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代 수저계급론,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대한민국 청년들의 웃픈 현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자신이 속한 계층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수저계급론'이 떠오르고 있다.
수저로 출신 환경을 빗대는 표현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mouth·부유한 가정 출신이다)는 영어 숙어에서 비롯됐다.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흙 묻은 수저)다. SNS에서 떠도는 수저 기준표에 따르면 흙수저는 대학 입학 후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거나 부모 자산이 5000만원 이하인 경우. 흙수저의 조건을 생활 밀착형 '자학 코드'로 풀어낸 게 흙수저 빙고 게임이다.
'수저론'은 '헬조선'에서 아무리 '노오~오력'을 해도 계층 간 이동이 힘들다는 열패감에서 나왔다. '헬조선'이란 취직·결혼·출산 등 안정된 생활을 위한 조건들이 보장이 되지 않는 한국 사회를, '노오~오력'은 기성세대가 신세대에게 "우리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노력이 부족하다"고 나무라는 것을 비꼰 말이다.
취직·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뜻의 '삼포 세대'가 자조 끝에 만들어냈다며 수저론을 무시할 건 아니다. 수저론은 흙수저를 물려준 부모가 아니라 흙수저를 한번 물면 그걸로는 영영 밥을 퍼먹기 어려운 상황을 원망하고 있다. 금·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걸음마를 떼자마자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사교육을 받은 뒤 명문대에 입학하고 어학연수까지 다녀온다. 금수저 중에서도 부모의 부나 지위를 이용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혜택까지 치자면, 입에 문 흙수저는 툭 치면 산산이 부서지는 모래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취업 시장에 몰린 20대만 이렇게 느끼는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현재 본인 세대에 비해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올라갈 확률이 얼마나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통계청 조사에서 '매우 낮다'거나 '비교적 낮다'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전 연령대에서 2006년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었다.
수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들 수저를 바꿔 물거나 수저를 돌려가면서 쓰기는 어렵다. 대신 최소한의 전제는 흙수저를 쥔 이에게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정도의 '가성비' 높은 밥상이 차려져야 한다는 것.
올여름 영화 '베테랑'이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영화 흥행 순위 3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금수저보다 한 수 위인 '다이아몬드 수저'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악행을 흙수저인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응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베테랑'을 보고 나면 잊히지 않는 게 서도철의 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이다. 그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조건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고 있었다. 연립주택에 살면서 집 화장실에 비데가 없는 게 '조건'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운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 / 입력 : 2015.10.28
나는 금수저? 흙수저? 수저 계급론과 행복한 삶의 상관
# 대학생 홍군(남23세)은 신입생 시절부터 학과 동기 박군과 늘 붙어 다니는 단짝친구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두 친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버렸다. 바로 홍군이 박군의 넓고 쾌적한 집에 놀러갔을 때 느낀 복잡, 미묘한 감정 때문이다. 알고 보니 박군의 아버지는 대기업 계열사의 CEO였던 것. "흔히들 하는 '금수저' 라는 말의 뜻이 확 와 닿았다"는 홍군은 박군에게 알 수 없는 질투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한다. 홍군은 "그 전에는 '흙수저'니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어느새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며, "박군은 아직 좋은 친구지만 어쩐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불평등한 기회를 노력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혹은 불공평함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리한 기회를 가지고 태어나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 비해 안락한 삶을 즐길 확률이 높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최근의 한국사회 핫이슈 중 하나는 바로 유리한 기회를 가지고 태어나는 '금수저'에 관한 논란들이다.
◆ 금은동, 흙수저까지… 삶의 만족도 낮아지고 있다
'금수저'라는 말은 영미 문화권의 'Born with Silver Spoon in His Mouth(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다)'라는 오래된 관용구에서 유래했다. 이는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은'보다 귀한 금속 '금'으로 바뀌어 금수저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
▲자수성가 아닌 상속 승계 등을 통해 부를 얻은 재벌2세 ▲성공한 부모로부터 교육지원 등을 풍족하게 받는 자녀들 ▲취업난과 무관하게 채용된 낙하산 인사 등 부모의 경제적 풍요를 등에 업고 별 다른 노력 없이 '잘'사는 2세들을 부모의 경제수준에 따라 금수저나 은, 동수저라 칭한다. 최근 SNS상에는 금은동 수저의 구체적 기준을 알려주는 '수저계급도'까지 유행하고 있다. 많은 네티즌들은 다소 씁쓸한 이 농담을 "단순히 웃어넘기기에는 불쾌감이 든다"거나, "나는 (금은동에 끼지 못하는)흙수저" 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신조어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Hell + 조선)'도 금수저 논란과 유사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다. '헬조선'은 현대 한국사회가 수많은 문젯거리를 품고 있어 지옥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신조어가 헬'코리아'가 아닌 헬'조선'인 것은 소득·빈부격차가 점차 심해져 자산, 소득 수준 등으로 신분이 나뉘는 것이 마치 봉건조선시대를 연상케 한다는 점 때문이다.
헬조선, 금수저 논란은 부의 편중이나 임금격차 등으로 삶의 만족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이로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랄 수 있다.
◆ 금수저나 흙수저나, 무엇을 담는지가 더 중요하다
최근 한 대학생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흙수저'에 대한 게시글을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 '흙수저' 학생은 게시글을 통해 "나는 흙수저라는 말을 우리 부모님이 알게 될까봐 싫다"고 말했다. 항상 경제적으로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부모님이 자신에게 흙수저를 물려준 건 아닌지 생각할까봐 싫다는 이야기다. 이어 그는 "나는 부모님께 좋은 흙을 받았다"며 부모님이 주신 좋은 흙으로 깊게 뿌리 내리고 건강하게 자라 큰 나무가 돼야겠다고 말했다. 해당 글은 1만 4400명이 넘는 청년들의 지지와 공감을 받으며 퍼졌고, "스스로 흙수저라는 생각은 가지지 말자"는등 응원의 반응이 이어졌다.
누군가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환경과 기회가 풍요롭다고 해서 부당한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금수저'라는 것은 운이 좋은 것일 뿐, 결코 나쁘다거나 잘못됐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금수저를 쥐고서도 아무런 노력 없이 부모세대의 노력만으로 승승장구한다면 비교적 덜 부유한 이들은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금수저를 입에 물려주지 못한 부모세대 역시 자식에게 더 좋은 환경을 물려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불필요한 죄책감을 가질 수 있다.
금수저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흙수저라고 무조건 불행하다고 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경제적인 부유함 이외에도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은 많으며, 행복과 불행이 반드시 대물림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저는 음식을 집는 식기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금수저인지, 흙수저인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수로 어떤 음식을 먹는 지가 더욱 중요하다.
세계일보 / 입력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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