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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순환

풍월 사선암 2015. 3. 31. 00:30

혈액순환

 

피의 일생은 사람의 일생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은 피와 더불어 산다. 피가 흐르는 것을 멈추는 날이 사람의 목숨이 다하는 날이다. 피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붉은피톨은 120일 동안 유효하고, 사람의 수명도 120살이 한계다. 피는 우리 몸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데 약24초가 걸린다고 한다. 사람도 하루를 살고, 새 하루를 준비하는데 24시간을 쓰고 있다.

 

사람이 하루를 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피 덕분이다. 피가 잠시만 한눈을 팔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진다. 도대체 우리가 눈을 한번 깜박이고, 다시 깜박일 때까지의 짧은 순간 동안, 피는 무슨 재주로 우리 몸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일까. 여러분은 지금, 우리의 혈관 망을 초고속으로 달리고 있는 저 혈액순환의 요요한 소리가 들리는가. 혈액순환이 심장의 박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심장이 멎으면 죽으므로.

 

그런데, 폴란드의 만트이펠이라는 대학교수가 어느 날 이런 실험을 해봤다고 한다. 달걀에서 부화한 3-4일된 병아리를 특수한 온도조절기에 넣어 여러 가지 온도 적 환경을 만들어줘 본 결과, 병아리는 20-25도에서 혈액순환을 멈추었고, 다시 온도를 높이니까 혈액순환이 시작되는데, 말초혈관부터 피가 돌기 시작하고, 심장은 맨 나중에 움직이더라는 것이다. 심장이 피를 순환시킨다는 이야기가 뒤집어진 것이다.

 

우리 몸의 최전방에는 직경 0.013-0.0055밀리미터가 되는 모세혈관이 50억여 개가 분포되어있다. 물보다 4-5배나 점착력이 강한 피가 이곳을 통과하려면, 일렬로 늘어서서 억지로 비집고 나가느라 붉은피톨의 형태가 찌그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피가 이 모세혈관을 통과하는 1~2초 동안에 우리의 온갖 삶의 거래, 즉 신진대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드라마틱한 작용을 가능하게 하려면 적어도 18만 파운드의 압력이 필요하다는 과학자의 계산이 있다. 그런데 겨우 주먹만 한 크기의 심장, 그나마도 4분의 1밖에 안 되는 좌심실의 수축하는 힘만으로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심장의 힘은 1파운드를 채 내지 못한다고 과학자들은 계산하고 있다. 현대과학은 이 불가사의한 문제, 생명의 힘이라는 원초적인 숙제를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다.

 

안에서 밖으로

 

한의학에서는 피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기는 어떻게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역시 명쾌하지 못하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피는 중이라는 물에 음과 양이 섞여 있는 물질이다. 물질을 쪼개 나가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이 바로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인데, 이 원자를 들여다보면 가운데 중성자와 양자가 들어 있고 주변을 음전자가 돌고 있다.

 

사람 몸도 이것의 확대 부연한 것에 다름 아니다. 사람 몸의 중심에 있는 심장에는 중과 양이 있고, 살갗 쪽은 음이라고 본다. 심장에서 덥혀진 피는 양이다. 양은 음 쪽을 향하여 자석처럼 끌려가게 되어 있다. 피가 말초조직을 향하여 물리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피부는 음이므로 양인 외계의 공기, 햇빛 등과 이웃하게 된다. 만약 피부를 양이라고 하면 피부는 외계의 양과 상극하여, 살갗이기를 거부하고 속살 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것임에 틀림없다. 양의 피는 전광석화처럼 음인 말초조직으로 가고 싶으나, 물이라는 한계에 실려, 도달하는데 12초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말단조직에 이른 동맥피는 양 기운을 다 퍼주고, {}에 음 기운을 싣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한시도 음의 영역인 모세혈관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이들은 재빨리 정맥 혈관으로 들어가, 음 기운을 끌어당기는 양(심장)을 향해 달려간다. 12초 동안의 귀환이다. 심장은 대순환의 주인공 펌프가 아니다. 다만 혈액순환을 조절하는 탱크, 또는 보조 펌프일 뿐이다. 자동차로 치면 점화장치라고나 할까. 심장이 혈액순환을 주도한다고 하면 역학(力學)적으로 무리다. 계산(數理)은 때로는 정확하지 않다. 혈액순환은 물리(物理)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폐와 간을 거쳐야

 

집에 돌아오면 샤워하고 밥을 먹는 게 순서다. 우심실에 들어온 더러운 정맥피는 곧 폐로 보내져서 신선한 산소로 샤워를 하고, 위장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게 된다. 피가 영양분을 고루 갖추게 곳간을 정리하는 일은 비장(脾臟, Spleen)몫이다. 우리가 먹은 음식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입된 물건은 세관을 거치고, 필요할 때는 검역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처럼, 소화흡수 된 영양분은 일단 비장에서 모아져 문맥을 거쳐 간장에 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은 심장의 펌프보다는 간()의 역할이 크다. 간이 스펀지처럼 수축하여 피를 한껏 빨아들일 때, 문맥을 통해 피가 올라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음식의 간을 본다.’고 하는데, 간이 하는 일이 바로 그렇다. 간은 각종 영양소들의 간을 보아 독성이 있는 것은 약하게 하고, 입맛에 맞고 몸에도 좋게 갈무리하여 식당에 내놓는 주방장이라고 할까. 이 주방장을 거쳐야 음식이 나오듯, 간은 피를 최종적으로 점검하여 심장으로 보내고, 비로소 혈액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