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런 기업인 있다니"… 2000억 기부, 한국사회를 깨우다
이준용 全재산 기부 '충격' / "全재산 통일나눔재단에"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던진 '신선한 충격'
- 재계 "한국 기부문화 바꿀 것" / "李회장, 영화 '국제시장' 보고 내내 눈물… 그때 결심한듯"
- 사회단체 "기부史의 대사건" / "사회지도층의 모범 보여줘… 통일운동에도 기폭제 될것"
- 정치권 "통일위한 결단 존경" / "모든 사람에게 울림 준 사건… 제2·제3의 李회장 이어지길"
◀1966년 28세 나이로 대림산업 베트남 사이공 지점에 파견돼 계장으로 근무하던 이준용(오른쪽 점선) 명예회장.
"대기업 총수(總帥)가 모든 재산을 기부한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준용 쇼크'가 재계(財界)는 물론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에 대한 인식을 전반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 10대 그룹 고위 임원은 18일 이준용(77)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자신의 개인 재산 전부인 2000여억원을 통일나눔펀드에 기부한다는 소식에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재산은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한국적 정서(情緖)를 뛰어넘어 모든 재산을 통일을 위해 쾌척한 데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재계, "최근 가장 놀라운 소식"
이 명예회장의 기부 소식은 이날 주요 그룹의 임원 회의에서 거론될 정도로 재계에서 단연 화제가 됐다. 한 5대 그룹 임원은 "너무 놀라운 뉴스라 아침 임원 회의에서 도대체 그 배경이 무엇인지 서로 물었다"면서 "최근 본 뉴스 중에서 가장 놀라운 뉴스"라고 말했다.
재계는 이 명예회장의 결정에 찬사를 보냈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유명 기업인이 재산 2000억원을 내놓겠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면서 "본인 이름으로 직접 재단을 세울 수도 있는데 통일에 대한 열정으로 통일나눔펀드에 기부하겠다는 대단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이 명예회장의 기부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통 큰 기부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됐으면 한다"고 했다.
한 재계 인사는 '평소 말씀이 없는' 이 명예회장이 얼마 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영화 '국제시장'을 본 소감을 밝힌 일화를 전했다. 이 명예회장이 회의에서 "마흔 넘은 딸이 하도 졸라서 어쩔 수 없이 갔는데, 영화가 시작된 첫 장면부터 끝 장면까지 내내 울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명예회장은 그 자리에서 6·25 전쟁 당시 1·4 후퇴 때 인천에서 화물선을 빌려 전북 군산 방면으로 피란을 떠난 일화를 자세히 이야기했다고 한다. 승선인원이 겨우 5명인 화물선의 화물칸에 500명이 타서 고생한 경험을 소개하며,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내 이야기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영화 이야기를 왜 하나 했는데, 돌이켜 보니 이 명예회장이 이때 통 큰 기부를 결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이 명예회장의 통 큰 기부 덕분에 국민의 대기업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기부 문화 변화의 기폭제 될 것"
이 명예회장의 기부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것으로 재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도 큰 감동을 안겼다.
김석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외협력본부장은 "사재 2000억원을 기부한 것은 우리나라 기부사(史)에서 기록할 만한 사건"이라고 평가했고, 박성연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장도 "이 명예회장의 기부는 한국 기업 풍토나 기부 문화에서 획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신원 SKC 회장은 "서양은 전체 기부액에서 차지하는 개인과 기업의 비율이 8대2이고 우리나라는 반대로 개인과 기업의 비율이 2대8"이라며 "이 명예회장의 개인 기부는 우리 기부 문화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부가 통일 운동 기폭제는 물론 사회 통합에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이 명예회장은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분야를 찾아내 기부를 한 것"이라고 말했고, 민준호 대한적십자사 기획모금팀장은 "이 명예회장의 기부가 통일을 준비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재벌들의 재산 상속 분쟁이 끊이지 않는 시기에 이 명예회장이 자신의 전 재산을 통일을 위해 내놓은 일은 우리 사회 지도층이 해야 하는 역할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이 명예회장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 지도층의 모범을 보였다"고 평가했고,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대학도 통일 한국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이 명예회장의 결정에 찬사를 보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생 이룬 부(富)를 국가, 민족, 미래, 통일을 위해 쾌척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 모든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대사건"이라며 "제2, 제3의 이 회장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정말 힘든 일인데 이 명예회장이 훌륭한 결단을 내렸다"며 "다른 일도 아닌 통일에 쾌척한 데 대해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통일은 말로만 얘기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이런 희생과 헌신에서 씨앗이 마련된다고 본다"며 "이 회장의 결단이 우리 사회 모든 기업인과 직장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귀감(龜鑑)이 됐다"고 했다.
기부 문화의 새 모범 보여준 이준용 대림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 대림산업과 관련한 주식 등 2000억원의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통일과 나눔 재단은 민간 차원에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통일 단체와 탈북자 지원 활동 등을 펴나갈 계획이다. 이 회장은 "후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통일"이라며 "일반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통일나눔펀드에 작은 정성을 보태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국내 대기업 총수 중에서 공익사업에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은 것은 드문 사례다. 지금까지 이 회장보다 더 많은 액수를 기부한 재벌 총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차명(借名) 계좌 문제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따른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측면이 있어 순수한 기부로 보기 어렵다.
더욱이 이 회장은 장학 재단 등을 설립해 재산을 기탁하는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내 이름을 걸어서 재단을 새로 만들고 운영해도 되지만 그게 다 비용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하기보다 이미 활동 중인 공익 법인 중에서 좋은 일을 하는 곳을 골라 기부 재산이 제대로 쓰이도록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래서 이 회장의 기부는 훨씬 신선하고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이 회장은 평소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온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꼽힌다. 1998년에는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350억원어치의 개인 재산을 아무 조건 없이 대림산업에 출연했다. 30대 재벌 오너 중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재(私財)를 턴 것은 이 회장이 유일한 사례다. 1995년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 때도 건설업계의 원로로서 국내 대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20억원의 성금을 기탁했다.
선진국 부호(富豪) 중에는 재산의 사회 환원을 일종의 의무처럼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전 세계 부호들을 상대로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기부 서약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세계 14개국에서 137명의 억만장자가 참여했다. 최근에는 사우디의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320억달러의 개인 재산 전부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개인의 고액 기부가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에 감동을 주는 기업인들의 기부 스토리는 적은 편이다. 기부 문화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은 데다 선의(善意)의 기부를 가로막는 법적인 제약 탓이 크다. 예를 들어 국내에선 외국처럼 재산 전액을 기부하는 게 매우 힘들다. 상속인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유류분 제도'가 있어 유가족들이 기부 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최대 기부 재산의 절반을 되찾아 갈 수 있다. 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기부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돼 있는 것이다.
회사 지분(持分)의 5%를 넘는 주식을 기부하면 증여세를 물어야 하는 것 같은 다른 제약도 많다. 이 회장도 이번에 기부를 결심하면서 "불필요한 규제로 인해 본인이 원하는 곳에 돈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은 데 놀랐다"고 했다. 이 회장 같은 기업인들이 기부를 통해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본인의 기부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제도의 대폭적인 정비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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