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청약 광풍'
오를 대로 올라서, 부동산으로 돈 벌기는 틀렸다?
… 수도권만은 예외인 모양이다.
최근 서울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부는
청약 열풍이 심상치 않다.
투기인지 투자인지,
'광풍'에 가까운 부동산 과열 양상을 짚어 봤다.
아파트 청약 넣는 대학생들
서울 부동산 시장이 청약 과열로 뜨겁다. 고분양가 논란에도 강남 재건축 아파트 분양에는 청약자가 몰리고, 분양권에는 수천만원이 넘는 웃돈이 붙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인기 지역에서는 수백대 1이 넘는 기록적인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는 분양 단지가 속출하고 있으며, 이제 이런 청약 대기줄엔 직업도 나이도, 주택 소유 여부도 물을 것 없이 프리미엄을 노린 '불나방'들로 북적인다.
주로 실수요자로 보기 어려운 다주택자부터 대학생들까지 아파트 청약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첨 후 분양권을 팔아 시세 차익을 남기려는 투자자로 추정된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몰고 온 '청약 열풍'
올해 분양한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들이 부동산 과열에 불을 지폈다. 값은 비싸도 청약 결과는 좋았다. 올해 초 '고분양가 논란'을 불러왔던 신반포자이는 평균 37.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반포 한양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신반포자이는 일반 아파트(주상복합 제외)로는 역대 최고가인 3.3㎡당 평균 4290만원에 공급됐다.
올해 6월 청약을 받은 래미안 루체하임(일원 현대아파트 재건축)은 3.3㎡당 평균 3730만원의 분양가에도 평균 4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반포주공아파트 1단지 전경. /조선일보DB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 3단지 재건축)는 평균 분양가가 3.3㎡당 4137만원이었지만 8월 청약에서 10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달 초 분양한 아크로리버뷰(잠원동 신반포 5차 재건축)는 3.3㎡당 4194만원의 고분양가에도 306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강남권 등 일부 지역이 과열되자, 정부는 선별적·단계적 규제책을 예고하고 나섰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10월 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남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국지적 과열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런 현상이 계속 이어지면 단계적·선별적 시장안정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달 17일 강남 재건축 단지 중심으로 투기과열지구 설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런 것을 포함해 그 부분을 타깃으로 하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한층 적극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강남 눌렀더니 '비(非)강남'이 들썩
강남이 아닌 지역에서의 재건축·재개발·뉴타운 등에도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지자, 투기 대책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이는 부동산으로 투자 수요가 쏠리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주택시장은 매매·분양가격이 억대를 오가기 때문에 최소 종잣돈을 1억원으로 잡아야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비강남권 청약시장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2000만~5000만원 남짓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접근이 비교적 쉽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가 9억원을 넘어서기 때문에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는 반면, 비강남권은 가격 선이 그보다 낮아 비교적 적은 돈을 들여 분양권 전매 투자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재개발·뉴타운 같은 수도권 정비사업장은 민간 택지이기 때문에,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도 6개월로 짧다. 강남권 만큼은 아니지만 적은 투자로 짧은 기간에 이익을 노려볼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7월 동작구 흑석동 흑석뉴타운 7구역에서 분양한 ‘아크로리버하임’은 89.5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달 초 청약을 받은 마포구 망원동 '마포한강아이파크'와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은 각각 55대1, 22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19일 청약 1순위 신청을 받은 마포 신수1구역 재건축 '신촌숲 아이파크'의 평균 청약경쟁률이 75대1을 기록해 서울 강북권에서 역대 최고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기 김포 한강신도시나 남양주 다산신도시 일대도 청약 열기가 휩쓸면서 청약에 도전했던 상당수가 낙첨됐다. 4월 분양한 '한강신도시 반도유보라 6차'는 175가구 모집(특별공급 제외)에 782명이 몰려 4.6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GS건설은 경기도 안산 고잔신도시 90블록에서 분양한 4000여 가구 규모의 대규모 복합단지 '그랑시티자이'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계약이 계약 시작 일주일 이내에 모두 완료됐다고 30일 밝혔다. 아파트 3728가구는 계약 닷새 만에 모두 팔렸고, 오피스텔 555실도 이틀 만에 계약이 완료됐다. 정명기 그랑시티자이 분양소장은 "4000가구가 넘는 물량이 일주일도 안 돼 완판(完販)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피' 받고 팔자" 1년 만에 프리미엄이 최소 수천만원
청약 열풍이 식지 않는 것은 분양권에 붙는 프리미엄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 분양권은 계약 후 6개월이 지나면 되팔 수 있다. 작년 말과 올해 초 청약에 나섰던 아파트 분양권들은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2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작년 서울 서대문구에서 분양한 '북아현 e편한세상 신촌' 분양권에는 웃돈이 1억원 이상 붙었고, 올 3월 분양한 은평구 녹번동 '힐스테이트 녹번'도 현재 웃돈이 최고 5000만원 붙어 거래되고 있다. 은평구 H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아직 전매 제한이 풀리지도 않았지만 3000만~5000만원의 웃돈이 붙은 매물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실제로 올 1~9월 서울 분양권 거래 건수는 5520건으로, 2014년(1950건)보다 65% 늘었다.
최근 분양권 전매제한이 풀린 '래미안 블레스티지'는 1억원 안팎의 웃돈이 붙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전용면적 99㎡의 경우 최대 2억원까지 웃돈이 붙어 매물로 나온다. 개포동 A공인 관계자는 "분양권 소유자들이 양도 차익의 55%를 양도소득세로 내는 것까지 감안한 가격에 매물을 내놓고 있다"며 "다만 어떤 정부 대책이 나올지 몰라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전매제한에서 풀린 '다산신도시 유승한내들 센트럴'은 수천만원의 웃돈이 붙었으며, 지난 4월 입주를 시작한 미사지구의 '미사강변 푸르지오 1차' 전용면적 84.99㎡의 경우 3억9800만~4억3800만원에 분양됐는데 지난달 6억2000만~6억9000만원에 실거래가 신고됐다. 분양가보다 최소 2억2000만원 넘게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다.
지난해 입주를 마친 '동탄2신도시 KCC스위첸' 전용면적 84.01㎡는 중간층을 기준으로 3억3900만원 정도에 분양됐는데, 지난달 이보다 약 1억원이 오른 4억3500만~4억5700만원 선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지방은 "남의 이야기"
과열된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분위기와는 달리, 지방 부동산 시장은 부산과 세종 등 일부 인기 지역을 제외하면 청약 신청이 한 건도 없는 '청약 제로' 단지가 속출하고 가격이 하락하는 등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114가 집계한 올해 1~10월 평균 청약경쟁률을 보면 강원이 4.16대1, 경북 1.86대1, 전남 3.78대1, 전북 4.05대1, 충남과 충북도 각각 1.07대1과 3.38대1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올해 9월까지 전국에서 분양된 아파트 가운데 1, 2순위 청약신청에서 청약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단지는 총 12곳이었는데, 이 중 한 곳을 빼면 모두 지방 아파트다.
4월 충북 제천에서 공급된 한 아파트 단지는 전체 749가구였는데, 1, 2순위를 합해 청약자가 한 명도 없었다. 올 8월 강원 횡성에서 분양한 아파트도 152가구 중 한 가구도 청약을 받지 못했다.
지방은 미분양 아파트 증가세가 가파르고, 집값 하락도 두드러진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방 미분양 아파트는 8월 말 현재 4만1206가구로, 2014년 말(2만565가구)보다 2만가구 이상 늘었다. 이 기간 수도권 미분양이 1만9814가구에서 2만1356가구로 1542가구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정부, 전매제한 강화 고심하긴 하는데…
정부는 현재 과열되고 있는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등 일부 지역과 상품을 겨냥해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을 연장하고, 분양권 재당첨 기간을 늘리는 등의 부동산 시장 과열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부가 현재 주택시장이 신규 분양시장이 과열돼 투기 수요가 몰렸고, 그 결과 분양을 전제로 사업이 추진 중인 재건축 아파트 가격도 초강세를 보이며 과열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필요할 경우 단계적·선별적으로 시장 안정 시책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대책 발표를 미뤘다. 지난 8월 25일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택지 공급을 줄여, 주택 공급을 줄인다는 대책을 발표해 부동산 시장이 더 과열되도록 부추겼던 정부가 이번에도 대책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전문가들, '전매 제한 기간 연장' 추천
본지가 학계와 연구원, 시장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현재 부동산 시장 규제가 필요한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 8명이 "현재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투기 세력을 걸러내는 추가 규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규제 중 가장 강도가 센 것은 '강남권 투기과열지구 지정'이다. 강남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면 아파트 계약 후 입주할 때까지 분양권 전매가 불가능하고, 5년간 청약 재당첨 금지,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 사실상 금지된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너무 강도가 세다"고 답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강남만 잡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본격 규제한다'는 신호로 여겨져 전국 부동산 시장이 냉각할 수 있다"고 했다. '청약 재당첨 금지'와 '청약 1순위 자격 요건 강화' 규제도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현재 전국적으로 청약 1순위자가 1000만명을 돌파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1순위 자격을 강화하고 재당첨을 금지한다고 해도 효과가 작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전문가들이 현재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꼽은 규제는 '전매 제한 기간 연장'이다. 본지가 설문조사한 10명 중 5명이 "현재 서울 민간 아파트는 6개월인 전매 제한 기간을 1년 이상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송인호 KDI연구위원은 "현재 서울은 6개월인 전매 제한 기간을 입주 때까지인 30개월로 늘려야 투기 세력이 청약 시장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입력 : 2016.11.0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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