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⑫ 젊은층 외면하는 세금 정책 - 서른, 세금 공제 잔치는 없다
까다로운 조건에 실익 별로 없는 연금저축·소장펀드 ... 자녀세액공제는 2013년 수준
한국이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 사회가 목전입니다. 노인을 위한 사회적 준비와 배려도 점점 개선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미래 세대를 키우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현실은 좀 다릅니다. 요즘 20~30대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높은 벽을 넘으면 취업이라는 일생일대의 장애물이 놓여 있습니다. 꿈 같은 취업을 하고, 서른이 돼도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쥐꼬리 만한 월급에 집 한 채 마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멀리 내다보며 살기에는 결혼·육아·승진 등 어깨의 짐이 너무 버겁습니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이들의 작은 목소리를 지면에 옮깁니다.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공간이 아닌 아버지 세대와 소통하는 공간으로 이해되길 바랍니다.
◀정부가 4월 8일 연말정산 보완대책을 발표했지만 20~30대가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크지 않다.
어린 시절 국민에겐 ‘4대 의무’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헌법에 나오는 순서대로 하면 교육·근로·납세·국방의 의무(환경보전의 의무, 공공복리에 적합한 재산권 행사 등을 포함해 ‘6대 의무’로 부르기도 함)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듯, 국민도 국가의 존속을 위해 최소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교육의 의무는 자녀가 없으면, 국방의 의무는 남자가 아니면 지지 않습니다(병역법 제3조). 모든 국민이 대상인 의무는 근로와 납세 이 두 가지인데 굳이 따지자면 성격이 좀 다릅니다. ‘근로’는 의무인 동시에 권리입니다. ‘죽어도 일하기 싫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노동과 땀은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입니다.
연금저축 10년 유지율 50%인데 20~30년 버티라니
이와 달리 납세는 전적으로 의무입니다. 대상이 아닌데 낼 수 없습니다. 기부는 될지언정 납세는 아닙니다. 더 내고 싶어도 안 됩니다. 딱 법이 정한 만큼만 냅니다. 심지어 더 내면 돌려줍니다. 이게 연말정산입니다. 많은 직장인이 연말정산을 ‘13월의 보너스’로 생각해왔고, 이 때문에 지난 연말정산 과정에서 속 끓인 직장인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러나 연말정산은 납세자가 원래 내야 할 세금보다 더 많이 냈으면 그 차액을 돌려주고, 적게 냈으면 세금을 추가로 받는 제도입니다. 정부가 오락가락하며 혼란을 준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마냥 돌려주는 건 아니라는 뜻이지요. 지난 연말정산 논란은 객관적인 검증 없이 너무 부풀려진 면도 없지 않습니다.
물론 국민은 세금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게 번 돈이니까요. 모아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싶지요. 되도록이면 세금을 안 내거나 덜 내고 싶을 겁니다. 그러니 1년간의 세금을 정리하는 연말정산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기왕이면 공제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서 환급액을 늘리고 싶은 게 모두의 바람이겠죠. 20~30대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초저금리 탓에 자산 증식의 길이 사실상 막힌 요즘 젊은층에겐 절세만큼 좋은 재테크가 없거든요. 그런데 최근 정부가 내놓은 여러 정책을 살펴보면 서운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최근 투자 업계에선 연금저축이 화제입니다. 정부가 연소득 55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의 연최근 투자 업계에선 연금저축이 화제입니다. 정부가 연소득 55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의 연금저축 세액공제율을 13.2%에서 16.5%(지방세 포함)로 올리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연금저축은 대표적인 사적연금입니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과 쌍벽을 이루는 건데, 은행으로 가면 연금저축신탁, 보험사에선 연금저축보험, 증권사에선 연금저축펀드가 됩니다. 2013년 연금저축계좌가 새로 도입됐는데 연 1800만원 한도 내에서 여러 상품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게 돼 매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연금저축에 가입하면 연 4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해줍니다. 연말에 최대 66만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죠. 은행 예금 금리가 1%로 떨어진 마당에 이 정도면 엄청난 수익률입니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400만원에다 퇴직연금 300만원까지 추가로 공제를 해줍니다. 총 700만원이니 최대 115만5000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만 55세 이후에 연금 형태로 받으면 일반과세(15.4%) 대신 나중에 연금소득세(3.3~5.5%)만 내면 됩니다. 세금 납부를 뒤로 미루는 것이니 그동안 원금과 수익을 계속 재투자하는 득을 봅니다. 해외에 투자할 경우 더 매력적인데 매매차익에 과세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펀드는 매매차익과 배당금 등에 모두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과세 이연 효과가 더 커지는 거죠.
이렇게 좋은데 뭐가 문제냐 하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20~30대 입장에선 선뜻 신청서에 손이 안 갑니다. 연금저축은 5년 이상 납입하고, 만 55세까지 유지한 뒤 10년 이상 연금으로 수령해야 제대로 된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연소득이 5000만원인 31살 A씨가 1년에 400만원씩 5년을 납입했다 치죠. 총 적립금은 2000만원이고, 5년 동안 연말정산을 통해 330만원(연 66만원)을 환급 받을 겁니다. 문제는 이걸 55세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급한 일이 생겨 55세 이전에 해지하거나 55세가 됐을 때 일시금으로 받으면 연금소득세 대신 기타소득세(16.5%)를 부과합니다. 330만원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한다는 뜻이죠. 이는 이자수익을 감안하지 않은 계산입니다. 연 2% 정도의 수익을 내 약 700만원가량의 이자가 붙었다고 가정하죠. 그러면 445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연말정산 혜택으로 받은 것보다 더 많이 토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야심 차게 내놓은 소장펀드, 줄줄이 마이너스 수익률
연금저축은 금융회사별로 워낙 상품도 많고 다양해서 단순 비교가 어렵긴 합니다만 우리나라 연금저축 가입자의 5년 유지율은 대략 60~70% 수준입니다. 10년 유지율은 50%대로 떨어지는데 절반 정도가 10년을 못 버티고 해지한다는 겁니다. 20~30대에게 ‘5년 납입’ 조건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으나, 만 55세까지 버티라는 건 엄청난 부담입니다. 물론 연 400만원이 큰 부담은 아니고, 연금 받을 때까지 묻어둔 채 잊고 살겠다면 하루라도 빨리 연금저축에 가입하는 게 맞습니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는 40대 역시 무조건 가입하는 게 이득입니다.
그러나 종잣돈을 마련할 요량이라면 연금저축은 아닙니다. 그 사이 자녀를 키워야 할 것이고, 전세금도 올려줘야 합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집도 사고, 예상치 못하게 큰 돈 나갈 일도 있을 겁니다. 이게 우리나라 30~40대의 평균적 삶입니다. 이 시기에 수익률이 어느 정도일지도 알 수 없는 연금저축에 수천만원을 묶어두는 게 과연 합리적인 걸까요? 한번이라도 삐끗하면 공제받은 세금을 전부 되돌려주고, 심지어 더 내야 하는데 과연 이게 ‘당근’인지 ‘채찍’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금저축과 쌍벽을 이루는 소득공제장기펀드(소장펀드)라는 게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과 서민층(연소득 5000만원 이하)의 자산형성을 돕겠다는 목적으로 도입한 건데, 최소 5년 간 납입하는 조건입니다. 연금저축보다는 공제율이 낮습니다. 세액공제 방식인 연금저축과 달리 소장펀드는 소득공제 방식인데 연 한도(600만원)를 다 채웠다면 이 중 40%(240만원)만 공제해 줍니다. 세율이 16.5%(과세표준이 연소득 1200만원 초과~4600만원 미만인 사람)라면 최대 39만6000원을 돌려받겠네요. 같은 기준에서 연금저축과 비교하면 연 26만원가량 적습니다.
그러나 5년 후에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고, 55세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도 없으니 20~30대에게 연금저축보다 이게 더 매력적입니다. 세금 환급만으로도 연 6.6%의 수익을 거두는 것과 같은 효과니까요. 그런데 이건 또 수익률이 걱정입니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 3월 27개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200개 소장펀드(펀드 클래스 전체)의 6개월 수익률을 조사해 발표했는데 절반이 넘는 110개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운용사별로 편차도 심해서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펀드가 하나도 없는 곳이 있는 반면, 내놓은 펀드 전부 마이너스 수익률을 낸 곳도 있습니다. 연말정산 때 아무리 혜택을 봐도 원금을 까먹으면 아무 소용없죠.
당연히 인기가 없습니다. 지난해 3월 도입됐으니 딱 1년이 됐지만 총 유입 자금이 2500억원 밖에 안 됩니다. 당초 정부는 2조~3조원 수준의 자금 유입을 기대했습니다. 가입자가 적으니 설정액이 100억원에도 못 미치는 펀드가 전체의 90%에 육박하고, 10억이 안 되는 초소형펀드도 절반이 넘습니다. 설정액 규모가 작다는 건 운용보수가 적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운용인력도 적을 거고, 펀드매니저가 신경을 많이 쓰기도 어려운 구조인 거죠. 애초에 정부가 가입 조건을 연소득 5000만원 이하로 제한하면서 자초한 겁니다.
‘둘째’도 안 낳는데 자꾸 ‘셋째’만 강조하는 정부
소득이 4000만원인 근로자가 소장펀드를 통해 39만6000원을 돌려받으려면 소득의 15%(600만원)나 넣어야 합니다. 세후 소득을 감안하면 20% 이상입니다. 기존에 예·적금이 없다면 몰라도 당장 소득의 20%를 여기에 몰아 넣긴 쉽지 않습니다. 소장펀드가 정말 사회 초년생과 서민층에 도움이 되려면 판을 좀 더 키워서 펀드의 운용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가입조건을 연 소득 8000만~1억원 수준으로 완화하고, 올해 말인 일몰기한도 연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아직 정부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사회 초년생과 서민층의 자산형성을 돕는다는 원래 취지가 훼손될 것이라 지적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묻고 싶네요. 지금은 큰 도움이 됩니까?
연금저축이나 소장펀드나 현 시스템이라면 20~30대에게 딱히 매력적이지 않다는 얘깁니다. 정부가 4월 초 연말정산 보완 대책이라며 내놓은 다른 정책도 비슷합니다. 겉으론 소득이 적은 젊은층을 위하는 것처럼 생색을 냈지만 뜯어보면 실속이 별로 없습니다. 다자녀 추가 공제는 기존 ‘첫째·둘째 각각 15만원, 셋째부터 1명당 20만원 세액공제’에서 ‘셋째부터 1명당 30만원’으로 10만원 인상했습니다. 그런데 또 ‘셋째’입니다.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이 6건(2014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권에 속하는 한국이 출산율만 유독 낮은 이유는 단순히 결혼을 안 해서, 아이를 낳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둘째를 안 낳기 때문입니다. 하나 낳아 키워보니 둘째를 가질 엄두가 안 나는 겁니다. 이런 환경인데 자꾸 셋째를 낳으라고 합니다. 정부 저출산 대책의 핵심은 다자녀 가정 지원입니다. 무주택 세대 민영주택 특별공급, 주택 구입 또는 전세자금 대출 지원, 자동차 취·등록세 및 전기요금 감면(감액), 대학등록금 지원 등 종류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셋째’가 대상입니다. 이러니 정책은 많은데 효과를 못 보는 거지요(관련 기사 1262호 ‘⑥대한민국에서 둘째를 낳는다는 것’).
보완대책에서 정부는 자녀세액공제와 별도로 6세 이하 자녀가 2명 이상이면 둘째부터는 1명당 15만원의 세금을 빼주고, 자녀를 낳거나 입양하면 그 해에 1명당 30만 원을 세액공제해주는 방안도 신설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사실 신설이 아닙니다. 계산법이 좀 달랐을 뿐 지난해까지 멀쩡히 있던걸 정부가 자녀세액공제로 통합했다가 다시 부활시킨 겁니다. 2013년 연말정산 때까지 정부는 ‘6세 이하 자녀 1명당 100만원, 출산·입양 시 200만원’을 소득에서 공제해줬습니다.
정부가 그렇게 좋아하는 ‘셋째’를 기준으로 계산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2살·4살 자녀가 있는 부부(세율 15%로 가정)가 셋째를 낳았다고 치죠. 2013년 이 부부는 다자녀 추가공제로 300만원(둘째 100만원, 셋째 200만원), 6세 이하 자녀 공제로 300만원(100만원×3명), 출산공제로 200만원, 총 80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연말정산으로 120만원(800만원×0.15)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런데 2014년엔 50만원(첫째 15만원+둘째 15만원+셋째 20만원) 세액공제로 대폭 줄었습니다. 당연히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죠. 그러자 슬며시 제도를 돌려놓은 겁니다. 보완 대책에 따라 이들 부부는 다시 자녀세액공제로 60만원(15만원×2명+30만원×1명), 6세 이하 자녀 추가공제로 30만원(15만원×2명), 출산공제로 30만원, 총 12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원래 받던 돈을 항의해서 겨우 받게 된 건데 기뻐하라는 소린가요?
안심전환대출 인기에 괜히 서운한 이 마음은?
공제 항목이 거의 없는 싱글족을 위한 표준세액공제도 화끈하게(?) 확대했답니다. 딱 1만원 올렸네요. 비단 연말정산만이 아닙니다. 정부가 1년에 4~5번씩 내놓는 부동산 정책에 포함된 각종 세제 혜택에서도 20~30대는 그리 재미를 못 봅니다. 그런 혜택들은 주로 기존에 있던 자산을 움직이거나 불릴 때 붙이는 세금을 깎아주는 겁니다. 이렇다 할 금융자산도, 변변한 부동산도 없는 젊은층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경우가 많죠. 근로소득세에 비해 자산소득세가 낮은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젊은층보단 노년층에 유리한 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금은 아닙니다만 이 참에 얼마 전 대란 수준이었던 안심전환대출도 곱씹어볼 만합니다. 안심전환대출은 변동금리 대출이나 이자만 상환 중인 대출을 가진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자에게 최저 2.6%의 고정금리, 원리금 분할상환방식 대출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겁니다. 이자를 수천만원까지 아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열흘도 안돼 약 35만명이 신청했습니다. 실적은 총 34조원에 달했습니다. 오랜만에 은행 창구가 가득 찰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 현장에 20~30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주택담보대출이 있다는 건 집이 있다는 뜻이고, 안심대출로 전환할 수 있다는 건 원금을 갚아나갈 여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집이 없거나, 있어도 당장 돈 갚을 처지가 안 되면 아예 대상이 아닙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도 떠들기에 많이 알아보긴 했습니다만 내년 4월 아파트 전세금 올려줄 걱정(이미 4000만원이 올랐습니다)을 하고 있는 제겐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집 가진 사람만 대출받는 것도 아닌데 2탄으로 ‘전세자금 안심전환대출’은 어떨까요? ‘세금’에 관한 생각을 좀 더 이어갈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다음 번에는 ‘당신이 떠안은 복지비용’을 주제로 지혜를 모아보겠습니다.
이코노미스트 1283호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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