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38도 선을 그은 배경과 6.25 秘史
김종필 전 총리도, 대다수 국민도 모르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새 역사 교과서에 꼭 넣어야 할 이것!
◀딘 러스크 국무장관과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지난 주말 민주노총 등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인 대규모 폭력 시위 구호 중의 하나는 “친일독재 미화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였다.
그리고 김종필 前 국무총리는 한 일간지에 연재하고 있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62년 11월 미국에서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을 만났을 때다. 나는 처음에 다소 건방진 태도를 보인 케네디 장관을 향해 “당신네 나라가 우리 한반도를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분단의 아픔을 안게 한 원인을 만들었소”라고 따졌다.
그가 “그 원인이 무엇이오?”라고 묻기에 이렇게 답해줬다. “38선을 누가 만들었소. 딘 러스크 육군 대령이 긋지 않았소. 왜 아무 죄 없는 한국을 반으로 갈라 놓았느냐 말이오. 우리를 분단시켜 싸우게 만든 것이 바로 미국이오.”
로버트의 형 존 케네디(JFK) 대통령 정부에서 국무장관에 오른 러스크는 대령 시절이던 1945년 8월 한반도 지도에 38선을 그어 남쪽은 미군,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케 하는 초안을 만들었다. “장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한 전략적 패착이었다”고 말했다.
만일 JP가 케네디 법무장관이 아니라 러스크 국무장관을 그날 만나서 똑같은 소리를 했다면 러스크는 아마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그때 38선을 긋지 않았더라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을 것이오. 그러므로 당신은 나한테 오히려 감사해야 하오.”
일본이 항복한 날 미군 최선봉 부대는 한반도에서 남쪽으로 1000 km나 떨어진 오키나와에 있었기 때문에 미군이 소련군보다 먼저 한반도에 들어갈 가능성은 제로였다. 그때 소련군은 이미 함경도를 통해 한반도에 들어오고 있었고 일주일 정도면 부산까지 밀고 내려갈 수 있었다. 이를 우려한 미국은 소련에게 38도선까지만 내려와 북한 지역에서만 일본군의 항복을 받으라고 제의했던 것이다.
1990년에 출판된 딘 러스크(Dean Rusk) 회고록 As I Saw It (내가 본대로)》124쪽에 이렇게 적혀있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있는 일본군으로부터 언제 어디서 항복을 받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국무부와 국방부는 의견이 달랐다. 국무부는 중국 본토의 가능한 한 북쪽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 만주의 주요 지점들이 우리 점령지역에 들어가도록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육군은 우리 군대가 아주 조금 있거나 거의 없는 지역들은 아예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다. 사실은 아시아 대륙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육군은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시아 대륙에 상징적으로 군대를 좀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한반도에 발판 같은 걸 하나 마련해 두기로 했다.
일본이 항복한 바로 그 날인 (미국 동부시각) 8월14일 늦은 밤 (국방부 작전국 정책과장) 찰스 본스틸 대령과 나는 (국무부, 국방부, 해군이 합동회의를 하고 있던 회의실)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한반도 지도를 자세히 보았다.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이 점령할 지역을 선택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중략) National Geographic 잡지사가 만든 지도 한 장을 놓고 우리는 서울 바로 북쪽에서 한 편리한 경계선을 찾았으나 지리적으로 자연적인 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北位 38도선을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국무부, 국방부, 해군 협의회)는 우리 건의를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였고, 놀랍게도 소련 역시 이의 없이 동의했다. 당시 미국과 소련 양국 군대가 위치한 지점을 고려한다면 소련이 38도선보다 훨씬 더 남쪽의 선을 요구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러스크의 이 증언을 보면, 일본과의 4년 간 전쟁에 지친 미국 군부는 아시아 대륙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싫어했으나 국무부가 우겨서 한반도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한 한반도 북쪽에 선(線)을 그어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을 막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미국 군부의 희망대로 그때 한반도에 미군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소련군은 한반도 전체를 다 점령하고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당시 33세·본명 김성주)을 앞세워 소련의 위성국가로 만들었을 것이 뻔하다. 실제로 소련은 당시에 나치 독일로 부터 해방된 東유럽 여러나라 전부를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때 미국이 38선을 그은 것은 우리 한민족에 엄청난 행운이었다.
38선이 그어질 당시의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1955년 출판한 회고록(Memoirs by Harry S. Truman)<트루먼 회고록> 1권 444∼445 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듣기로는 번즈 국무장관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멀리 한반도의 북쪽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도록 선을 그으라고 국방부 작전국 정책과에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육군은 한반도로부터의 먼 거리와 병력 부족이라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에 직면하고 있었다. 따라서 (먼저 한반도에 진입하는 쪽에서 한반도의 일본군 항복을 받아야하지 않겠느냐고) 소련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우리가 실제로 병력을 파견하기에는 38도선도 사실은 너무 멀리 잡은 것이었다.
소련이 이의를 제기해서 우리가 실제로 병력을 제때에 보낼 수 있는 거리에다 선을 그어야 했다면 그 선은 38도선보다도 훨씬 남쪽에 그어졌을 것이다. 북위 38도선을 따라 군부가 선을 그었기 때문에 우리는 조선의 옛 수도 서울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일단 한반도에 들어간 소련군은 곧 38선을 봉쇄하고 그 선 이북의 자기네 점령지역을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당시 33세· 본명 김성주)을 앞세워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독일이 연합국에게 1945년 5월7일 항복한 뒤, 소련은 전쟁 중 점령한 동부독일을 비롯하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나라들을 전부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1945년 한반도에 38선을 그은 것은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이 점령한 서부독일과 일본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채택하여 오늘날 경제대국들이 되었고, 역시 미군이 점령했던 남한은 오늘날 세계 12위 경제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소련군이 점령했던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했다가 1989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간신히 자유를 되찾았고, 역시 소련군이 점령했던 북한은 아직도 공산독재에 집착하는 무능한 金氏 세습정권에 의해 지구상 가장 가난하고 자유 없는 나라가 되어 있지 않은가!
38선 형성과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김종필 씨도 잘 모르고 있는 걸 보면 짐작할수 있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고 있다가 10여 년 전 러스크와 트루먼 대통령 회고록을 읽어보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미국 때문에 한반도가 38도선을 경계로 분단되었으며, 이 때문에 한국전쟁의 비극도 발생하였고, 아직까지 우리민족이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은 우리 민족의 “불행의 씨앗” 이라고 주장하며 순진한 학생들에게 反美감정을 불어넣고 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지난 70년간 미국은 우리를 크게 세 번 도와주었다. 첫 번째는 1945년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 우리 민족을 일제의 35년 압제에서 해방시켜주었고, 두 번째는 38선을 그어 남쪽에서나마 시장경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해준 것이고, 세 번째는 김일성이 시작한 6·25전쟁 때 즉각 군대를 보내 김일성의 적화(赤化) 야욕을 분쇄한 것이다.
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이번에 새로 만드는 한국사 교과서에는 반드시 넣어야 한다. 2008년에 실시된 한 조사에서 육사생도 34%가 미국을 주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나는 크게 놀랐다.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들이 해방 전후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구나 싶었다, 이번에 중고교 한국사 집필을 맡게된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글 | 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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