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서울대의 사상 첫 장애인 졸업 대표연설 풀 영상 보니…

풍월 사선암 2015. 8. 30. 09:16

서울대의 사상 첫 장애인 졸업 대표연설 풀 영상 보니

 

첫돌도 안 돼 뇌성마비 판정을 받고 지금까지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온 정원희(25)씨는 자신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28일 열린 서울대 하계 졸업식에서 그녀는 휠체어를 탄 채 졸업생 대표로 연설했다. 장애인이 학생 대표로 졸업 연설을 하는 것은 서울대 개교 이래 처음이다.

 

  

그녀, 가능··믿음을 이야기하다

 

가능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가능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문제라고 말하면 그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 돌아옵니다.”

 

정원희(25)씨는 첫돌도 안 돼 뇌성마비 판정을 받고 지금까지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온 장애인이다. 그가 28일 서울대 제69회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휠체어에 앉아 졸업생 대표 연설을 했다. 2009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졸업장을 품에 안은 그는 가능’, ‘’, ‘자신에 대한 믿음을 얘기했다.

 

서울대학교 제69회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장을 품에 안게 된 정원희(25)

 

그는 동료 졸업생들에게 불가능 속에서 가능함을 증명해 보이는 삶을 살며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증거로 살아가자고 했다. “살다 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에 너무 힘겹고 어려운 순간이 있을 겁니다. 삼포세대, 달관세대 등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뉴스는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우리가 모교에서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졸업식 대표 연설 자리에 장애인이 서는 것은 낯선 일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신체의 특수성 때문에 조금은 다른 눈높이에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고, 삶은 더욱 풍성해졌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지탱한 힘이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했다.

 

"몸의 불편은 장벽이 아닙니다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마세요"

 

[서울대 졸업식 대표연설뇌성마비 2급 정원희씨]

 

도움만 받는 사람 되기 싫어 다문화 아동 돕기 봉사활동, 홀로 유럽 교환학생 나가기도

경영 전공 살려 투자취업 "상황을 바꾸는 건 자신뿐"

 

"조금 불편하다고 '장벽'으로 규정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일에 도전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장애를 '불행'으로 보는 사람들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찾아 계속 도전했더니 '행복'이 어느새 곁에 있더라고요."

 

태풍이 몰고 온 비가 흩뿌린 25. 우산을 쓴 채 서울 중구 퇴계로를 잠시 '산책'하던 정원희(25)씨는 자신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소개했다. 첫돌도 안 돼 뇌성마비 판정을 받고 지금까지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온 정씨는 오는 28일 열리는 서울대 하계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연설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학생 대표로 졸업 연설을 하는 것은 서울대 개교 이래 처음이다. 정씨는 "처음 연극 무대에 오른 대학 4학년 때처럼 설렌다""불편한 몸으로 서울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이의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누구든 좌절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25일 서울 중구 퇴계로 한국투자공사 인근 거리에서 정원희씨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다. 정씨는 오는 28일 서울대 하계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연설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정씨는 생후 11개월 만에 뇌성마비 2급 판정을 받았다. 정씨 어머니는 혼자선 몸을 뒤집지도 못하는 아기를 등에 업고 하루에 병원 세 곳을 옮겨 다녔다.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던 정씨는 물리치료와 재활 훈련을 받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간신히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있게 됐다. 정씨는 "그나마 편한 왼손으로 글씨를 쓰려고 하루 서너 시간씩 연습했다""처음 한글을 쓴 날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정씨는 태어나 처음으로 간 학교에서 입학을 거절당했다. 집 근처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가려 했지만 학교 측은 "안전 문제를 책임질 수 없다"며 장애인 학교를 권했다. 정씨는 "남들이 나를 '다른 존재'로 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라 회상했다. 정씨 부모는 수소문 끝에 시 외곽에 있는 작은 일반 초등학교에 정씨를 입학시켰다. 어렵사리 입학한 학교이기에 정씨는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어머니 김만재(50)씨는 "원희가 긍정적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해 '몸이 불편하다고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고 항상 말해줬다"고 했다. ·고교 때는 차별보단 배려를 받았다고 했다. 정씨가 다닌 중·고교는 휠체어를 타는 정씨가 속한 반을 항상 건물 1층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교실에 배정했다.

 

2009년 서울대 경영대학에 입학한 정씨는 '하고 싶은 건 다 도전해보자'고 다짐했다. 가장 먼저 봉사활동에 도전했다. "남의 배려와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닌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는 정씨는 2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학교 근처 다문화 가정 어린이 10여 명을 모아 '방과 후 활동'을 도왔다. 자신감이 붙자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지적장애 아동 보조 교사로 6개월간 일했다. 정씨는 "병원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엄마들이 나를 보고 '우리 아이도 희망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길 기대했다"고 했다.

 

정씨는 3학년 때 오스트리아 빈에서 교환학생으로 10개월을 보냈다. 당시 방학 땐 휠체어를 타고 유럽 10여 나라를 혼자 여행했다. 정씨는 귀국 후 친구들과 함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연극 단체를 만들었다. 남들이 취업 준비에 매달리던 대학 4학년 때 정씨는 두 차례 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 '불편한 몸도 아름답고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씨는 지난 4월 한국투자공사에 입사해 주식운용실에서 리서치 업무를 맡고 있다. 정씨는 "평소 사람 심리와 행동 방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투자야말로 이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분야라 지원했다"고 했다. 미리 써놓은 정씨의 졸업 연설은 이렇게 끝난다. "'가능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가능해지고, '문제'라고 말하면 그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됩니다. 힘겹게만 느껴지는 상황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란 걸 기억했으면 합니다."

 

입력 : 2015.08.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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