬히 산화하는 상대 선수. 그래도 그 경우는 좀 낫습니다. ‘던지지 않는적에게 열 받아 말도 안 되는 실수로 역전패당하고, 죄 없는 대폿집 식탁을 두들겨대며 분을 풀었던 경험쯤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2위는 장고파(長考派)입니다.

허허. 이 역시 경험해보지 않은 바둑 팬은 없을 겁니다. 바둑 두는 사람 화장실 갔는지,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못나오고 있나?세월아 네월아 마냥 생각에 빠진 상대를 보노라면 정말 울화통이 터지게 마련이죠. 그러나 이 항목은 요즘 인터넷 대국의 발달로 상당 부분 희석됐습니다. 아마추어들 간의 오프라인 대면(對面)에 시계를 갖다놓는 경우란 거의 없었는데, 이젠 인터넷 시스템이 이를 해결해 준 거지요. 요즘 온라인에선 장고파들은 장고파들 끼리, 속기파들은 속기파들 끼리 어울리는 모양입니다. 우열반 편성? 체급별 대결? 뭐 어쨌든 이 같은 변화가 기원 행을 줄이는 데 한 몫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위는 정석(定石) 무시군요.

클클. 마침내 아마추어들만의 특권이 등장했습니다. 바둑 좀 늘어보겠다고, 저 철천지 웬수 기어이 한 번 꺾어보겠다고 밤새워 정석 외워갔는데 상대가 그대로 안 두어주는 겁니다. 얼마나 저주스럽습니까. 묘한 것은 상대가 정석을 모르면 상대방이 망해야 하거늘, 꼭 망하는 건 이쪽 이란 사실입니다. 수순만 외워선 안 되고 주변 변화까지 모두 익혀야만 정석을 소화한 거 라구요? 아이구 사범님, 그거야 프로들 얘기죠. 어쨌거나 정석에서 한 수 어긋날 때마다 한 집씩 공제하는 법령을 만들던지 해야지 이거야 원.

 

4위는 너무 빨리 두는 상대입니다.

세상사 음양의 이치가 여기서도 등장하는군요. 앙케트 2위에 오른 장고파와는 완벽한 대립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장고파의 입장에서 너무 빨리 두는 상대란 얼마나 피곤한 파트너겠습니까. 자기처럼 빨리 안둔다고 괜시리 하품하고 기지개켜고, 과장된 몸짓으로 창문 밖을 내다보다간 원장하고 농담 따먹기나 하고그 속이 뻔히 보이는 무력시위(?)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장고하며 버텨봅니다만 수가 보일 리 없습니다. 장고파의 입장에서 속기파란 정말 싫은 파트너입니다.

 

5. ‘대마 사냥 즐기는 사람이 뽑혔습니다.

그거 참 동감이라구요? 하하. 이런 킬러 본능에게 시달려 본 아마추어 기객들이 의외로 많은것 같습니다. 하긴 70집 이기고 있어도 만방 못 채우면 성이 안차는 족속이 우리 아마추어들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프로들은 모름지기 우리의 웅대한 스케일을 본받아야 합니다. 째째하게 반 집만 이기겠다고 쥐어짜는 속 좁은 사람들이라니. 그러니 상대방이 일망타진을 외치며 몽땅 잡으러 오더라도 아마추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꾹 참고 올 인하는 미덕을 키우도록 합시다.

 

6위는 집에 짠 사람입니다.

여기서도 5대마 사냥 즐기는 사람과 정반대 입장이 등장하는군요. “나는 바둑판 위의 상대방 대마를 몽땅 사로잡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잽싸게 집 챙기고 도망가는 족속들이야 말로 저주의 대상입니다. 아마추어면 아마추어답게 치고받다가 잡거나 사로잡혀야 옳지, 지가 무슨 이창호라고 고개 주억대가며 계가를 합니까. 호랑이는 굶주려도 쥐새끼 따위는 잡아먹지 않는답디다. 이런 쫀쫀한 아마추어들은 아예 프로 기사 세계로 쫓아버리도록 합시다.

 

7. ‘쉴 새 없이 말하는 사람이 선정됐습니다.

동네 아마추어 바둑의 백미가 마침내 등장했군요. 크크. 철천지 기적(棋敵)과 마주앉아 침묵 속에 대국하라는 건 이 분들에겐 무장해제 선고와 다를 바 없습니다. 손발을 묶이는 게 차라리 낫지, 어떻게 입에다 반창고 붙이고 바둑을 둡니까. 적절한 구찌쫑코’, 그리고 비웃음과 엄살은 묘수나 맥점 보다 훨씬 효과 있는 첨단 무기입니다. 바둑 게임은 그들에게 수담(手談) 아닌 구담(口談)인 셈이죠. 그들은 대국 중 군시렁거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칩니다. 아아! 이런 재미도 모른 채 왼 종일 면벽 수도하듯 근엄을 유지해야 하는 프로들이란 얼마나 불쌍한 존재입니까.

 

8위는 무조건 끊어오는 전투형입니다.

도대체 상대방이 이어가는 꼴을 못 보는 투사들. 호구(虎口)와 축(), 장문만 아니면 인정사정없이 잘라옵니다. 주위에 자기 원군이 많으냐 적으냐하는 것도 상관없는 일이지요. 그럴 경우 본때 있게 응징할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부류 치고 힘 약한 사람이 없습디다. 그들의 착점 수칙은

 

첫째, 상대방 대마에 바짝 달라붙어 몸싸움을 유도한다.

둘째, 끊을 수 있는 곳은 몽땅 끊어놓고 본다.

셋째, 외곽을 포위한 뒤 끝까지 물고 늘어져 두 눈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상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차라리 미친개라면 몽둥이라도 휘둘러 보련만. 에휴.

 

9. ‘대 모양(模樣)을 펴는 바둑이 선정됐군요.

귀의 실리를 초개처럼 여기며 변에서 중앙, 또는 중앙 한 복판에 거대한 성채를 치는 타입을 뜻합니다. 그런 상대 만나면 정말 피곤하더라구요? , 그렇다면 선생은 틀림없이 몸싸움에 약한 스타일입니다. 드넓은 중원에서 집 두 칸 마련 못하랴하고 뛰어들었다가 번번이 사로잡히는. 쩝쩝. 하지만 "어디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고 똑같은 포진을 펴면 적의 침입군은 죄다 살아가고 집도 절도 없이 빈껍데기만 남았던 경험. 힘 좋은 사람들에게 중앙 세력이란 무릎을 스치는 갈대 숲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모양입디다. 거 참. 우주류인가 뭔가를 퍼뜨려서 힘없는 아마추어들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준 다케미야란 기사는 아마도 천당 가기 힘들 겁니다.

 

이상 9가지 가운데 몇 항목이나 공감하십니까. 바둑은 프로들에겐 삶과 명예가 걸린 경건한 예도(禮道)이지만 바둑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잣대를 강요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추어 기객들에게 바둑이란 코를 막아도 체취가 느껴지는 오랜 친구 같은 것, 수 십 년 간 정성껏 숙성시킨 군침 고이는 토속 술 같은 것입니다.

 

또는 그 오랜 친구와 나누는 토속 술 한 잔이라 해도 좋습니다. 승부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그 과정을 환호하고 탄식하며 희롱할 수 있다는 것은 오직 아마추어들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일정한 예절범위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바둑은 우리에게 그저 놀이 문화의 한 수단일 뿐이니 말이죠. ‘미운 상대를 혼내주러 벌써 구두 끈 동여매고 계신 당신.

 

오늘 저녁 한 잔의 명분은 통쾌함과 분통 해소 둘 중 어느 것이 될까요? 어느 쪽이면 어떻습니까. 평소 그렇게 선생이 외경해 마지않던 프로 동네 바둑 귀신들보다 수십 배는 더 행복해 보이시는데요. 하하. / 한게임바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