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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 하야와 탄핵 사이

풍월 사선암 2016. 11. 30. 23:21

떠날 때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하야와 탄핵 사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가 전체가 혼란을 겪고 있는지 한 달여째인 1129,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자신의 거취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진퇴 일정 및 절차를 전적으로 국회에 맡기겠다고 말하며 이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제 공은 국회에게로 넘어갔다.

국회는 앞으로 헌법적 테두리 내에서 대통령의 퇴진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사실상 국회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탄핵' 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가 지도자가 헌법을 위배하거나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 사회는 종종 '탄핵'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탄핵은 민주주의에서 국가 최고 지도자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에게 많은 실권이 쏠려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비리와 부정부패, 국정 질서 혼란 등을 막고 이를 저지른 최고 권력자를 처벌할 수 있는 정당한 헌법 절차이기도 하다.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기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돌아나가고 있다.

  

탄핵이라는 불명예 퇴진 앞에 선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의 혐의는 제각각이며 취하는 자세도 조금씩 다르다. 저리의 사채를 썼다는 이유로 물러난 인물이 있는가 하면, 성폭행 혐의로 징역을 산 대통령도 있다. 탄핵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선택한 이가 있다면, 탄핵 절차에 돌입 후 여론이 급격히 불리하게 흐르자 돌연 사의를 표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버틸만큼 버티다가 탄핵을 당한 사례도 있다. 탄핵 표결까지 갔지만 부결돼 기사회생한 지도자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가운데 임기를 미처 채우지 못하고 떠난 세계 지도자들의 당시 혐의와 결과를 정리했다.

 

"스스로 물러나리다"

하야의 길


 


대한민국 국가·행정 수반의 권한이 임기 중 중단된 첫번째 사례다. 1960년 치러진 3·15 부정선거로 4·19혁명이 일어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427일 국회에 사퇴서를 제출하고 사임했다. 12년 동안 장기 집권을 해온 이승만 정부는 이로써 막을 내리게 된다. 반민주적 개헌과 반대파 인권 탄압 등 12년간 저질러 온 실정과 더불어 정권 유지를 위한 각종 악행, 전쟁의 책임 등으로 민심은 이미 정부의 편이 아니었다. 학생들 중심으로 시작된 4·19 혁명은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발견된 최루탄에 숨진 김주열 군의 시신은 국민 감정을 더욱 격화시켰다.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 연설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 이후 법률상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다만 여론과 정치적 이유로 휴양 차 방문한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망명을 하게 된 것이다.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1992년에 이어 1998년 재선에 성공한 이스라엘 대통령 에제르 바이츠만(Ezer Weizmann)2000년 유태계 프랑스인 사업가로부터 뇌물을 받고 이를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는 대통령 임기 전인 87년부터 92년 사이 프랑스 기업 에두아르드사로부터 수십만달러를 받고도 신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기소할 만한 충분한 증거는 없지만 대통령으로서 심각한 도덕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수사를 계속 했다.

 

이스라엘에서는 대통령이 상징적인 국가 최고 지도자 역할에 머무는 것에 불구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그에게 뇌물 스캔들은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되었다. 결국 그는 기소되지 않는 조건으로 사임을 결정했다. 기소를 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로는 국가 최고 지도자 역할을 맡고있는 대통령직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방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제르 바이츠만 대통령 이후 이스라엘 대통령에 당선된 모셰 카차프(Moshe Katsav)는 대통령으로서 저질렀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추행과 성폭행 혐의로 피소됐다. 그는 대통령 재직 중 부하 여직원 4명을 성추행 및 강간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는 처음엔 혐의를 부인했으나 검찰과 경찰 조사를 피할 길이 없자 '플리바겐'(유죄협상제도)을 통해 강간 혐의를 빼는 조건으로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가능한 성희롱과 사법방해 혐의를 인정했다. 이스라엘에서 강간은 최고 징역 20년까지 선고될 수 있는 중범죄다. 그리고 임기 종료 2주일을 남기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와 여성단체들이 반발했고 플리바겐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모셰 카차프가 돌연 "나는 희생양"이라며 법원에 스스로 법정에 설 것을 밝히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현재 모셰 카차프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2010년 독일 대통령으로 당선된 크리스티안 불프(Christian Wulff)2012년 친구로부터 특혜성 사채(私債)를 빌려썼다는 의혹을 받았다. 시중 금리보다 훨씬 낮은 저리(低利)로 사업가인 친구 부인으로부터 50만 유로(62000만원)를 대출받았다는 사실이 독일의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자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혐의에 대해 그는 합법적 절차에 이뤄졌다며 보도하려는 언론에 압력을 행사하는 등 강력하게 부인했으나 검찰에서 연방하원에 소추면제권 박탈을 요구하자 종내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를 발표했다. "독일은 폭넓은 신뢰를 받는 대통령이 필요하다""지난 몇 주간의 상황을 볼 때, 더 이상 신뢰를 회복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과테말라의 오토 페레스 몰리나(Otto Perez Molina) 대통령은 전·현직 국세청장들이 세금 감면 대가로 무역업체들로부터 수수한 금품의 일부를 상납받은 혐의가 드러나 20159월 사임한 뒤 구속됐다. 그는 구속된 뒤인 올해 6월에도 재임 시절 장관들로부터 수십억원어치의 사치품을 생일 선물로 상납받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당시 장관들이 바친 선물에는 350만달러(41억원)짜리 헬리콥터, 26만달러(31000만원)짜리 선박, 100만달러(117000만원)짜리 해변 저택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라도 물러나겠다"

탄핵 직전 사임 밝힌 사람들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사임이라는 불명예 퇴진을 했다. 그는 1972년 자신의 재선을 성공시키기 위해 민주당 선거 사무실이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사임했다. 이 사건은 대선 당시에는 문제되지 않았지만 당선 후 다시 불거져 닉슨 대통령이 사건에 개입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공조했음이 밝혀졌다. 이 때 하원 쪽에서는 이미 탄핵을 준비하고 있었다. 닉슨 대통령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책임을 지고 탄핵 표결 직전 사임을 발표했다.


 

 


 



1960년 이후 브라질의 첫 민선 대통령이었던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Fernando Alfonso Collor de Mello)는 대규모 부패 추방 운동을 벌여 국민의 신임을 샀으나 정작 본인은 선거 기간 동안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것이 밝혀져 1992년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미스터 클린 (Mr.Clean)에서 미스터 더티(Mr.Dirty)로 바뀐 그는 관급공사와 특혜의 대가로 기업으로부터 654만달러의 뇌물을 받았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었고 상원에서도 탄핵 절차가 진행되자 결국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상원에서는 사임 의사를 즉각 수리하지 않고 그의 탄핵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일본계 페루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Kenya Fujimori)는 재선만을 허용하는 페루 헌법을 무시하고 3선에 도전했다. 그는 90년의 첫번째 임기는 개헌 전이므로 임기 횟수에 넣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과정에서 온갖 부정을 저지르며 3선에 성공했지만 이후 국민적 반발과 선거과정에서의 부정과 부패, 정보부장의 의원매수 등이 밝혀지면서 지속적으로 사임 압력을 받아왔다.

 

그러다 200011월 국회에서 정치적 반대파인 야당 국회의장이 당선되면서 자신의 뿌리가 있는 일본으로 망명을 시도했다. 사임서도 국회의 탄핵안이 가결되기 직전 일본에서 팩스로 보내 페루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의회는 사임서를 단순 수리하지 않고 정신·도덕적 대통령 부적격 인물로 선언해 축출해야 한다는 다수 의원들 의견에 따라 탄핵을 가결시켰다. 2007년 페루로 강제 송환된 그는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결국"

탄핵의 길


 

*소추(訴追) : 형사 사건에서 재판을 신청하거나 탄핵을 발의하는 일. 우리나라에서는 검사 소추주의와 국가 소추주의를 택하고 있다. 즉 어떤 피해와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개인이 이에 대해 소를 제기할 수 없고, 국가 또는 국가의 대리인이 검사가 하도록 되어 있다. 탄핵에서 소추는 고위 공무원에 대한 파면을 헌법재판소에 구하는 행위이다.



베네수엘라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Carlos Andres Perez) 대통령은 부패 혐의와 공금횡령, 89년 이뤄진 거액 편법 환전 사건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탄핵되었다. 검찰은 93년 페레스가 내무부 기밀비를 유용, 미화 17백만달러의 환차익을 챙겼고, 이 재산이 그의 부정축재로 흘러들어갔다고 보고 공금횡령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국민들은 벌떼처럼 일어났다.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쿠데타 위협에 직면하자 의회는 이듬해 19945월 대통령직마저 박탈했다.


 

 



 

에콰도르의 중도 좌파였던 압달라 부카람(Abdalá Bucaram)은 유세기간 중 배트맨 복장을 하고 다니며 "부유층 유한마담들이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도록 하녀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겠다"는 등의 공약으로 빈민층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당선 후 동생을 사회복지장관에 임명하는 등 족벌주의 인사를 일삼으며 대통령 연임제를 추진하는 사이 국민경제는 도탄에 빠졌고, 1997년 근로자 10만여명이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탄핵 당했다. 의회가 제시한 탄핵 사유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국가를 통치하기에 부적합한 인물'이었다.


 

 



 

압두라만 와히드(Abdurrahman Wahid)1999년 인도네시아 사상 최초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당선된 역사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와히드가 축하와 기대 속에서 취임한 이후 21개월간 인도네시아 정국은 혼란과 파탄의 연속이었고, 와히드는 불명예스럽게 '탄핵'당한 인도네시아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뇌일혈로 시력을 거의 상실한 그는 무기력과 무능력으로 정치 혼란 및 경제 침체를 야기, 국민의 신망을 잃기 시작했다. 또 공식석상에서 실언을 일삼고 수차례 독단적 인사를 단행, 정부 관료와 군 경찰마저 등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이어 '불록게이트' '브루나이게이트'로 불리는 금융횡령 스캔들이 터져 국회의 진상조사특위가 조사에 들어감으로써 처음으로 탄핵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와히드 탄핵안은 2001년 찬성 591표 대 반대 0표로 가결됐다.


 

리투아니아 롤란다스 팍사스 대통령(Rolandas Paksas)은 국제범죄조직과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기업 유리 보리소프(Borisov)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곤경에 처했다. 그는 보리소프로부터 대선 당시 40만 달러를 기부 받았다. 헌재는 대선자금 수수 의혹, 취임선서 위반과 국가기밀 누설, 측근 권력남용 방치 등 6건의 혐의 중 3건에 대해 유죄판결했다. 2004년 그의 탄핵안은 141명의 의원 가운데 116명이 투표에 참여하고, 각 위반사항에 대해 86표 이상의 찬성표로 가결됐다.


 

 




 

2005년 에콰도르 의회는 루시오 구티에레스(Lucio Gutiérrez) 대통령을 만장일치로 축출했다. 군부 역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당초 대통령궁 주변을 지키던 병력이 위치 사수를 포기했다. 원주민들과 좌파 정당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된 루시오 대통령은 기대와 달리 친미(親美)정책과 초긴축 경제정책으로 급선회하면서 상당한 반발을 샀다.

 

탄핵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자신에게 부정적 입장인 대법관들을 교체하려는 데서 비롯됐다. 야당에 동조하는 대법관들은 쿠티에레스 대통령을 부패 혐의로 탄핵하려다 실패했다. 그 후 구티에레스의 반격이 시작돼 재적 100석의 의회에서 52명의 의원을 규합, 대법관 31명 가운데 27명을 갈아치웠다.


 

 

 

페르난도 루고(Fernando Lugo)는 사제 출신의 52대 파라과이 대통령으로 '빈자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서민층과 극빈층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그러나 재임시절 외도와 숨겨든 자녀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국민들은 점점 그에게 실망했다.

 

그의 탄핵 열흘 전 파라과이에서는 수도 아순시온에서 북서쪽으로 250떨어진 쿠루과티 지역의 한 농장에서 경찰과 빈농들의 충돌로 최소한 17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내무장관과 경찰총수가 사퇴했으나 야권은 루고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며 탄핵을 전격 발의했다.

 

표면적으로는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탄핵된 것이지만, 루고 대통령 이전부터 파라과이에서 문제가 되어온 기득권층과 농민 간의 토지 갈등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루고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 때 기득권층에서 80% 이상 쏠려있던 토지를 빈농들에게 분배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정부와 의회의 반대로 실천이 쉽지 않았다.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 브라질 대통령은 두번째 임기 중인 집권 5년 만에 탄핵을 당해 20169월 실각했다. 지난 5월 탄핵 절차 개시 후 직무 정지 상태였던 호세프는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호세프의 탄핵 사유는 2014년 연임을 위한 대선을 앞두고 대규모 빈곤층 지원 등으로 발생한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를 분식하기 위해 국영은행 자금을 끌어다 쓰고 갚지 않는 등 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호세프는 "이전 정부들도 해온 관례적 회계 방식"이라며 반발했지만 경제난에 대한 무대책, 집권 세력의 부패 등으로 여론이 등을 돌려 탄핵을 피하지 못했다.



 


부결된 탄핵


탄핵 소추를 받았으나 부결돼 자리를 유지한 대통령으로는 미국의 17대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42대 빌 클린턴(Bill Clinton), 우리나라의 16대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존슨은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대권을 잡았다가 관리의 면직은 상원의 감독 아래 둔다는 관직보유법을 어기고 반대파인 육군장관을 파면해 의회모독 사유로 탄핵소추됐다. 하원에서는 가결됐으나 상원에선 정족수에 한 표가 모자라 부결되면서 탄핵을 면했다.


 

미국의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Bill Clinton)의 탄핵안은 1998년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과 관련한 위증과 사법 방해 행위 등의 사유로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으나, 상원 투표에서는 부결됐다.

 

클린턴은 르윈스키 사이에서 혼외관계가 1년 반에 걸쳐 지속되었다는 것을 부정했으나 르윈스키가 인정하는 증언을 함으로써 성추문 사건은 대통령의 혼외관계에 대한 도덕적 문제, 그리고 위증 문제가 큰 쟁점이었다. 특별검사 케네스 스타는 대통령의 불륜에 초점을 맞추어 19989월 대통령의 위증과 권력남용이 탄핵의 충분한 사유가 된다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였다.

 

미국 하원은 '연방 대배심원 증언 때의 위증''사법방해' 탄핵 사유를 통과했으나 19992월 상원에서는 통과된 위증과 사법방해 2개항에 대한 탄핵안을 모두 부결시켰다.


 

20043월 야당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선거법 위반 등 국법 문란 측근 비리 등 부정부패 경제와 국정 파탄이라는 3가지 이유를 들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312일 실시된 본회의에서 195표중 찬성 193, 반대 2표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그러나 514일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결과 '기각' 결정을 내렸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즉각 직무에 복귀하였다.

 

헌법재판소는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은 관련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지만 대통령직에서 파면될 만큼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기각결정이유로 삼았다. 소추위원측이 문제삼은 여타의 대통령 발언 역시 위법하다고 볼 수없으며 기자회견 문답에서 발언의 성격상 고의성, 능동성이 없는 데다 시기상 총선후보 결정 전의 일이어서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측근 비리는 대통령의 개입 여부 확인을 떠나 직무관련성이 없고 비리사실을 지시 방조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탄핵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경제파탄은 대통령의 성실한 직무 수행과 관련 있으나, 규범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하며 탄핵을 기각하였다.

 

탄핵 사유는 각 나라마다 정치 제도와 문화적 차이에 의해 다르게 나타난다. 남미권 국가에서는 '부정부패'를 이유로 지도자가 탄핵시키는 일이 빈번하다. 오랜 기간동안 군부 독재를 겪어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 얼마되지 않은 이 곳에서는 세계 어느 곳보다 헌법에 의한 정치질서가 지켜지기를 원하는 열망이 크다. 한편으로 민주주의가 안정되지 않은 틈을 탄 야권 세력의 정권 교체의 수단으로 탄핵이 남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이나 독일에서는 우리가 봤을 때 탄핵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아닌 거짓말이나 도덕적 결함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례도 있다.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 높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탄핵을 당해 물러난 지도자는 없다. 대통령 중심제를 택해 대통령에게 많은 힘과 권력을 실어주는 대한민국에서 현재 탄핵이나 하야라는 단어가 공론화되면서 국민적 공감을 사는 것은 그만큼 현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국민 모두가 느끼고 있음을 뜻한다.

 

입력 : 2016.11.30 0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