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천의 명인들 건강장수비결⑤:영조대왕(下)
50대 이후 '3대 보약' 먹고 83세까지 장수
66세때 14세 새 중전 맞은 뒤 후궁들과 결별
3일에 1번씩 의원의 정기검진 받기도
조선시대 영조대왕은 83세까지 장수, 고구려 장수왕에 이어 역대 왕 중에서 2번째로 오래 살았다. 그의 7대 장수비결 중 전편에 살펴본 4가지는 ①타고난 신장의 강한 정기 ②음식 양생법의 충실한 실천 ③술 절제 ④철저한 건강관리였다. 이번회에서는 나머지 3가지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다섯째, 한약을 자주 복용하다
영조는 특히 인삼을 오래 드셨는데, 영조 스스로 자신의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인삼의 정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72세 때 1년간 20여근을 비롯하여 59세부터 73세까지 먹은 인삼이 100근을 넘었을 정도로 자주 복용했는데. 물론 이 인삼은 요즘의 산삼이죠. 그런데 인삼, 홍삼은 약효가 워낙 뛰어나지만 체질에 맞지 않으면 해가 됩니다. 또한 사람은 기와 혈, 그리고 음과 양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정상인데, 인삼 한 가지만 복용하면 기와 양만 강해지기 때문에 병증을 일으킬 수 있지요. 그래서 인삼에 다른 약재를 배합하여 복용하는 것이 좋은데, 영조는 인삼에 귤껍질을 넣은 ‘삼귤차(蔘橘茶)’, 인삼에 복령(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균체 덩어리)이라는 한약재를 넣은 ‘삼령차(蔘?茶)’를 즐겨 마셨습니다.
그리고 인삼이 들어간 한약을 주로 드셨습니다. 내의원에서 영조에게 자주 올린 처방이 ‘건공탕(建功湯)’인데, 원래 이름이 ‘이중탕(理中湯)’입니다. 영조대왕이 65세 때 이중탕을 자주 복용하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자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다는 의미로 ‘이중건공탕(理中建功湯)’이란 이름을 하사한 것이죠. 줄여서 건공탕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조는 자신이 80세 넘도록 살 수 있었던 것은 ‘건공탕’ 덕분이라고 얘기했을 정도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건공탕을 복용했습니다. 인삼을 비롯하여 백출, 건강, 감초로 구성된 처방이죠.
여섯째, 늙어서도 성생활을 유지하다
영조는 64세에 왕비를 사별하고 삼년상이 끝나자 66세에 만 14세된 소녀와 재혼을 하였는데, 이 결혼도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당시에는 40세만 넘어도 중노인 취급을 받는 때였는데, 70세가 다 되어가는 분이 어린 소녀와 결혼했던 겁니다. 물론 나라의 왕비 자리를 비워둘 수 없기 때문이었지만, 영조대왕에게는 후궁도 여러 명 있었고 그녀들을 충분히 장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새 중전이 궁궐에 들어온 뒤로는 후궁들의 처소에 발길을 딱 끊고 손녀 나이뻘 되는 어린 중전에 빠져버렸다고 합니다. 영조대왕은 워낙 건강하였기에 이 결혼이 아니었어도 오래 살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건 이후로 17년이나 더 살아서 83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만 14세 때 영조와 결혼하여 왕비로 책봉됐던 정순왕후./사진=영화 '역린' 캡처
그러므로 영조대왕이 노년기에도 성생활을 꾸준히 한 것은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활발한 성생활을 통해 스트레스 완화, 면역 기능 증강, 통증 완화, 체중 감소, 질병(고혈압, 중풍, 심장병, 골다공증, 전립선질환, 우울증, 요실금, 갱년기장애 등) 예방 및 노화 방지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져 있지요. 물론 성생활도 무시로 자주 하는 것은 해로운데, 영조께서는 평소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했던 것을 미루어 보면 성생활에도 분명 절제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절제하지 않았다면 양귀비 같은 후궁이 있어 나라도 어지러웠고, 장수하지도 못했겠죠.
일곱째, 의원의 정기진찰을 자주 받다
조선의 왕들은 정기적으로 진찰을 받게 되어 있으니 왕의 비서실에 해당되는 승정원의 업무지침서인 ‘은대조례’에 공식 규정이 있습니다. ‘문안진후(問安診候)’라고 하는데. 닷새마다 한 번씩 승지가 내의원의 의원과 함께 왕의 처소를 찾아뵙고 문안드리는 자리에서 왕의 건강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했습니다. 한의학의 종합진찰인 ‘망문문절(望聞問切)’의 사진(四診)을 모두 했던 것이죠. 망진(望診)은 눈으로 보는 진찰로서 얼굴을 비롯하여 눈, 코, 귀, 손톱, 혀도 포함되지요. 문진(聞診)은 말소리, 숨소리, 기침 소리 등을 듣고 환자 특유의 냄새를 맡습니다. 이것은 병자나 보호자로부터 질병과 관계있는 사항을 아주 자세히 묻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진찰이죠. 절진(切診)은 3가지로 나눠지는데요. 맥을 짚어보는 맥진(脈診), 피부와 통증부위 등을 직접 만져보는 촉진(觸診), 두드려보는 ‘타진(打診)’입니다. 물론 어의는 이미 왕이 드신 음식과 대소변 상태는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정기 진찰이 닷새에 한 번이면 한 달에 여섯 번이죠. 그런데 이것이 귀찮다고 자주 빼먹고 가끔씩 진찰받았던 왕들은 30대, 혹은 40대의 나이에 돌아가신 반면에, 기본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월 평균 11.7회나 진찰을 받았던 영조는 장수했습니다. 건강관리에 너무 지나치게 조심하고 염려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영조의 일생을 보면 부모로부터 건강한 체질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고 노화를 억제시키는 비결을 실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식하고 술을 절제하며 운동이 될 만큼 활동하면서 건강관리에 힘썼던 것이죠. 게다가 늘 주치의들의 진찰을 받고 조언을 들으면서 좋은 한약도 계속 드셨기에 당시로서는 탁월하게 장수할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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