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후회하는 것
알고 지내는 한 수녀님의 노부모님은 일흔을 훌쩍 넘기고 북한산 기슭 한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만년을 조용히 보내고 계십니다. 젊은 시절부터 오르내리던 북한산을 좋아해서 커다란 산수화를 걸어놓은 듯 뒤 켠 창문가득 북한산의 풍경이 보이는 곳에 만년의 터를 잡으신 것입니다.
일찍이 두 딸을 모두 수녀원에 보내고 그곳에서 산을 오르내리고 기도하며 수도자처럼 살고 계십니다. 가끔씩 수녀님으로부터 부모님의 삶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평생을 하루처럼 흐트러짐도 욕심도 없이 살아오셨다는 아버지.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한 화가는 아니어도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아오신 어머니. 수녀님은 이런 부모님을 가장 존경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수녀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는데 아버지께서 미리 써두셨다는 유서의 내용을 들었습니다. 음악을 틀어놓고 북한산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세상을 떠나면 북한산이 보이는 곳에 유골을 뿌리거나 여의치 않으면 선산 전나무 밑에 묻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인생에 아무런 미련이 없음을, 죽음은 자연의 섭리임을 이야기하며 딸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줄 것을 당부하는 말로 끝을 맺고 있어요. 인생의 숙제를 미리 다 해놓고 하느님께로 돌아가 검사받을 일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변을 꼼꼼하게 챙겨놓고 사시는 모습에서 평생 살아온 삶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부모님과 반주를 겸한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닷없이 저는 ‘인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신 어르신을 만나면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었습니다. 그 분은 준비라도 해놓은 듯 ‘인생은 구름 같은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푸념처럼 자주 듣는 인생의 허무를 애기하는 흔한 대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분의 말씀은 왠지 더 깊은 의미를 담은 채 저의 마음속을 맴돌았습니다. 놀 거리가 많지 않던 어린 시절 언덕배기에 혼자 팔베개하고 누워 온종일 하늘의 구름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고,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으로 숱한 정면을 연출하며 끊임없이 내 마음속 이야기를 펼쳐나가기도 했죠.
지금도 지구촌 어디엔가는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하늘을 보고 누워 있을 누군가의 이야기가 돼주고 잇습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되어 대지 위 생명의 목마름을 적셔주기도 하고, 굽이굽이 산 아래로 내려앉아 한 폭의 동양화가 되기도 하고, 해지는 서녘으로 몰려가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되기도 합니다. 구름은 이렇듯 공기의 흐름에 실려 하늘과 맞닿은 저편 산과 바다와 나무, 호수와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수시로 선사하고 수명을 다하면 흩어져 하늘이 됩니다.
인생은 구름 같다는 말은 구름의 허무함보다는 공기의 흐름에 따라 공중에 작은 물방울이 모이고 흩어지며 숱한 모양을 만들어 내는 일을 빗대고 있는지도 몰라요. 우리 인생도 구름처럼 때때로 다가온 삶의 환경에 따라 모양 지어져 왔음을 이야기 하는 듯합니다. 내 힘과 의지로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운명처럼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지금껏 살아왔음을 깨달은 고백 같습니다. 젊은 시절 가슴에 품은 인생의 꿈은 구름이 흩어지듯 간 데 없지만 인생은 덧없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임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보았던 ‘홀랜드 오퍼스’(Mr. Holland's Opus) 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주인공 홀랜드는 인생에 남을 만한 위대한 교향곡을 완성하고픈 작곡가입니다. 그래서 생계를 해결하면서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직업을 찾아 고등학교 음악교사가 됩니다. 하지만 그가 만난 것은 빡빡한 수업과 구제불능의 학생들이 모인 오케스트라뿐이었어요.
그는 교사로서 책무를 다하는데 온통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결국 위대한 작곡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택했던 생계의 길은 점점 아이들이 음악을 사랑하도록 열과 성을 다하는 교사의 길로 변해갑니다. 세월이 흘러 자신의 꿈과 목적도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홀랜드 선생은 인생에 뜻했던 바는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퇴임의 순간을 맞습니다.
30년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학교를 떠나는 날 수십 년 동안 그를 거쳐 간 제자들이 깜짝 이벤트로 오케스트라를 꾸며 무대 위에 홀연히 나타납니다.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홀랜드 선생을 맞이한 제자들은 ‘당신을 거쳐 간 우리들이 바로 당신의 교향곡’이라며 그의 손에 지휘봉을 쥐여 줍니다. 그리고 그의 지휘 아래 홀랜드 선생의 초기 작품을 연주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살면서 홀랜드 선생님처럼 자기 생각과 뜻대로 삶이 흘러가고 있지 않음을 경험하는 일이 많습니다. 문학가라면 길이 남을 좋은 글을, 화가라면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남기고 싶겠지요. 그러나 산다는 것은 바람결을 타고 있는 한 점 구름 같아서 자신의 꿈과 의지와는 관계없이 처한 환경에 끊임없이 이끌려 갈 뿐입니다.
사회학자 토니 캠플로(Anthony (Tony) Campolo)는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이루지 못한 업적을 바라보며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살고 사랑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름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덧없고 헛되고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이 섭리 속에 한 점 구름이 되어 변화무쌍하게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다가 그 분께로 돌아갈 뿐입니다.
다만 우리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지휘자이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올바르게 자기 삶을 연주하는데 있습니다. 올바르게 사랑하며 사는 동안 영화 속 홀랜드 선생의 제자들처럼 인생의 아름다운 교향곡이 탄생합니다.
소박한 아파트에서 아름다운 만년을 보내시는 수녀님 부모님 모습에서 홀랜드 선생의 얼굴을 봅니다. 하루하루 성실히 삶을 엮어가는 이 땅의 모든 이에게서도 그 같은 얼굴을 봅니다.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헌 점 구름처럼 두둥실 빈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당신이야말로 가장 멋진 하느님의 작품(God’s Opus)입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
01.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지 않았던 것
02. 유산을 어떻게 할까 결정하지 않았던 것
03. 꿈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
04. 맛있는 것을 먹지 않았던 것
05. 마음에 남는 연애를 하지 않았던 것
06.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
07.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던 것
08. 악행에 손 댄 일
09. 감정에 좌지우지돼 일생을 보내 버린 것
10. 자신을 제일이라고 믿고 살아 온 것
11. 생애 마지막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
12. 사랑하는 사람에게'고마워요'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
13. 가고 싶은 장소를 여행하지 않았던 것
14. 고향에 찾아가지 않았던 것
15.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
16.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것
17.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던 것
18.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던 것
19. 아이를 결혼시키지 않았던 것
20. 죽음을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
21. 남겨진 시간을 소중히 보내지 않았던 것
22. 자신이 산 증거를 남기지 않았던 것
23. 종교를 몰랐던 것
24.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
25. 담배를 끊지 않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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