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역사,인물

[특별기획] 이휘소 박사 천재성 비결과 죽음의 진실, 제2편

풍월 사선암 2016. 7. 15. 09:40

이휘소박사 천재성 발양원천은 애국심

 

[특별기획] 이휘소 박사 천재성 비결과 죽음의 진실, 2

 

이휘소 박사에 대해 연구를 하면 할수록 정말 아까운 민족의 인재를 너무 허망하게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진심으로 조국을 사랑했지만 미국에 완전히 종속된 조국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휘소 박사의 그 뜨거운 애국심이 그의 천재성을 찬란하게 꽃피웠으며 또한 그 애국심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악랄한 제국주의자들이 그를 더는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글에선 천재성을 꽃피운 비결을, 다음엔 죽음의 진실을 다루겠다. 인용한 편지는 모두 이휘소 박사가 어머니에게 보낸 것이며 출처는 공석하 초기 저작, ‘이휘소란 책이다. 괄호의 내용은 필자의 부연설명이다.

 

타고난 천재성

 

이휘소 박사의 유년시절의 두상과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이휘소 어머니의 눈빛과 용모에서도 강인함과 명석함 그리고 조선 여성 그 단아함이 빛나고 있다. © 자주민보

 

이휘소 박사는 타고난 천재였다. 특히 수학은 미국 중심 서방진영 당대 최고 수학자를 능가할 정도로 탁월했던 것 같다. 관련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이휘소 박사는 서울대학교 2학년 때 세계적인 물리학자의 논문에서 수학적 중대한 결함을 발견하고 지적한바가 있다...

 

네덜란드 출신 snopper 박사는 현대대수학강의가 너무 어렵다고 학생들이 다 중도에 그만두는 바람에 한 명 남은 이휘소 박사와 6개월 동안 이휘소 박사와 1:1로 수업을 했었는데, 수업이 끝나는 날 이 세계적인 수학자인 snopper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휘소 당신을 가르치기 위해 사력을 다해서 밤새워 공부했다"]-인터넷에 소개된 자료, 교수 이름은 소설 이휘소의 박사의 편지에서 필자가 확인한 것

 

[현대대수학강의는 한 아이마저 기권하여 결국 반에는 선생하고 저만이 남았습니다. 선생인 dr. snopper는 화란(네덜란드)선생인데 프린스턴 대학박사로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분이며 마야미대학에서는 특별재단이 있어 강의가 있으나마나 연봉을 받는 분이라 개인교수를 받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1956. 4. 3 이휘소 박사의 편지 중에서

 

[처음 3주일(앞으로 1~2) 간은 물리이론에 필요한 수학의 수도가 주인데 제가 한국에서 혼자 공부한 것이 지금 쓰이게 되고 교수들도 저의 배경(미국사람들은 과거의 연구, 교육에 대하여만 이 말을 씁니다. 한국의 background와는 다릅니다.)에 기대이상의 만족들을 하여 저 역시 절대로 실수가 없도록 하여야겠습니다.]-1955. 10. 1 이휘소 박사 편지 중에서

 

[이 무렵 언젠가 필자가 이휘소 박사에게 재규격화 방법을 언제 터득했는가 하고 물은 적이 있다. 69년도 파리대학교에 안식년을 택해 가 있는 동안 수학기교에 능한 buressur-yvette의 과학고등연구소에 있는 불란서 수리물리학자들과 접촉을 한 탓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기억된다.]--1977711일 페르미랩에서, 강경식, [재미 한국과학기술자회보 제611977. 7]

 

당대 최고 서방진영 수학자가 대학생 시절 이휘소 박사를 가르치면서 쩔쩔매야 했으며 당대 불란서 최고 수학자들과 최고수준의 수학 원리를 거침없이 토론할 수 있었고 미국 유학을 가기 전 이미 스스로 높은 수학적 수준을 점령했다는 것은 그가 타고난 수학천재임을 말해준다.

 

서울대 김진의 교수가 2주 동안 고심해서 풀었던 수학문제를 이휘소 박사는 단 5분만에 풀어버렸다는 일화는 제1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 김진의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휘소 박사는 100년이 지나도 나올 수 없는 천재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이휘소 박사는 세계가 인정한 타고난 천재였다. 수학에서만 천재가 아니라 언어와 문학 등 다방면에 있어 천재였다.

 

이휘소 박사는 이미 중고등학교 때 영어 등 몇 개 외국어를 다 떼었다고 한다. 물론 독학으로. 당시엔 성능 좋은 녹음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아들의 지능은 100% 어머니의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유전학 상식이다. 딸은 부모 각각 50%씩 유전된다.

이휘소 박사의 어머니는 일제식민시대 의사였다. 그리 넉넉한 집이 아니었음에도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머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학교 때 웅변대회에서 상으로 삼백원을 받아, 고모님 댁에 가서 현미경을 얻은 생각이 다 납니다. 중학교 1, 2학년 때 병원 2층에서 화학실험하던 생각도 나고요.]- 1971. 1. 4 이휘소 박사 편지 중에서

 

어머니는 이휘소 박사에게 뛰어난 지적 유전자만 준 것만이 아니라 그걸 잘 키워준 것 같다.

 

병원에 실험실을 꾸려주었던 것만 봐도 얼마나 지혜롭게 이휘소 박사의 능력을 키워주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창의적 사고력을 키워주는데 있어 실험만큼 좋은 게 또 있겠는가.

 

이휘소 박사는 이 실험실에서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가며 화학실험, 개구리 해부 실험 등을 하면서 지적 호기심을 더욱 키워갔을 것이다.

 

웅변을 잘했다니 언어에 있어서도 논리적 사고와 감성적 사고 즉 선전과 선동을 다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편지를 봐도 글이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어머니와 가족들, 후배들에 대한 정이 함뿍 담겨있다.

 

[지금이 1/4기시험기간입니다. 특별한 지정이 없이 교수가 날짜를 잡아 시험을 칩니다. 영어는 평론이 주()일 줄 알고 그렇게 준비하였더니 구약에 나오는 인물, 지명 20개가 나와서 아주 잡쳤습니다...

 

수일 후에 경제학시험, 내주일에는 이론물리학시험과 전자론업시험보고(電子論業驗報告-아마 전자론실험보고의 오기인듯)가 있고 해서 잠은 12시간씩 자던 걸 7시간으로 줄이었습니다.]-55. 10. 18. 이휘소 박사의 편지 중에서

 

영문을 읽고 글의 주제를 찾아 논하는 문제를 예상했는데 완전 단순암기식 문제가 나와 잡쳤다고 쓴 걸 보니 이휘소박사는 단순암기보다는 한 눈에 글의 핵심을 파악하고 논리전개와 내용상 부족점을 비평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렇듯 이휘소 박사는 어학과 문학에 있어서도 높은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를 좋아했고 또 능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어느 특정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천재가 태어나기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이휘소 박사처럼, 수학과 언어, 논리적 사고와 감성적 사고 모든 분야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천재는 정말 만나기 쉽지 않다.

 

아인슈타인 박사도 강조했듯이 다양한 지식과 다방면적 사고력, 특히 상상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결코 특정 과학의 높은 전문성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적인 진리가 되었다.

 

북의 언론보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과학자들과 영재들 그리고 각 기업소 기술자들에게도 다방면적 식견을 넓히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보도가 종종 나오는데 북도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저 광명성 위성 발사가 족족 성공한 것이 아닌 듯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사교육비 잡는다면서 교과과목을 줄이는 쪽으로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방면적 식견을 소유한 인재양성은, 창조적 인재를 위한 측면만 아니라 건강한 체력과 낭만, 도덕과 양심까지 살아있는 전인간적 인격체로 후대를 육성하는데 있어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관점이다.

 

도대체 기자회견이라고 이름을 걸지 말든지 정말 오랜만에 기자회견 한다더니 기자들 질문도 몇 개 받다가는 멋대로 그만하자며 땡 치고 나가버리는 꽉 막힌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런 이치를 납득시키는 것은 거의나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차기 정부에서라도 시급하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부터 모조리 뜯어 고쳐야 할 것이다.

 

이휘소 박사의 위의 편지에서 또한 주목할 점은 그의 수면시간이다. 평소 하루 12시간씩 잔다는 말인 듯 한데 충격적이다. 정말 바쁠 때도 7시간을 잔다니, 언제부터 이런 수면시간을 가졌는지 가족들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언젠가 인터넷 뉴스에서 아인슈타인 박사의 수면시간도 하루 12시간이었으며 특정과제 연구에 들어가면 15시간씩 자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의아했던 적이 있다.

 

이 두 세계적 천재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수면시간이니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필자도 잠을 충분히 자면서 글을 써보기도 하고 잠을 아껴가며 글을 써보기도 했는데 물론 잠을 줄여 기사를 쓸 때 더 많은 기사를 쓴 것은 사실이지만 기사의 질이나 기사 작성 속도를 놓고 보았을 땐 충분히 잠을 자고 쓸 때가 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글을 쓰다가도 피곤하면 낮이건 밤이건 그냥 베게 끌어안고 잠부터 자고 본다.

 

필요 수면 시간이야 각자의 체력 특히 간의 해독 능력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도의 지적 능력과 창조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경우엔 충분한 휴식으로 머리를 최상의 조건으로 만들어 놓아야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같다. 이휘소 박사는 잠을 잘 자는 능력도 타고난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창조의 한 비결인 몰입의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게 보면 잠도 못자고 일하게 하는 현대 사회는 비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창의성마저 꺾어 국가나 사회적으로도 큰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구글이란 회사에서 왜 그렇게 직원들에게 무조건 회사에 와서 2시간씩 놀거나 쉬게 하는지, 그럼에도 창조적 아아디어가 쏟아져 나오는지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대기업 부사장이 사업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타워팰리스에서 뛰어내리고, 근로자들이 직업병 의심을 받으며 공장에서 숱하게 죽어나가고 있으니... 이제는 우리 사회와 기업도 일과 휴식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할 때가 아닌가 싶다.

 

천재성을 꽃피운 열정과 몰입

 

74년 도미 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 금의환양한 이휘소 박사, 이 방문은 서울대 교육차관 심사차 왔던 것, 오른쪽이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표정엔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함께 무언가 걱정빛이 애잔하게 어려있어 보는 이 마음 아리다. ©자주민보

 

아무리 부모가 좋은 천재적 재능을 물려주어도 꽃피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여기에서 필요한 부분이 바로 열정과 몰입이라고 생각한다.

 

기어이 목표를 점령하겠다는 의지가 열정이라면 그 열정을 정확한 목표지점에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이 몰입일 것이다.

 

[오늘 밤 친구에게 물었더니 미국학생 중 부모에 완전 의탁하는 학생은 불과 20%, 완전자력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20% 나머지 60%는 다소간 부모의 원조를 받는다고 합니다. 다만 작년 여름에는 한국휴전 후의 불황으로 학생의 50% 밖에 취직이 안됐다고 합니다.

 

끝으로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대의 아들은 건재합니다.”입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일만 적과 싸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저에게는 44불만 보내주시면 됩니다.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꼭 필요하면 그 때 또 말씀드리지요.]-1955. 4. 9 이휘소 박사 편지 중에서

 

[이곳에서는 일을 해도 누구하나 경시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저로서는 저의 학비의 일부나마 저의 손으로 마련하는 것이 여간 기쁘지 않습니다. 처음이라, 이틀째인 오늘은 좀 몸에 베기는 듯 합니다만 곧 극복되겠지요. 일을 하면서도 우등이라면 얼마나 장합니까? 공부도 가일층 노력해서 학기말에는 전부 a로 해보겠습니다. 안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로서는 44불만 송금이 된 것이 어머니 부담을 덜해 드리고 더 잘된 것 같습니다.]-55. 4. 21 이휘소 박사의 편지 중에서

 

용돈벌이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이휘소 박사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편지에 대한 대답이다. 미국 학생들도 그렇게 공부하는 학생이 많으니 걱정 말라면서 일만 적과 싸울 각오’, ‘일을 하면서도 우등이라면 얼마나 장합니까?’라는 말을 통해 어려운 조건이기에 더욱 분발하여 우등하겠다는 열정과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이휘소 박사는 그 열정을 여러 과제를 벌려놓고 술 덩벙 물 덤벙하지 하는데 쓰지 않고 하나의 과제를 선정하면 집중적으로 파헤쳐 단기간에 점령하는 몰입점령 하는 데 집중시켰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과제는 전혀 안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 시기에 집중분야를 잘 선정한다는 말이다.

 

이휘소 박사는 중학교 때 영어를 떼었다고 한다. 집중해서 팠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 등을 다 떼었고 유학가기 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실력을 구축했다. 한 번 파면 집중해서 목표한 수준을 단기간에 점령한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 자주 소개되는 동영상 등을 통해 연구해 보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그랬다고 한다. 5세 때 노동신문을 읽고 그 내용의 핵심을 이해하고 비평할 수 있었으며 인민학교 즉, 초등 때 중고등 수학을 떼고, 중고등학교 때 대학 일반수학을 다 점령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박사도 일반상대성 이론을 정립할 때 수학의 부족을 느끼자 3년간 친구 수학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수학공부에 집중해서 결국 e=mc제곱이라는 그 엄청난 공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휘소 박사는 공부나 연구 과제도 집중몰입형태로 점령해갔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거나 과학이치탐구 사색을 할 때도 엄청난 몰입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옆에서 아가가 울어도, 아내가 옆에서 화를 내도 몰랐다고 한다. 지적 능력이 높다보니 머리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적 연상작용이 일어나 파고들어가게 되면 이런 몰입상태에 빠지는 것일까.

 

중요한 점은 비판적, 창의적으로 자료를 읽지 않으면 그런 몰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꼭 이 방법만 있을까.”, “이건 아닌데...”와 같은 의문을 끊임없이 떠올리면서 자료를 읽고 연구를 했음을 이휘소 박사의 편지를 보면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몰입을 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항일무장투쟁 당시 천재적 전법을 구사하여 일제 최강 관동군 지휘관들도 무서워 벌벌 떨게 했다고 중국 동북3성 당시 주민들이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는 김일성 주석도 책을 읽을 때면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몰입을 잘 했다고 한다. 북한 방문 당시 김일성 주석 생가 안내원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김일성 주석이 아주 어린 나이에 소 풀 먹이러 나갔는데 어두워 소만 홀로 돌아오자 어머니 강반석 여사가 나가보니 땅거미가 내리고 있는데도 책을 읽는데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천재의 예가 많음에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굳이 언급한 것은 그 두 지도자가 북에 건설한 영재교육 시스템에 주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영재이기에 영재교육 방법도 정확히 파악한 것인지는 몰라도 북한의 영재교육에 대해서는 오바마도 인정을 했으며 우리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보수진영 후보들도 북한의 영재교육 체계를 예로 들며 자기들 주장을 펴는 것을 자주 보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사교육 학원에서 선진도 나가는 것에 대한 논란이 많다. 물론 무리한 선진도, 특히 기초를 다지지 않은 상태에서 마구 진도를 앞서가는 것은 문제이지만 충분한 지적 능력과 더 높은 수준까지 섭력하고 싶어하는 열정을 가진 영재들에게는 집중점령식 선진도 교육방법도 적극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분명한 점은 사회와 민족 나아가 인류의 발전을 위해 영재들은 반드시 그들에 맞는 특별교육기관에서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 육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은 북한 교육체계에서 참고할 부분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유치원 때부터 교사들은 수학이나 예능 등에 특별한 두각을 나타내는 영재들을 종합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까지 보고하게 되면 나라차원에서 대학 박사급이나 인간문화재급 지도자들의 도움까지 받으며 맞춤식 집중 교육을 받게 되는 것 같다.

 

2001년 민족통일행사 취재당시 청년회관 공연당시 패랭이춤을 추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 무대 뒷편에 가 보았더니 60대 후반의 전통춤 전문가 할아버지가 아이의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남한의 인간문화재와 같은 할아버지였는데 그가 그 유치원 학생의 전문 춤 지도자였다.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리진혁 꽹과리와 함께 장구 잘 쳤던 김철도 그런 지도를 받아 단기간에 장구천재로 되었다고 했다. 예능아 교육이 이정도인데 수학천재, 과학천재들 교육이야 어떠할지는...

 

지난번 세계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여러 명의 북 수학영재들이 우수한 상을 받았는데 평양보다 지방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부분 평범한 노동자의 자녀들이었다.

 

영재선발과 교육체계가 지방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학생들을 소개했던 북 방송을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았는데 특이한 점은 중국 국경지대 쪽 아이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한나라당 등의 정치인들은 토론장에서 이 점을 내세워 북한도 영재교육기관이 그렇게 많은데 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정당에서는 평균화교육정책만 고집하냐고 지적하곤 한다.

 

진보정당에 영재교육정책 고민이 없다면 반드시 보완해야 할 것이다. 다만,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정책이 정말 나라의 인재를 키우자는 것인지 상류층 지배세력 동창회를 만들자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영재중고등학교는 일류대를 가기위한 기본코스로 전락된 지 오래라는 비판이 어디 하루 이틀이 아니지 않는가. 외고는 해외 어학연수에 학원집중 교육 등 돈으로 합격시키고 엄청난 등록금을 댈 수 있는 돈 있는 집에서만 보낼 수 있는 학교 아닌가.

 

특목고에 일반 서민의 자녀가 합격한다고 해도 과연 그 엄청난 학비를 댈 수 있는가. 완전 무료 영재학교를 만들지 않는 한, 나라를 위한 영재교육 어쩌고 저쩌고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한다.

 

특히 진정 제대로 된 나라라면 적어도 교육만큼은 영재건 누구건 모두 무료로 해야 한다. 나라의 100년 대계라고 말하면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면서 돈 없어 재능을 키우지 못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가난하다고 남측에서는 무시하는데 그런 북한도 교육은 대학까지 전액 무상교육이다. 방북 취재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학생들의 교복과 학용품도 국가에서 나누어주고 대학생들에겐 문화생활을 위해 용돈도 나라에서 나누어준다. 최근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시로 성장기 아이들에게 콩우유와 빵 등 간식을, 대학생들과 교수들에게는 매일 고기겹빵(햄버거)을 나누어준다고 한다.

 

이휘소 박사도 어머니가 병원을 열어 번 돈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미국 유학 엄두도 못냈을 것이다. 어머니는 수입이 빠듯함에도 과감히 아들 유학을 지지해준 것이다.

 

편지를 보면 과수원을 팔 계획도 편지로 이휘소 아들과 상의한 것으로 나오는 데 어머니도 경제적으로 빠듯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 어머니를 위해 이휘소 박사는 유학초기 적응도 어려웠을 터인데 용돈벌이까지 했던 것이다.

 

영재를 키우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쭙잖은 교육자와 교육내용으로는 오히려 영재성을 망치기 십상이다.

 

이휘소 박사도 서울대를 다니다 더는 배울 것이 없어 독학으로 이런 저런 공부를 하다하다 답답해서 돈이 많이 들더라도 미국 유학을 결단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의 높은 수준의 교수들의 수업이 그러니 얼마나 신명나겠는가. 어려울수록 더 신나서 공부에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 비싼 등록금과 유학비가 아까워서라도 더 배우려고 눈에 불을 켰던 것이다.

 

결국 그 시대에 태어난 영재들을 모두 키워내는 일은 개개인 가정에만 맡겨 둘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강대국에 굽신거리며 떡고물기술 던져주기만을 껄떡거리는 나라가 아닌 제대로 된 자주적인 과학기술 강국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교육만은 반드시 나라에서 책임져야 할 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남과 북의 과학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한 과학자들이 그것도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쏘아올린 나로호가 두 번이나 실패했는데 북은 쏘는 족족 성공하지 않는가.

 

이제는 과학기술 시대다. 과학기술이 곧 힘이고 국력이며 부강번영의 초석이다.

이휘소 박사의 편지만 연구해도 지금 우리의 교육은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열정을 폭발시킨 기폭제는 애국심

 

사람의 의지는 무한하다. 열정도 기어이 해내려는 의지가 있었을 때 폭발하게 된다. 그 의지는 물질적 동기나 생존의 욕구, 자녀를 잘 키워 대를 이으려는 욕망, 사회와 민족 나아가 인류를 위해 보탬을 주려는 의지 등에 의해서 생긴다.

 

이중 가장 숭고하고 아름답기에 강도도 가장 강한 의지가 바로 사회와 민족, 인류를 위해 기여하려는 의지이다.

쉽게 말해서 애국심이 가장 뜨거운 열정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파쇼국에서는 왜곡적인 형태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어느 한 나라의 과학기술이 가장 빨리 발전할 때는 전쟁시기라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요사이 밤에 자기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습니다. 미국남북전쟁 당시의 사정이 어떻게 그렇게 조국의 과거수년과 그렇게 같은 지 마치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꿋꿋이 싸워오신 그리고 아직도 싸우시는 어머님의 거룩한 모습은 저로서의 항상 자랑이요, 그리고 힘의 근원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알지 못하던, 그리고 알려고 해 본 일이 없던 사실 하나를 안 것 같습니다. 즉 여성의 힘, 심리 그리고 도덕, 가장 이상한 마음의 동요를 느꼈던 구절은 사람들이 불안 속에서도 무의식하게 부르는 구절.

 

잘 쉬여라 쉬여. 우지 말고 쉬여. 어려운 시절 닥쳐오리니 잘 쉬어라 켄터키-옛 집

 

그리고는 그들이 이 구절과 자기내의 운명을 비교하고 몸부림치는 곳-어머니, 우리 광릉에서 지내며 꼭 같이 경험한 것을 아직 기억하시지요. 아름다웁고 거룩한 어머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재건이야말로, 전쟁 이상으로 쓰라린 시기다라고도 이 책속에 있습니다.]- 1957. 7. 5 이휘소 박사 편지 중에서

 

1935년에 태어난 이휘소 박사는 일제시대 어린 시절부터 나라 잃은 설움을 겪었고 청소년시기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나라가 힘이 없으면 어떤 비참한 일을 당하는지 뼈에 새겼다. 특히 그 난세에 홀몸으로 여러 자녀를 키우느라 고난을 헤쳐가야했던 어머니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조국을 빼앗긴 백성들의 간난신고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격랑의 역사 한 복판에서 나고 자란 이휘소 박사이기에 이역멀리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세계적인 과학자로 활동하면서도 단 한번도 조국과 그 조국의 또 다른 구체적 얼굴이었던 어머니를 잊어 본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위의 편지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쟁보다 전쟁 후 재건이 더욱 힘들다는 깨달음을 쓰리다는 표현 속에 담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과학으로 조국의 재건을 위해 보탬을 주려는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거기다 위의 편지에도 나와 있듯이 조국의 또 다른 얼굴이었던 어머니에 대한 이휘소 박사의 존경과 사랑은 대단했다. 그 존경과 사랑에서 나온 열정이 그를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게 추동했을 것이다.

 

[전번 편지에서 기간존세(其間存細:그 기간 자세한) 소식 듣고 다시금 어머님께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 할지요. 다만 눈가장자리가 뜨거워집니다. 가능한 일이면 과수원을 그냥 보존하시면 저로서는 좋겠습니다. 제가 이론계통으로 들어섰으니 한국에 나가면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농사짓고 싶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어머님 편하신 대로 처리하십시오.]-1956. 8. 12 이휘소 박사의 편지 중에서

 

미국 유학 2년째 어머니에게 쓴 편지이다. 어머니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땅을 팔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어머니는 이휘소 박사 미국 유학 뒷바라지를 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휘소 박사가 허투루 시간을 허비했을 리가 없다.

 

이 편지는 유학 초기라 그런지 농사를 지으며 후학을 양성하겠다는 소박한 꿈이 담겨있다.너무나 깨끗하고 낭만적인 꿈이다. 이런 사람이 새긴 애국심은 믿어도 된다고 본다. 사심 없는 깨끗한 양심에서 나온 애국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편지에서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하야 할 부분은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유학 초기부터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르건 말건 이휘소 박사는 애초부터 조국에 돌아가 조국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결심을 새겼던 것이다. 그저 출세나 하고 자기 홀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미국 유학을 결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방학에는 뉴욕시에 놀러갔습니다. 경기중학의 동창회가 있었고, 브로드웨이의 음악극을 보는 등, 동창회에 가서 옛 학우를 보고는 그들과 저의 생활철학의 차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어느 사이에 저는 상아탑의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실사회와 거리가 먼... 어쩐지 우울한 것 같지요? 사실은 연구에 그 간 진보가 별로 없어서 우울합니다.... 일본 아저씨 이야기를 저번편지에서 읽었습니다만, 아직 서울에 계신지요? 경제적으로 어머니께서 부담이 큰 것 같습니다만 저로서는 어머님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죄송스럽기가 한이 없습니다.]-60. 1. 20 이휘소 박사의 편지 중에서

 

이휘소 박사는 동창회에서도 삶의 가치와 생활에 있어 친구들과 차이가 많은 점을 느끼지만 그런 친구들의 생활에 대해 전혀 부러워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친구들과 오랜만에 놀면서도 오직 자신의 연구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런 가치관이 미국 유학 6년째 이미 몸에 배겼던 것이다. 아니 유학 오기 전부터 이미 결심한 바일 것이다.

 

[어머님 전상서. 전번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아시는 것과 같이 금년 노벨상은 양자물리학에 주어서 저도 생각하는 점이 많았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 제1 상에는 후보자도 많고 저의 공적이 제일 많은 것이 아니라() 수년 후에 받을 것을 바라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능력이 있는 대로 일생 연구에 더 주력을 하겠습니다. 능력, 행운 모두 있어야지요. “진인사대천명”]-71. 11. 30 이휘소 박사 편지 중에서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이휘소 박사에게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해서 노벨상까지도 타서 조국을 빛내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편지를 보냈던 것 같다. 이휘소 박사의 애국심의 뿌리는 어머니였음을 느끼게 된다.

 

, 이휘소 박사의 애국심은 결코 하루아침이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난의 역사를 관통했던 삶의 체험과 고결한 어머니의 삶의 가르침을 통해 확고하게 형성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문제는 어느 인도학생의 프린스톤대학박사논문을 읽고 좀 이상히 여겨 연구한 바 불충분한 곳이 있어서 골치를 앓았습니다. 어떻게 해석을 얻는 방안을 얻은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두고 연구해보아야겠습니다. 요새도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문제라 빨리 해답을 얻어야겠습니다.] -58. 2. 10 이휘소 박사의 편지 중에서

 

이휘소 박사는 미국 유학 4년째 인도 대학원생의 논문도 홀시하지 않고 면밀히 살피고 있다. kbs에서 보도한 이휘소 박사 기록영화를 보면 당시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를 보유한 미국 페르미랩 이론물리부장직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인도 등 당시엔 후진국이었던 나라 학생들의 실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걸었다고 한다.

 

이휘소 박사의 애국심은 국경을 넘어 인류애로 승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제 인도의 살람이란 학자가 1979년 노벨상을 받는데 이휘소 박사가 큰 도움을 주었다. 나라를 빼앗겨본 이휘소 박사였기에 같은 처지의 약소국에 대해서도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애국심 민족 자주권 존중 기저엔 공정한 인류애와 학자적 양심이 든든히 깔려있었다. 이휘소 박사는 와이버그와 같은 당대 미국과 세계 최고 물리학자의 수학적 어려움을 해결해주어 노벨상을 받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고 네덜란드 토프트 박사도 이휘소 박사의 강의와 가르침에서 착상한 연구의 활로를 열게 되었고 그렇게 정리한 이론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때 이것을 세계 과학계에서 인정할 수 있도록 정리 체계화까지 해주어 노벨상을 받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고백하였다. 이휘소 박사가 조금이라도 사심이 있었다면 아마 자신의 것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음에도 이휘소 박사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토프트 박사도 이휘소박사의 그 공정함에 반했다고 고백했다.

 

마치며...

 

이런 과학자를 또 다시 쉽게 만날 수 있겠는가. 너무나 겸손하고 양심적인 이휘소 박사.

 

위의 편지에도 나와 있듯이 이휘소 박사는 대학생 시절 미국 교수들에 칭찬을 받을수록 더욱 실수가 없도록 분발할 의지를 피력하고 있으며, 그의 연구 과정을 살펴보면 이름 없는 다른 나라 대학원생들의 논문에 들어있는 발견의 종자들을 제 것으로 하지 않고 직접 그런 학생 하나하나 찾아가 그 종자의 싹을 튀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 다들 노벨상을 받게 해주었다. 정말 이렇게 공정하고 양심적인 과학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휘소 박사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을 것인지는 쉽게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이휘소 박사 어머니는 월간 지와의 인터뷰에서 이휘소 박사가 나는 애국잡니다. 내가 해야합니다.”란 말을 일본에서 만나 직접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휘소 박사는 다시 말하지만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다. 그가 스스로 나는 애국잡니다.’라고 어머니에게 말했다면 그는 조국을 위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칠 각오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석하 작가의 소설에 사건전개상에 허구가 들어있을지는 몰라도 그 책의 핵심 주장인 이휘소 박사가 뜨거운 애국자였다는 것만은 조금도 과장이 없는 진실이다. 이휘소 박사의 딸 이안 씨도 kbs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조국을 사랑했던 과학자였다는 점을 국민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휘소 박사가 민족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을 그렇게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뜨거운 애국심을 체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5년여 전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과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라의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중국과 인도 학생들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더라고 말할 때 자칫 한국이 중국, 인도에게 경제적으로 먹힐 수도 있겠단 우려를 했었다.

 

그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전기차의 경우엔 이미 한국을 압도하고 있다고 한다. 우주항공은 그 격차를 잴 수조차 없다. 조선업도 고급선박은 아직은 우리가 비교우위에 있지만 규모로는 이미 한국을 추월했다. it, bt에서만은 우리가 좀 앞서고 있지만 중국의 따라오는 속도가 무섭다. 거기다가 또다른 인구대국 인도의 추격도 시작되었다.

 

중국의 과학기술도 유학에서 돌아온 애국심을 가진 인재들에 의해 발전되고 있다. 애국심에 의한 열정은 월급 많이 주겠다는 자극으로 불러일으키는 열정과는 그 질과 강도에 있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과학자 창조성의 참다운 원천은 애국심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유학생들은 갈수록 그 애국심을 잃어가고 있다. 민족과 애국을 말하면 조중동이 미친듯이 까대기 시작한다. 유명 학자들이 방송에 나와서 국수주의자로 낙인을 찍느라 바쁘다. 일부 진보진영도 이에 합세하는 바람에 민족허무주의가 위험할 정도로 퍼져버렸다.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될 정도다.

 

이는 결국 국민은 물론 조동동 스스로도 망하는 길이다. 여기엔 대기업과 중소기업, 나라와 국민의 구분이 없다. 애국적인 과학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나라 기업과 국민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한다.

 

이제는 정부차원에서 국수주의가 아닌 참된 애국주의 교양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정책적으로 해야할 때이며 북의 과학자들과도 손을 잡고 서로 도와주며 민족의 앞날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해야할 때라고 본다. 과학이 없이 자원도 없고 모든 것이 부족한 남한이 살 길이 과연 있는가. 체제와 구태의연한 이념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다고 본다.

 

열정과 몰입, 그리고 창조성의 원천인 애국심!

 

허나 자주권을 잃어버린 조국에서는 과학자의 이런 애국심이 짐이 되고 때론 죽음을 앞당기는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애국심마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해방 이후 월북했던 당대 최고의 화학자 리승기 박사도 일제시대 일본에 유학가서 돌에서 뽑아낸 섬유, 비날론 기술을 개발했는데 일제가 그 기술로 군복을 짓겠다고 공장설계도를 뽑으라고 했을 때 그것을 거부하는 바람에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아마 일제가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로 망하지 않았다면 윤동주를 학살했듯 소리 소문 없이 리승기 박사도 옥중에서 병사를 가장한 학살극을 자행했을 것이다. 실제 일왕의 항복 선언으로 감옥문을 열어주던 일제 간수가 리승기 박사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살아나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힌 바 있다.

 

이휘소 박사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면 할수록 미 지배세력들이 이휘소 박사의 애국심을 꺾어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자 사고사를 가장한 학살극을 꾸몄을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마지막 편에서 다루고자 한다.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1/02/28 [14:56] 최종편집: 자주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