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시아파, 1400년째 왜 싸우나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같은 수니파 국가인 바레인과 수단이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4일(현지 시각)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성직자 처형으로 촉발된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다른 수니파·시아파 국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적 종파(宗派) 진영 대결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칼리프 선출 방식 異見서 출발…
사우디 "이란과 斷交"… 중동 일촉즉발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고 했다. 친(親)사우디 국가인 바레인과 수단도 4일 이란과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고,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란과 외교관계 수준을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공사)급으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사우디, 이란과 외교관계 단절 선언...중동 갈등 일촉즉발
수니파·시아파 왜 싸우나
중동 분쟁의 근원인 수니·시아파 갈등은 1400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 이들은 무함마드를 선지자로 여기고 하루 다섯 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향해 엎드려 기도하는 똑같은 무슬림이지만, 서로를 원수로 여기며 전쟁을 거듭했다.
수니·시아파로 쪼개진 건 632년(추정)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였던 선지자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숨을 거두면서부터다. 이슬람 공동체는 스스로 후계자를 정해야 했는데, 무함마드의 혈육을 후계자로 해야 한다는 시아파, 공동체 합의를 통해 적임자를 뽑아야 한다는 수니파로 의견이 갈렸다.
인구비율은 수니 85 對 시아 15
무함마드에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시아파는 무함마드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립(이하 알리)을 초대 칼리프(후계자)로 추대했다. 하지만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丈人)인 아부 바크르를 추대했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오른팔이었고, 둘째 딸을 무함마드에게 시집 보내 영향력도 셌다. 결국 수니파 의견이 채택돼 아부 바크르가 초대 칼리프가 됐다. 이후 시아파는 공동체 내의 큰 불만 세력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교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님르 바르크 알님르를 비롯해 47명을 등을 테러혐의로 처형한데 대해 격분한 이란 시위대가 3일(현지시간)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난입해 불을 지르면서 검은 연기가 건물 밖으로 치솟고 있다.
사우디 등 수니파는 능력주의…
이란 등 시아파는 혈육 앞세워
갈등이 노골화한 것은 시아파의 알리가 어렵게 제4대 칼리프에 올랐다가 곧 암살되면서부터다. 그 뒤 알리의 장남 하산마저 수니파 꾐에 넘어간 그의 아내에게 독살당하고, 차남 후세인도 수니파와 치른 전투에서 숨지면서 두 종파는 원수가 됐다.
1400년 전의 원한에서 비롯한 분쟁은 지금까지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2011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시아파 정권(알아사드) 대 수니파 반군, 작년 터진 예멘 내전은 수니파 정권 대 시아파 반군의 대결 구도다. 종파 전쟁 성격이 강한 내전은 다른 이슬람 국가에도 영향을 미쳐 분쟁을 확산시킨다. 현재 이슬람 신자는 수니파가 85%로 다수, 시아파가 15%로 소수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단절,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외교전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우디와 이란 간 갈등의 핵심은 결국 수니·시아파의 종파(宗派) 대결이다. 두 나라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갈등과 반목을 계속해 왔다. 당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가 "와하비즘(사우디의 근본 이슬람주의)은 이단"이라며 이란의 혁명을 수출하겠다고 선언해 대결의 길로 들어섰다.
양국은 1987년 7월 발생한 사우디 메카 시위 사건 때 국교를 단절했다. 메카 성지를 순례하던 시아파 신도들이 반(反)사우디 왕정 시위를 벌였고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400여명이 사망했다. 이 중 275명이 이란 시아파였다. 양국은 1988년부터 3년간 국교를 끊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2일(현지 시각) 저명한 시아파 지도자인 셰이크 님르 알님르를 사형시키자 이를 비판하는 이란 국민이 테헤란에 있는 사우디 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알님르의 사진을 붙인 팻말을 들고 사우디 국기를 불태웠으며 대사관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사우디 정부는 3일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우디, 이란 급부상에 위기감…
중동 兩强 자존심 충돌
전문가들은 이번 양국 갈등이 그때보다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는 "시위·폭동이 원인이었던 30년 전과 달리 이번엔 사우디 왕정이 심각하게 존립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 위기의 가장 큰 배경은 이란의 부상이다. 수니파 국가들은 지난해 서방과 핵 협상을 타결한 이란이 경제 제재라는 올가미를 벗은 뒤 석유 수출 등을 통해 중동의 강국으로 떠오를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란은 인구가 8000만명으로 사우디(3000만명)를 압도하고, 군사력은 중동 지역 최강으로 평가된다. 원유 보유량도 사우디 못지않게 풍부하다.
미국이 중동에서 예전과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도 사우디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란이 테러를 지원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는데도 미국이 적극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이란 방어벽이 약화돼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사우디 왕정을 지탱했던 자금력도 흔들린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사우디 주요 유전 지대가 동부 지역에 몰려 있는 것도 문제다. 전체 인구의 15%인 사우디 시아파가 이곳에 몰려 있다. 이란 사주를 받은 시아파가 유전을 장악하면 사우디 왕가로선 치명적이다. 서정민 외대 교수는 "사우디는 이란 시아파의 국제적 영향력 차단과 국내 시아파 세력 단속을 정권 유지의 관건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중동 등 이슬람 국가들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려 대진표를 형성하고 있다. 바레인과 수단, UAE 등은 4일(현지 시각)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등 사우디 편들기를 명확히 했다. 걸프 지역 수니파 왕정 6개국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와 친사우디 성향의 아랍연맹(AL)은 '사우디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맞서 이란·이라크·레바논 헤즈볼라 등 시아파 진영은 사우디에 보복을 선언했다.
사우디 왕정 지탱해 온 자금력,
저유가에 큰 구멍 나며 흔들려
이란은 미국과 핵협상 타결로
경제 제재 풀려 국제사회 복귀
이런 갈등은 중동 전체의 격동과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와 이란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는 예멘과 시리아 내전에선 정부군·반군의 전투가 격화될 전망이다. 서방은 양국 갈등이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세력을 키워 반(反)IS·반(反)테러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에서 시아파 정부와 수니파 주민들 간 적대감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IS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선 양국 갈등을 중재할 국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냉전 땐 미국·소련 영향력이 막강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양국 행동을 제지할 힘이 없다. 하지만 사우디와 이란 갈등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우디가 미국 지원 없이 군사적 행동에 나서기 어렵고, 이란도 이제 막 국제사회에 다시 발을 내딛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입력 : 2016.01.05 08:48
'중동 갈등의 뿌리' 이슬람 수니파·시아파 언제부터 갈렸나?
[이슬람 세계 돌연변이 IS]4대 칼리프 암살 이후 이슬람 세계 분열…200개 종파로 나뉘어 갈등 시작
◀서울 한남동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서울중앙성원.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잇따른 테러 행위에 대한 분노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이슬람 종파 간 갈등의 기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중동 갈등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종파 갈등'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355년 전 태동했다.
이슬람 내부의 종파 분화는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 후계자 선정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슬람교를 창시하고 제국을 건설한 무함마드가 632년 사망한 이후 무함마드의 혈족으로 이어지던 칼리프의 전통은 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시대에 흔들린다.
특히 3대 칼리프인 우스만 이븐 아판이 살해당한 이후 656년 4대 칼리프로 등극한 알리는 무함마드의 친족이 칼리프의 정통성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지지를 받았지만 5년 만에 암살된다.
5대 칼리프 자리에 오른 우스만의 사촌 무아위야가 추대 전통을 거부하고 자식에게 칼리프 자리를 세습할 것을 선언하면서 우마이야 왕조를 건립하면서 이슬람교는 분열된다. 무아위야의 지지자들은 '순나'(아랍어 sunnah·관행)에서 비롯된 '수니파'로 불리며 다수를 차지했다.
수니파의 견제로 680년 지금의 이라크의 카르발라(Karbala)에서 알리의 차남 후세인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이 소식이 이라크, 이란 지방에 전해지면서 이 지역 이슬람 정파는 또 다른 종파로 발전하게 된다.
세속적 권력 세습에 반대하고 정통 칼리프제를 주창하는 알리의 추종세력 '시아 알리(Shia Ali)'에서 따온 '시아파'가 탄생한 것이다. 카르발라와 인접한 나자프에는 이맘 알리, 이맘 후세인 사원이 지금도 남아 있어 시아파의 최대 순례지로 여겨지고 있다.
후세인의 제삿날인 이슬람력 정월(Muharram) 10일, '모하라 아슈람'은 시아파의 최대 추모제 날이자 명절이기도 하다. 초기 칼리프의 뒤를 이은 우마위야 왕조(661~750)와 압바스 왕조(750~1258)는 무함마드의 '혈통'을 중시한 시아파를 억압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또 다른 큰 차이 중 하나는 '지도자·인도자"를 뜻하는 '이맘'에 대한 견해다. 수니파에서 이맘은 코란을 독경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정도의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시아파에선 이맘은 알리와 후세인의 후계자이며 코란을 통해 신도들을 빛과 은총으로 이끄는 사람으로 격상됐다. 이란혁명 당시 최고지도자였던 호메이니와 현재 그 뒤를 이은 최고 종교 지도자 하메네이 같은 사람들이 최고위급의 이맘들이다.
한편 이 두 대표적인 종파를 포함해 이슬람에는 교리가 상반되는 200여 개의 종파가 있다. 이 가운데 전 세계 무슬림의 83% 이상이 수니파에 속하고 그 외에는 16%의 시아파와 시아파와 수니파에 섞여 있는 수피파 등 여러가지 종파들이 존재한다.
머니투데이 : 2015.11.16 18:0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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