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 천상병 생각 “저승 가는데도 돈이 든다면, 나는 여비가 없어서 저승에도 못 가나” - 김동길 -
오늘 아침 문득 시인 천상병 생각이 났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지간히 친하게 지냈습니다. 나는 그가 어쩌다 ‘동백림 간첩 사건’에 걸려들어 여러 해 감옥신세도 져야했고, 자기 말대로라면, 전기고문을 하도 심하게 당해서 말도 어눌해졌고 자기 체내의 ‘남성’이 다 죽어서 “선생님, 저는 애도 못 낳슴니더”라며 익살스럽게 웃기던 그 얼굴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가 쓴 시 가운데 ‘저승 가는 데도 돈이 든다면’이라는 시에서 “어머니 아버지는 고향 산소에 있고” 누나는 멀리 사는데 여비가 없어서 갈 수가 없다고 신세타령을 하다가, “저승 가는데도 돈이 든다면, 나는 여비가 없어서 저승에도 못 가나”라고 한 그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아서 그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종로 바닥에서 만나면 누구에게나 손을 벌리며 “500원만 줄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이 아마 막걸리 한두 잔 값밖에 안 되었을 것이지만 그 이상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내가 사는 신촌 집에도 한두 번 왔습니다. 자그마하고 예쁘장한 부인이 있어서 둘이 함께 왔었습니다. 술을 하도 좋아한다기에 집에 있던 죠니 워커를 한 병 선물했습니다.
그 다음에 왔을 때 그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선생님 주신 양주를 저는 마셔보지도 못했습니더. 저 사람이(자기의 아내를 가리키며) 그건 비싼 술이니까 팔아서 막걸리나 사서 마시라고 했어요.” 그런 한 마디를 내뱉으며 그 일그러진 그러나 순박하기 짝이 없는 그 얼굴로 활짝 웃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시 ‘하늘로 돌아가리’(歸天)를 생각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선생님, 예수님도 가난하셨지요. 저도 가난합니다.” - 그의 그 한 마디가 오늘 아침에도 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 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느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소릉조 (小陵調) - 1970년 추석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천상병(1930∼1993)
“가난은 내 직업”(‘나의 가난은’)이라며 가난을 축복이자 긍지로 삼았던 시인이 있다. 가난했기에 막걸리 한 사발, 담배 한 갑, 버스표 한 장에 행복해했다.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주막에서’)이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행복’)라 여겼던 우리의 천상병 시인이야말로 오늘날과 같은 돈의 시대에 천상시인이고 성자시인이라 할 만하다.
시인은 가난을 빈곤이나 궁핍으로 느끼지 않았고 가난이 인간의 위의(威儀)와 인간다움을 다 빼앗을 수 없다고 믿었음에 분명하다. “잘 가거라/ 오늘은 너무 시시하다”(‘크레이지 배가본드’)며 이 자본의 세상으로부터 그 어떤 부자보다 더 멀리 나아갔고 더 높이 날아갔다. 시인을 시인으로서 멀리 보게 하고 높이 살게 했던, 그런 가난의 위엄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런 시인도 명절과 가족 앞에서는 가난의 막막함을 통감했나보다. 두보의 호(號)가 ‘소릉(少陵野老)’이니, 제목 ‘小陵調’(小와 少는 통용되기도 한다)는 두보풍으로 가난을 읊는다는 뜻일 게다. 추석인데도 여비가 없어 귀향은커녕 성묘도 못하는 형편을, 안록산의 난으로 가난하게 타향을 떠돌았던 두보의 처지에 빗대고 있다.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라는 끝 구절에, 두보의 “소릉의 촌로는 울음을 삼키고 통곡하며(少陵野老呑聲哭)”라는 시 구절을 덧대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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