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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까지 들추는 저속한 대한민국

풍월 사선암 2016. 12. 15. 10:49

속옷까지 들추는 저속한 대한민국

 

최순실 국정 농락과 박 대통령 무능이 사태 본질인데 잡스런 모욕 주기로 빠져

감정 배설로는 나라 앞으로 못 나간다

 

양상훈 논설주간


최순실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이 재단 두 개를 만들고 재벌들로부터 800억원 가까이 걷어 최씨 일당에게 맡긴 사건이다. 국가를 위해 재단을 만들었다면 왜 공개된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사적(私的) 인연뿐인 무자격자들에게 맡겼는지 의문이다. 마사지센터 운영자가 국가 스포츠 진흥을 이끌 수 있는가. 그래서 이 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최씨 일당은 재단에 출연된 돈 중 처분이 제한된 기본 재산을 90%에서 20%로 줄이고, 처분할 수 있는 보통 재산은 10%에서 80%로 늘려놓았다. 돈을 빼돌리려 한 것이다. 최씨 일당은 별도로 기업들로부터 돈을 뜯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이를 알았는지 밝혀져야 한다.

 

최씨 일당은 장관과 청와대 수석을 임명했다. 최씨는 대통령 연설문을 입맛대로 고치고 국무회의·수석회의 일정을 바꿨다. 대통령은 장관·수석을 잘 만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비서실장까지 일주일에 단 한 번도 만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알고 보니 주로 관저에 머물고 집무실엔 잘 나오지도 않았다. 이러고서 국정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궁금하다.

 

여기까지다. 여기까지가 최순실 사태다. 하지만 여기를 넘어갔다. 넘어가도 너무 넘어갔다. 무슨 주사를 맞았다는 것으로 며칠을 보내더니 마침내 청와대에서 비아그라가 나왔다는 것을 무슨 큰 발견이나 한 듯이 떠들어댔다. 필자도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갈 때 고산증 치료제로 비아그라를 갖고 간 적이 있다. 고산증은 심각하다. 죽는 사람도 있다. 비아그라는 실제 고산증에 소용은 없었다. 그러나 의사들 추천을 받고 가져간 것이다. 고산지대 방문용이라고 하는데도 마치 대통령의 남녀 관계나 찾아낸 듯이 킬킬거리며 비아냥댄다. 한국인을 경멸하는 일본인들이 이걸로 깔깔거리며 며칠을 갖고 놀았다. 서양 언론도 기막히다는 듯이 썼다.


박 대통령이 주름 줄이는 시술을 했건 말건 그것이 국정이나 최순실 사태와 무슨 상관인가. 그 시술이 국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가 없는 한 문제가 될 수 없는 개인적 일일 뿐이다. 이 시시콜콜한 물어뜯기 중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수면 내시경 때 쓴다는 진정제다. 대통령이 준비된 대책 없이 잠시라도 의식을 잃고 있다가 긴급 사태 때 즉각 정상 회복될 수 없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부분은 진상이 무엇인지 밝혀질 필요가 있지만 아직 박 대통령이 그런 처방을 받았는지조차 불명확하다.

 

청와대를 검문 없이 통과한 사람들이 있었다고도 난리다. 인간관계가 박 대통령보다 훨씬 많았던 전 정권들에서 그런 사람은 더 있었다고 생각한다. 검문이 필요한 것은 경호 때문이다. 경호상 위험이 없음이 명백한 개인적 손님들이 있을 수 있다. 대통령도 사람이다.

 

최순실 사태의 본질은 어디로 가고 주사제나 미용, 시술과 같은 사람 모욕 주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대통령이 탄핵소추됐는데도 그만두지 않고 이 잡스러운 공격이 전파나 지면을 타고 계속된다. 앞뒤 연결 관계를 억지로 끼워 맞춘 엉터리 보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을 처음 보고받았을 때 이미 세월호는 90도 안팎으로 전도돼 있었다. 내부가 복잡한 여객선이 30도 이상 기울어지면 탈출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희생자 수는 박 대통령의 대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래도 대통령이 제 할 바를 다 했느냐는 질문은 해야 하고 특검이 수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박 대통령 때문에 승객들이 희생됐다고 몰아간다. 최순실 사태와 아무 상관없는 이 얘기가 최씨 바람을 타고 다시 나와 하나 마나 한 청문회까지 했다. 굿을 했다, 성형수술을 받았다억측이 끝이 없다.

 

박 대통령의 문제는 주사나 시술이 아니라 무능이다. 지난 4년간 내각과 비서진이 존재감을 가진 적이 없다. 이상한 사람, 자격 없는 사람들과 모여서 소꿉장난 같은 국정을 해왔다. 그 뒤에서 최순실 같은 사람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돈을 챙겼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래서 국정이 어떻게 됐느냐,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지는 않았느냐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다. 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개인적 치부를 들춰내 손가락질하고 매도하고 재미있어 하는 것은 감정 배설은 될 수 있을지언정 나라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는 못한다.

 

사태 와중에 한 분이 보낸 메시지다. '박 대통령은 공주병 걸린 모자란 사람이지만, 그가 대한민국을 시궁창으로 밀어 넣었지만, 곧 전() 대통령이 되겠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야 하는데, 대통령을 난도질할수록 국격은 떨어진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네요. 대통령의 속옷까지 벗겨보려는 저속한 대한민국을.'.

 

출처 : 조선일보 입력 : 2016.12.15 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