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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매 내 새끼 - 왜 할머니는 손주에게 헌신적 사랑을 줄까?

풍월 사선암 2015. 5. 5. 07:08

음매 내 새끼

 

[Cover Story] 왜 할머니는 손주에게 헌신적 사랑을 줄까? 인류 번성 뒤엔 할머니라는 존재 있었다

 

오는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부부의날이 몰려 있는 '가정의 달'이다. 누구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아름다운 시기다. 하지만 현실은 순탄치 않다. 부부가 아이의 양육을 두고 다투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화가 끊긴 가족이 많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맡길 대상이라고만 보는 가족도 늘고 있다.

 

가족의 가치를 되살리려면 가족의 본성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방법이다. 왜 인간은 짝을 찾는 데 열중할까. 부모가 그토록 자녀 양육에 공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는 자연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은 아닐까. 왜 할머니는 손자를 그토록 끔찍이 여기는 것일까. 가족 구성원이 보여주는 사랑과 이별, 행복과 갈등은 과학적 관점을 통해서 더 분명히 이해될 수 있다. 과학이 밝혀낸 가족의 진실은 무엇일까.

 

가족은 어떻게 탄생했나: ()의 탄생과 가족의 기원

 

찰스 다윈은 1859년 출판한 '종의 기원'에서 '특정한 환경에 적합한 종()이 생존과 번식에서 이익을 본다'는 내용의 자연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진화론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런 그에게도 잘 풀리지 않는 진화의 문제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버거울 정도로 긴 깃털을 활짝 펴고 퍼덕이는 수컷 공작을 보았다. 그 위를 독수리가 날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 깃털을 진화시켰을까. 생존에 방해가 되는데도 말이다. 다윈은 암컷 공작이 화려하고 긴 깃털을 가진 수컷 공작을 짝짓기 상대로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것을 자연선택과 구별하여 '()선택'이라고 이름 붙였다. 수컷 공작은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바로 세상에 암수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15억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라는 행성에 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번식은 자신의 몸이 둘로 나뉘어 늘어나는 식이었다. 자신의 유전자 세트를 자손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방식인 셈이다. 성의 구분이 없는 이런 '무성생식(無性生殖)' 방식은 복제 관점에서 보면 매우 정확하고 효율적이다. 동일한 유전적 콘텐츠를 누가 먼저 갖고 있었는가의 차이만 있으니 조상과 자식이랄 것까지도 없었다. 암수가 없었으니 '썸 탈(사귈 듯 말 듯할)' 필요도, '밀당(밀고 당기기)'을 할 필요도 없었다.

 

만일 가족이 엄마, 아빠, 자식의 삼자 관계로 규정된다면, 그것은 지구가 형성된 지 30억년이 지나서야 핵이 없는 원핵생물(原核生物)에서 핵을 별도로 갖춘 진핵생물(眞核生物)이 진화하면서부터다. 진핵생물이 등장한 뒤 비로소 암수의 성세포가 결합해 후손을 낳는 '유성생식(有性生殖)'이 시작됐다.

 

성의 출현으로 암수의 짝짓기는 자식에게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물려주었다. 유성생식은 암수 세포의 유전자를 절반씩 나누고 이를 다시 결합해 자손을 만드는 방식이다. 똑같은 유전자를 한 번에 물려주는 무성생식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암수 세포로부터 유전자를 정확히 절반씩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 부정확하다.

 

하지만 늘 똑같은 유전자가 이어지는 무성생식에서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같은 생명체 집단이 한꺼번에 무너지지만, 유성생식은 다양한 유전자 조합을 후손에게 전달해 한 번에 모두가 화를 입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결국 유성생식을 통해 후손들이 유전적 다양성을 갖게 된 것이다. 밋밋한 지구가 화려한 행성으로 변모한 것은 성의 출현과 그에 따른 가족의 탄생 때문이다.

 

 

밀당은 왜 진화했나: 짝짓기 전략의 진화

 

그렇다면 인간의 가족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가족 형성을 위한 두 성의 만남부터 이야기해보자. 모든 것은 정자와 난자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하나만 난자를 생산하는 여성은 수시로 몇억개의 정자를 방출하는 남성에 비해 짝 선택에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포유류의 첫 번째 엄마가 자손을 배 속에서부터 기르기 시작하면서, 번식을 위해 여성은 또 다른 비용을 지불하게 됐다. 반면 남성은 번식을 위해 한 차례 사정만 하면 되므로 초기 투자가 적다. 이 때문에 상대 여성을 선택하는 데 까다롭지 않게 됐다. 이것이 바로 여성과 남성의 짝짓기 전략에 차이가 있는 이유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경제력을 가진 남성에게 끌린다. 여러 문화권에서 여성은 연상의 남성을 더 매력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연하나 동갑보다 연상의 남성이 지위가 더 높고 경제력을 더 잘 갖추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외모에 관해서라면 여성은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남성을 선호한다.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자원을 지키는 데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지 멋있어서가 아니다.

 

반면 남성이 여성을 보는 시각은 주로 외모와 젊음을 향해 있다. 젊음과 외모는 여성의 '번식적 가치'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내주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가령 대부분 문화권에서 남성은 허리와 엉덩이 둘레의 비가 0.7 정도인 여성의 체형을 가장 선호한다. 예컨대 허리가 24인치라면 엉덩이는 34인치인 여성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수치가 여성의 특정 상태, 즉 임신하지 않았고, 체지방률이 좋으며, 출산에 적합한 해부학적 구조를 갖고 있음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런 여성에게 섹시함을 느끼는 것은 그녀의 번식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지, 그녀가 본질적으로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남성이 자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20대 초반 여성을 선호하는 것도 그때가 여성의 번식적 가치가 매우 높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는 어떻게 시작됐나: 결혼의 진화

 

사랑에 빠진 인간과 짝짓기에 성공한 다른 동물들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인간만이 결혼 제도를 발명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대부분 지역에서 결혼 제도는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보통 남녀에게는 안심 보험이지만 '능력 남녀'에게는 걸림돌이다. 능력남이 여성 한 명을 통해서만 자신의 번식을 책임지게 하는 것, 극도의 매력적 여성이 한 남성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그들의 번식 성공도를 오히려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일처제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증거들도 있다. 고환의 상대적 무게(전체 몸무게에서 고환 무게가 차지하는 비중)1회 사정에서 얼마나 많은 정자를 내보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다. 인류의 고환 비중은 일부다처(一夫多妻)를 이루는 침팬지와, 일부일처를 지키는 고릴라나 긴팔원숭이 사이에 있다. , 고환의 무게로 보자면 우리는 느슨한 형태의 일부일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화인류학자들은 서구 문화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기 전에 인류의 83%가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살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일부일처제를 규범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제도나 정책적 이유만이 아니라 과학적 측면에서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인간이 다른 영장류와 구별되는 것 중 하나는 매우 미숙한 채로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나와 부모에게 더 오랫동안 양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우리 종()이 왜 이런 생존 전략을 진화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인류의 직립보행과 관련 있다.

 

어느 날 나무에서 내려온 우리 조상은 초원을 걷게 되었고 그에 따라 출산과 관련된 여성의 해부학적 구조가 달라졌다.

 

그 변화로 산도(産道·태아가 나오는 길)가 좁아져 더 이상 태아를 자궁 속에서 오랫동안 키울 수 없게 됐다. 머리가 큰 아이는 산도를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미숙한 상태로 아기를 낳은 후 양육 기간을 오래 가지는 방식으로 생활사를 변화시켰다.

 

실제로 인간은 갓난아기 뇌가 어른 뇌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미숙하며, 영아기(0~2), 유아기(3~5), 아동기(6~12), 청소년기(13~19)를 지나야 비로소 성적으로 성숙한다. 반면 침팬지 새끼는 출생 후 여섯 달 이후부터 나무 타는 법을 배우고, 5세부터는 청소년기에 들어서 늦어도 7세에는 성적으로 성숙해진다.

 

이런 생활사의 진화로 인간은 엄마의 자궁 속보다는 비록 위험하고 험난하긴 하지만 훨씬 더 흥미로운 자극들로 가득 찬 바깥 세계를 더 빨리 만난다. 그래서 우리 뇌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채워 나간다. 이것이 바로 우리만의 탁월한 생존 전략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독특한 가족 구조가 있어야만 했다. 그것은 아빠의 필요성이다. 자원이 희귀했던 시기에는 엄마 혼자서 미숙하게 태어나는 아이를 도저히 키울 수 없었다. 남성 입장에서도 자식이 죽어나가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퍼뜨리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에 손해가 된다.

 

아빠를 집 밖으로 돌지 못하게 했던 또 다른 진화적 이유도 있었다. 오직 인간의 여성만이 배란기를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암컷들은 배란기가 되면 성기가 분홍색을 띠며 부풀어 오르고 특유한 냄새를 풍긴다. , 번식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투명한 신호다. 반면 여성은 자신도 모를 정도로 배란기가 은폐되어 있다. 그러니 남성은 침팬지 수컷처럼 배란기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암컷들을 순회하며 짝짓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떤 여성과 운 좋게 성관계를 했어도 그녀가 배란기가 아니었다면 진화적으로는 헛수고를 한 꼴이다. 여성의 배란 은폐는 남성을 집 안에 주저앉혀 한 여성과 배타적 성관계를 맺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가족은 왜 서로 갈등하는가: 양육의 이면

 

인간의 결혼 제도가 모두 자손 양육 때문에 진화했다는 주장이 고리타분해 보일 수 있다. 기술의 발전과 정치·경제 체제 변화, 그리고 급속한 문화적 변동으로 가족의 형태도 변했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들이 존재한다.

 

이스라엘은 1920년대부터 집단 농장인 키부츠에서 공동 양육을 실시했다. 아이들은 유아 때부터 부모가 아니라 보모가 키웠다. 이제 양육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탁아 시설에 아이를 맡긴 키부츠의 부모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헌신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자식들은 자기의 유전자 절반을 갖고 있다. 그들을 돌보지 않으면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할 길이 없어진다. 혈연 중심의 가족 구조는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혈연 중심의 양육이 무조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양육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자식 간에도 일종의 경쟁이 벌이진다. '산모와 태아'관계도 어두운 면이 있다. 임신 초기에 수정란 중 최대 78%는 착상에 실패하거나 자연 유산된다. 대부분 태아의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다. 산모 입장에서는 태어나도 일찍 죽을 아기에 대한 투자를 미리 막는 것이다. 조기에 손실을 최소화해 장래의 아기에게 돌아갈 자원을 보존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 태아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든 유산을 막고 살아남으려 한다. 이를 위해 태아는 자궁 안에서 '인간 융모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HCG·Human Chorionic Gonadotropin)'을 방출한다.

 

HCG는 여성의 생리를 막아 유산을 방지한다. 또 자궁 내벽을 두껍게 해 스스로를 보호한다.

 

자식과 부모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유기(離乳期)에 엄마는 일찍 젖을 떼려 한다. 그래야 다시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임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는 좀 더 오래 버팀으로써 어머니로부터 자기가 받을 자원을 감소시킬 미래의 형제자매가 태어나는 것을 방해하려 한다.

 

할머니는 왜 손자·손녀를 돌보는가

 

양육에 관해 변하지 않는 훈훈한 이야기도 있다. 그것은 놀랍게도 여성의 폐경(閉經)과 관련돼 있다. 여성의 생식력은 대략 40~50세 정도에 사라진다. 사실 폐경은 포유류에게서 매우 드문 현상이다. 여성과 범고래 암컷, 들쇠고래 암컷만이 사망 전 상당 기간을 폐경 상태로 보내는 종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죽을 때까지 번식 능력을 보유하는데, 왜 인간은 이런 폐경이 진화하게 되었을까.

 

폐경기가 지난 중년 여성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관점이 필요하다. 폐경을 통해 여성 자신은 직접적 번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번식 성공도를 높일 수 있다. 그것은 손주 돌보기다. 나이 든 여성이 직접 아기를 낳으면 위험할 수 있다. 그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식의 자녀, 즉 손주를 돌봐 자신의 유전자가 계속 이어지는 편이 낫다고 볼 수 있다. 손주를 끔찍이 돌보는 할머니는 진화적으로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인류학적 증거도 많다. 2004년 영국 연구진은 18~19세기 캐나다와 핀란드에서 살았던 여성 2800명의 가족사를 조사해 폐경기가 지난 할머니가 자손의 번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할머니가 오래 산 가족은 아들딸이 더 빨리 결혼을 했으며 그들이 낳은 자식들, 즉 손자의 터울도 짧았다.

 

그리고 이들이 탈 없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비율도 높았다. 번식 대신 양육을 택한 할머니가 가족 공동체를 번성시켰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자손의 번창에 할아버지가 크게 기여한다는 '할아버지 가설'도 가능할까. 영국 셰필드대 연구진은 교회에 보관된 18~19세기 핀란드인 25000명의 기록을 분석했다. 당시 핀란드 사회는 일부일처제이지만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재혼이 가능했다. 예상대로 재혼한 남성은 한 번만 결혼한 남성보다 아이가 많았다. 하지만 손자는 한 번만 결혼한 남성에 비해 결코 많지 않았다. 연구진은 남성에게서 오히려 '신데렐라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남성이 재혼하면 전처(前妻) 소생에 대한 보살핌이 형편없어진다. 결국 이 아이들이 자라 다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낮아진 것이다. 그래서 자식은 늘어도 손자는 늘지 않았다. 할아버지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가족은 왜 이별하는가: 탄생과 소멸

 

가족은 구성원의 죽음으로 소멸한다. 다음 세대로 가족이 이전하지만 현재의 가족은 사라진다. 진화적으로 죽음은 왜 생겨난 것일까. 흥미롭게도 죽음은 가족을 탄생시킨 유성생식 때문이다. 무성생식은 마치 장난감 공장에서 똑같은 로봇을 계속 찍어내는 것과 같다. 모든 로봇을 폐기하지 않는 이상 그 로봇은 죽음을 맞이할 수가 없다. 반면 성의 출현 이후에는 조상과 자손 간의 유전자 세트가 달라지다 보니 둘 간의 경계가 뚜렷해졌다. 이 경우 자신의 유전자를 상당 부분 가진 자손이 잘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계속 이어가게 하는 방법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죽음을 맞아야 자원이 후손에게 갈 수 있다. 결국 가족의 시작과 끝은 모두 성의 출현과 관련이 있는 셈이다.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