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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시대인가? 커제시대인가?

풍월 사선암 2016. 12. 30. 22:34

알파고시대인가? 커제시대인가?

 

2016 바둑계 이슈 정리-기자방담

 

다사다난(多事多難).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다사다난이란 말을 실감했던 해가 있을까요? 2016 바둑계 역시 이러했습니다. 인공지능이 맞바둑으로 프로기사를 이기는 초유의 일이 일어나는 등 사건이 많았습니다. 2013년에 그러했듯 한국바둑이 중국바둑과의 경쟁에서 현격히 밀리는 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난 넉자()가 진정 체감되는 연말에 바둑동네를 발로 뛰었던 바둑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2016 연말정산을 해봤습니다. 한해를 굵직하게 훑고 지나간 이슈에 대해 기탄없이 이야기꽃을 피워봤습니다. 더러 뒷담화까지. 2편에 나눠 싣습니다.

 

지금은 커제시대!


라이벌 중국의 일인자이자 세계바둑 일인자라 해도 좋은 커제의 활약에 한국은 안 그래도 느꼈던 위기감을 더욱 뼛속 깊이 느낀다. 커제는 2015년 연말에서 20161월 초에 걸처 겨룬 제2회 몽백합배 결승에서 이세돌을 3-2로 눌렀다. 이 대결은 이세돌로 대표되던 한 시대에서 커제의 미래시대로 이양하는 분기점이자 상징적 의미가 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중국 일인자이자 세계 일인자 커제가 엄청난 존재감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 지금은 누가 뭐라해도 커제의 시대죠. 사실상 커제시대의 시작은 작년부터라고 봐야할 것 같고요. 1월 제2회 몽백합배에서 이세돌을 이김으로써 성대하게 대관식을 치렀다 봐야겠죠. 우리로선 달갑지 않지만...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죠. 승부의 세계니깐.

 

- 예전 조치훈이 오다케를 이기고 명인에 올랐을 때, 1980년이었죠. 당시 일본 최고의 기전인 기성이 남아있었는데도 이미 조치훈시대가 개막되었다고 본 것처럼 상징적 일인자였던 이세돌을 커제가 이김으로써 커제시대가 도래했음을 확연히 알린 거죠. 마치 조치훈이 명인을 차지한 3년 뒤 후지사와를 이기고 기성까지 접수하고 명실상부하게 일본바둑을 천하통일한 것처럼 말이죠.

 

- 몽백합배 결승은 중국 시나(新浪) 문자중계 동시접속 150만 건 이상을 기록하는 등 대박을 쳤습니다. 우리나라 언론매체 가운데 오로는 단독취재를 했는데 어떻게 이런 걸 미리 내다봤나요? 재정상 해외취재를 다 보내지는 않잖아요?

 

- 데스크의 의지가 컸습니다. 한 세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가 오는, 이른바 바통터치가 되는 상징적이고도 실질적인 터닝포인트의 지점이 이세돌과 커제가 맞붙는 몽백합배가 될 수 있다고 본 거죠. 연말연시여서 쉽지 않은 때거든요. 어떤 회사고 이런 때는 거액의 취재비가 들어가는 걸 재무팀이 그닥 달가워하지 않아요. ^^ 아니나다를까 내부에서 꼭 기자를 보내야 하느냐는 얘기가 나왔지만 데스크가 사비를 내서라도 보내겠다고 했죠. 실제로 5국까지 갔던 몽백합배 결승전은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이버오로의 조회수도 엄청났고요.

 

- 커제의 활약과 더불어 중국바둑은 날로 상승하고, 우리는 연초 알파고로 잠깐 이목만 끌었지 그 뒤로 하강 추세죠.

 

- 심각해요. 이세돌은 2012년 세계대회 우승(삼성화재배) 이후 한 번도 메이저급 세계대회 우승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 평행이론인가요. 이창호처럼 이세돌은 세계대회에서 준우승만 쌓아가고 있죠.

 

- 그렇지만 이세돌이 대단한 승부사임은 틀림없어요. 계속 버텨가고 있잖아요. 승부라는 게 하루아침에 급전직하하는 법이 없기도 하지만 과연 한시대를 수놓은 승부사답지요. 문제는 박정환이 이세돌의 뒤를 인터벌 없이 받아야 하는데 번번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못 받고 있어요. 중국은 20136명의 기사가 세계대회 개인전 우승을 하는 등 춘추전국시대가 되는 듯했지만 그 뒤 커제가 나타나서 일인자 자리를 접수했어요. 우리는 박정환이 이세돌을 잘 이어받지 못했어요. 이런 흐름이라면 박정환은 내년엔 신진서에게 추월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요.

 

- 더욱 어려운 상황은, 박정환이 커제 하나만 이겨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 그렇죠. 커제 말고도 중국기사들이 강력하죠. 센 기사들이 두더지처럼 툭툭 튀어나와요. 중국랭킹 100위 언저리 기사에게 진다한들 이상할 것이 없어요. 요새는.

 

- 이런 상황에서 커제가 연말까지 3관왕을 유지하고 있던 건 대단했어요(현재 2관왕). 요즘은 누가 우승해도 하등 이상할 것 없는 실력평준화 세상에서 세계타이틀을 2, 3개 접수한다는 건 절대강자라고 인정해야겠죠.

 

연말연시에 치러졌는데도 이세돌과 커제의 대결이라는 중요한 의미로 인해 굉장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제2회 몽백합배 결승.

 

- 개인적으론 커제가 막 부상했을 때 올해를 좀 지켜보자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커제처럼 갑자기 기세를 타고 세계를 휩쓸어버린 기사가 전에도 있었죠. 쿵제죠. 그런데 쿵제는 한순간 불꽃처럼 사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커제는 그렇지 않아요. 올 초 제19회 농심신라면배 주장으로 나와 중국 우승을 결정지은 것이나 연말에 삼성화재배에서 지난기에 이어 2연패를 해내는 것을 보면서 과연 대어급이로구나 생각했습니다.

 

- 농심신라면배 때 마지막 대국을 치렀던 한국 주장 이세돌과 술을 한잔했어요. 져서 풀이 죽어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커제는 아직 나한테 안 됩니다. 농심신라면배가 제한시간 1시간짜리 바둑이라서 그렇지 2시간짜리이거나 4시간짜리 바둑이었으면 내가 이깁니다라며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더군요. 고수들의 세계는 뭔가 다른가 보다 했어요.

 

- 기백이랄까 결기랄까 그런 거겠죠. 솔직히 이세돌이 한 호언장담은 일종의 자신에 대한 암시일지도 몰라요. 이세돌이 알파고랑 다시 붙는다고 해도 결코 진다는 얘기 안 할 걸요. 그렇지만 제한시간 1시간이든 3시간 바둑이든 번번이 지고 있는데도 커제는 나한테 안돼라고 말하고 있군요.

 

- 술기운 탓 아닌가요? ^^

 

- 저는 이세돌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네요. 프로기사들은 보통 속기라서 졌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조건으로 하든 상대도 같은 조건이라는 거죠. 이세돌의 호언장담은 그저 질 마음이 없다는 정도의 뜻이었을 겁니다.

 

- 그러고 보면 후지사와도 그랬지요. 아직은 질 마음이 없다는 태도에서 비슷했어요.

 

- 일본 기성전에서 내리 져 막판에 몰린 뒤로도 기합에서 전혀 밀리지 않은 점은 조치훈보다 훨씬 대단했어요. 후지사와의 실전 제자였던 조훈현은 이때 스승의 패배를 바둑사적으로 무척 안타까워했어요. “조치훈의 승리는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후지사와 선생이 좀더 버티셔서 후학들에게 승부사의 기백을 보여주길 기대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막판까지 판을 주도했는데, 물론 실력이라면 할말이 없지만 나이 차이에서 오는 체력저하 등 여러 조건이 작용해 뒤집어졌다고 봅니다. 어쨌든 그 바둑(일본 기성전)이 한 시대의 흐름, 바둑사적 흐름을 바꾼 기점이었던 대국이라고 봐요. 이전 세대가 가지고 있던 바둑의 색과 낭만과 철학...이를 대변하던 기사가 후지사와였다면 조치훈은 새 세대의 기수로서 현실적이고 실전적인 바둑을 보여줬죠. 한국바둑사로 치면 김인에서 조훈현으로 넘어가는 흐름과 비슷하달까요. 하여간 올해는 이세돌에서 커제로 넘어가는, 또 하나의 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이라 봅니다.

 

- 커제가 경미(?)하게 부진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사생활이 지적되곤 했어요. 풍문입다만, 풍문이라고 분명히 전제를 달고서 말하는 겁니다. ^^;; ‘동시다발로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설이 있죠. 나이는 어리지만.

 

- 다 소문이라서.

 

- 중국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가타부타 확인을 안해주고 웃기만 하니. 사실인 것도 같고.

 

- 기재가 아주 뛰어나고 천재적인 기사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을 너무 확신하고 자만하다 추락한다는 거에요. 기세와 기고만장은 어쩌면 한 끗발 차일지도 몰라요.

 

- 승부의 기세는 사이클이 있더군요. 내부적인 요인이든 외부적인 요인으로든 한번 꺾이면 다시 재기하지 못하고 평범한 기사로 전락하고 마는 예가 적지 않아요.

 

- 쿵제도 한때는 화려했죠. 이세돌 휴직을 틈타 3관왕까지 했습니다.

 

- 그런데 쿵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창호시대의 범주에 포함해야 하지 않을까요? 구리이세돌쿵제가 나란히 이창호를 목표로 삼아 경쟁하던 때가 있었으니.

 

- 구리이세돌쿵제는 경쟁하다가 이창호라는 절대군주의 쇠락을 지켜봤습니다. 구리의 경우는 이세돌과의 10번기를 기점으로 뒤처졌죠.

 

- 이창호가 조훈현이 가진 모든 왕관을 뺏고 일인자로 올라섰던 시절은 신문기전이 많은 때였습니다. 신문기전은 대개 도전기제를 취하고 있었죠. 조훈현이나 이창호나 도전자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어요. 토너먼트로 다시 1회전부터 뛸 필요가 없었지요. 그때는. 이창호가 전성기가 지나고 말년이 됐을 때는 이미 도전기 시대가 아니었죠. 이제는 세계대회가 많아지고 선수권전이 대세가 됐습니다. 싸우는 방식이 바뀐 거죠. 아무리 강한 사람도 어느 하늘 먹구름에 비를 맞을지 모르는 그런 벌판에서부터 진격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 맞아요. 경쟁의 양태 자체가 달라졌어요. 지금은 경쟁 자체는 더 치열해졌지만 과거 2인자가 결승에 오르고 일인자에게 도전하는 그런 시대는 과거가 돼버린 거죠. 이세돌이 2013년부터는 세계대회 우승을 못했지만 계속해서 4강이나 결승무대에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어요. 일인자와 직접 일합을 겨뤄서 바통 터치하는 시대는 이창호 때로 다 끝나버린 것이죠. 만약 도전기제가 지속되었다면 이세돌의 시대도 더 지속되었을 거라 봐요.

 

- 이세돌은 이창호와 직접 세계대에서 맞붙은 것은 LG배 때의 두번 말고는 없어요. 2001년에 결승에서 2-3으로 이세돌이 졌고 그다음 2003년에는 3-1로 이겼죠. 실제 두 기사가 타이틀전에서 맞붙은 건 당시 이 두 번뿐인데도 그런데도 아무도 이세돌 시대가 왔음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 커제시대를 이전 이세돌시대와 구분할 수 있는 경계랄까, 분명한 차별점이라면 온라인, 그러니까 인터넷바둑 세대라는 거 아닐까요? 지금은 완전히 온라인 강자시대로 접어든 것 같기도 해요. 커제는 인터넷 대국서버에서 살다시피했다잖아요. 커제는 프로데뷔 직후 무명 때부터 엄청난 양의 인터넷대국으로 성장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죠.

 

- 인터넷은 2000년대 초에 본격화했습니다. 이세돌의 시대는 2003년부터 시작되니까 이세돌은 인터넷으로 성장한 기사라고 볼 순 없어요. 그 이전에 이미 뼈가 굵어졌지요. ^^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정보가 넘칩니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죠.

 

- 실시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일수록 재능이 넘친다고 해서 방심하든지 노력을 게을리하다가는 삽시간에 무너지는 경우 또한 심화할 것입니다. 지금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위 듣보잡칼잡이들이 변방에서 혼자 스윽슥 칼을 갈다가 홀연히 무림에 등장해 잘 나가고 있는 고수의 뒤를 노리는 시대니까요. 이런 방식의 독학이 가능한 시대에요.

 

- 커제도 자신에 재능을 믿고 방심하다가는 단박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겁니다.

 

3월 열렸던 딥마인드 챌린지매치 첫 대국을 앞두고 알파고 개발사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왼쪽)과 딸(혜림)을 안은 이세돌이 악수를 하고 있다.

 

메가톤급 태풍, 알파고 바람


3,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을 4-1로 꺾고 인공지능으로서는 처음으로 호선에서 프로기사를 이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공지능이 바둑에서 인간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간을 10년 앞당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비록 이세돌이 1승을 거두긴 했지만 인공지능의 실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향후 바둑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11월엔 알파고에 자극받은 일본의 인공지능 '딥젠고(DeepZenGo)'가 조치훈에게 1-2로 졌지만 1승을 건지는 기록을 세워 또 한 번 인공지능이 주목을 받았다.

 

- 2016년은 인공지능, 알파고를 빼놓고는 역사를 쓸 수 없어요. 바야흐로 인공지능바둑이 모습을 드러낸 원년이랄 수 있는데요, 이젠 인공지능과 바둑연구를 공유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 알파고 쇼크였죠.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도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달나라에 가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충격일 겁니다.

 

- 인공지능 시대, 바둑계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 향후 5년을 봐야 할까요? 그것도 길지 모르지만 온라인바둑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 1초에 25만 수를 읽는다고 하니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인공지능이 참고도를 그리는 속도는 엄청나죠.

 

-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바둑을 두고 있다고 하네요. 어차피 익명이라 사람인지 기계인지 알 수가 없죠. 그렇다고 보면 인간은 인공지능과 승부를 겨루고 있는 거죠. 프로기사들은 어렴풋이 상대가 인공지능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늘어났을 겁니다. 인터넷바둑계에도 변화가 일고 있어요.

 

- 인공지능이 인터넷바둑에는 축복일지 재앙일지 모르겠군요.

 

- 베팅은 인터넷바둑사이트들에게 수익의존도가 높은 모델인데 컴퓨터들의 대결에 관중이 얼마나 흥미를 느낄까 싶네요. 이런 점에서 악영향이 아닐까요?

 

- 딥젠고 역시 3년 안에 프로기사를 이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이런 추세라면 프로기사 집단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승부에서 위축되고, 결국 대다수가 보급 쪽으로 돌아설 듯한데요.

 

- 저는 희망적인 전망을 해 봅니다. 우칭위안(오청원)시대 이후 패러다임의 전환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칭위안 이전엔 첫수가 무조건 소목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화점을 병행하죠. 이창호시대엔 양화점 포석이 많아지면서 화점의 재해석이 이뤄졌지만 현대바둑은 다시 소목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줄 바둑판처럼 넓은 공간에서 최선의 첫수는 소목이 아닐 것으로 봅니다. 인공지능이 모바일로 파고드는 시대가 되면 인간 정상급 프로기사들의 실력도 인공지능과 겨루는 사이 몇 점 늘 것으로 예상합니다. 앞으로 등장할 인공지능들은 더 창의적일 테고요.

 

- 알파고까지는 현대바둑의 흐름을 따르고 있죠. 딥마인드 챌린지매치 당시 알파고는 백번으로 세번 모두 양화점으로 시작했고 흑번일 때 화점과 소목을 배합했습니다. 완전히 현대바둑의 흐름이죠.

 

- 사람의 획기적인 바둑실험도 만만치 않아요. 김기원 바둑 봤나요?

 

- 그런 획기적인 수들로 성적까지 잘 내면 더 주목을 받을 겁니다.

 

- 퓨처스리그에서 김기원이 첫수를 변에 두는 포석을 홍민표에게 썼다가 졌지요. 그후 홍민표가 똑같은 수법을 서중휘에게 써서 다시 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 연습바둑이 아닌 실전에서 프로기사들의 이런 실험정신이 많아졌군요.

 

- 인터넷 바둑서버는 고수들의 바둑에 베팅을 거는 즐거움이 크죠.

 

- 인공지능이 지배하면 관전하는 재미는 떨어질 것 같아요. 이창호 하면 끝내기, 이세돌은 전투, 이런 특색이 도드라지는데 인공지능에 개성이 있나요?

 

- 바둑영웅들의 탄생이 열광하던 팬들은 인공지능 이후로는 그런 스토리들을 기대하지 못하겠죠.

 

- 일본에서는 인공지능 장기의 성능(레벨)을 일부러 낮춰서 인간과 보조를 맞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장기계는 아직 인기가 떨어지지 않았어요.

 

- 구글 알파고는 몰라도 일본 딥젠고는 상용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데 업체들이 인공지능의 레벨을 좀 조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123일 일본 도쿄 일본기원에서 끝난 제2기 바둑 전왕전 3국에서 일본 인공지능 딥젠고(DeepZenGo)를 이기며 종합전적 2-1로 우승한 조치훈 9(왼쪽)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국 상대편 쪽은 딥젠고의 착수 대리인 역할을 한 딥젠고 개발팀 대표 가토 히데키 씨.

 

- 글쎄요. 바둑인공지능은 장기인공지능처럼 레벨을 자유자재로 낮추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한데.

 

- 바둑도장들은 어떻게 될까요?

 

- 프로지망생이 사범님들에게 한판에 100만원씩 지도료 내서 천만원 이상 드는 건 예사라는 얘기도 있던데, 이제는 인공지능 사범님께 배운다면 좀 더 수월해진 것 아닌가요?

 

- 유소년 바둑교육 방면으로는 붐이 일었다더군요. 바둑용품이 실제로 잘 팔리거나 하는 바람까지 인 것은 아니지만 바둑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좋아졌다고 합니다. 전에는 바둑이 어떤 면에서 좋은지를 열심히 설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런 수고와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졌죠. 알파고의 덕분입니다. 학부모 입장에선 바둑이 다방면으로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다만 아이를 프로기사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생겼는지는 의문입니다. 조치훈의 활약에 따른 80년대 바둑교육 붐, 이창호 키즈들과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알파고 붐이 일어난 건 확실합니다.

 

- 서양에서는 컴퓨터를 사범님으로 모시고 실전 수련을 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굳이 동양에 와서 배울 필요가 없어지는 거지요. 바둑의 세계화에는 분명 기여할 겁니다. 미국과 서양에 일반적으로 보급될 때 진정 파이가 커지는 거 아닌가요?

 

- 그나저나 결국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사실은 변함없군요.

 

- 다른 종목은 룰을 잘 모르거나 직접 배우지 않아도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야구 경우는 룰이 복잡해도 몇 가지만 알면 설명 없이 구경할 수 있죠. 그런데 바둑은 모르면 아예 관전하기 어렵습니다. 바둑은 실력이 늘면 늘수록 재미있어지니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인공지능으로 손쉽게 바둑을 배우게 되면 저변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요.

 

- 2~3년 뒤엔 딥젠고가 개인컴퓨터 사양 정도로도 프로기사와 대등한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겁니다. 모바일 인공지능바둑 시대도 곧 오겠죠. 과거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겨뤘던 IBM의 딥블루가 현재 우리의 스마트폰만도 못하다는 거 아닙니까. 앞으로는 대국 풍토도 바뀔 겁니다.

 

- 그렇죠. 수능시험볼 때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부정행위로 간주하잖아요. 바둑도 마찬가지로 대국장 밖에서 누군가 인터넷사이트에 생중계되는 수순을 받아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 고수에게 대국시킨다면 중대기로에서 다음의 한수를 훈수받을 수 있을 테죠. 대국 중 슬그머니 화장실에 가서 휴대폰으로 다음수를 확인하는 방법 따위로 손쉽게 코치를 받을 수 있죠.

 

- 그렇다면 규정도 앞으로는 엄격해지겠군요. 당장 자기 제한시간 내 자유롭게 화장실 다녀오는 룰부터 손대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지금도 꽤 엄격하게 바뀌었죠. 중식시간이 없어지는 추세고요. 예전에는 점심 시간 이후에는 루이나이웨이의 실력이 세진다는 말도 있었어요. 부부기사(장주주가 남편)인 두 사람이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며 대화만 나눠도 오후 대국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 한국기원은 이런 규정에 매우 느슨한 상태이지만 불과 2~3년 안에 확 바뀔 수 있습니다.

 

- 올해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서 열린 전국체전 바둑종목에서는 경기장에서 화장실까지가 먼 편이었고, 도중에 선수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데 어떤 제약도 없었습니다. 감독들은 경기장 라인 바깥에 있었고 선수는 화장실에 가면서 감독과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었죠.

 

- 얼마전 실제로 일본 장기경기에서는 인공지능이 결부된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해요. 선수가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인공지능의 훈수를 받은 겁니다. 바둑계에서 이런 일이 한번이라도 일어난다면 파장이 클 것 같습니다.

 

- 인공지능바둑 출현시대에 맞서 세미나를 활발하게 개최하는 등 여러 방향을 미리 읽어내는 대처를 해야할 겁니다. 예측건대, 문화적인 면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어 보이고요. 명상이나 선() 도 같은 요소를 포함해서요. 바둑의 수읽기 같은 메커니즘적인 신비함은 깨졌지만 문화적인 면은 여전히 신비함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계의 연주에 선뜻 공감하고 다가서기 쉽지 않듯이 인간만의 것이 있을 겁니다.

 

- 어쩌면 알파고가 인공지능이라는 것 자체가 신비감을 더해 주지 않았나요. 사람을 이겼지만 바둑을 아직 정복한 것은 아니니까요.

 

- 그동안 인공지능이 사람과 맞서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날 그게 확 깨진 거죠.

 

- 오만이 깨진 겁니다. ^^

 

- 프로기사들도 시대의 흐름에 적응해야 할 겁니다. 한국기원의 정체성은 일본 막부시대 이후 일본기원을 모델 삼아 지금껏 이어왔어요. ‘프로기사=대국이라는 관념도 이제쯤 재고해볼 시기에 왔어요.

 

- 저는 어쨌든 그런 시대가 오기까지는 10년이 더 걸릴 거라고 봅니다. 인공지능의 실력이 그렇게 현격히 증가하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것이죠. 아주 파격적인 기술의 발전이 있을 즈음이면 바둑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기술의 발전은 폭발적이겠죠. 알파고 역시 아직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봅니다. 100번 이상 알파고와 대전할 기회를 프로기사에게 준다면 프로기사가 알파고를 격파할 방안(약점)을 찾아내리라 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가상현실 기술이 주도할 것으로 보여요. 아날로그적인 면은 쇠퇴하겠죠.

 

- 5000년 이상 나무판에서 두던 바둑이 인터넷상으로 옮겨지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온 것처럼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시대의 물살이 빨라진 건 맞죠. 어쩌면 수천년의 나무바둑판 역사가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 중국의 경우는 스포츠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CWL(Chinese Weiqi League) 성시대항전이 그것이죠.

 

- 그거, 그렇게 매력적인가요?

 

- CWL은 타 스포츠를 접맥하는 초보적인 단계예요. 중국은 이 대회를 최소 3년 유지하기 위해 종잣돈 170억을 모으고 주식회사도 말들었다고 합니다. 대회 형식도 파격적이죠. 감독의 작전타임이 있고 관중이 격리되지 않으며 치어리더도 등장합니다. 비록 근육 스포츠의 경기방식을 흉내내는 데 불과할지라도 적어도 그 용기있는 시도에 점수를 주고 싶네요. 우리나라는 이런 흉내조차도 내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이 점에선 중국>일본>한국 순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 저는 아까도 말했지만 관전의 맛을 더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상현실(VR)을 빨리 바둑과 접목해야 한다고 봐요. 관중에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은 선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죠. VR 내에서는 선수가 대형스크린에 놓아보기를 합니다. 그것을 관중이 볼 수 있게 하면 됩니다. 해설도 돋보이게 할 수 있을 거예요.

 

- 스타크래프트에서 선수 개인 화면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원리군요.

 

- 전 포커대회랑 비슷해 보이는데요? 관객에겐 패를 보여주니 말입니다.

 

- 알파고는 내년 상반기쯤에 또 대국한다고 하죠.

 

- 상대는 커제가 거의 확실하겠죠. 아마 이세돌이 그랬든 대회 시작 6개월 이전에 비밀유지 협약을 했을 겁니다. 딥젠고가 출전하는 대회의 선발전에 불참하는 것도 그렇고 커제가 뭔가 알파고 대국을 준비하는 듯한 느낌이 있죠.

 

- 현재 알파고는 프로를 두점 접는 버전까지 와 있다더군요.

 

- 커제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딥러닝으로 훈련된 프로그램과 둬보고 연구도 하면서 이런 프로그램엔 끝내기에 약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조치훈 선생께서 딥젠고와 겨루며 형세가 불리하더라도 돌을 거두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썼다고 합니다.

 

- 종반에서 인간은 답을 아는데, 인공지능들은 잘 모르고 헤매는 것 같기도 해요. 커제박정환 정도면 종반 어느 수순에 이르면 정답을 알죠.

 

- 인공지능은 후반이 강하니까 초반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말이 많지 않았나요?

 

- 바둑과 인공지능 중 어느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퍼뜨린 얘기일지 모릅니다.

 

- 그럼 커제가 인류의 영웅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요?

 

- 게임마니아인 저로서 얘기해 보면 이세돌은 인공지능이 가장 공략하기 쉬운 방향으로만 뒀다고 봅니다. 다섯 판 내내 주도권을 쥐고 간 판이 없었잖아요.

 

- 지금쯤 딥마인드는 오히려 인공지능 특유의 약점을 없앴다고 자부할 것 같은데요?

 

-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두번째 승부, 어떻게 결론 날지 정말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