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나라의 主人은 누구인가

풍월 사선암 2014. 11. 5. 09:23

나라의 主人은 누구인가

박찬구 / 서울대 교수·윤리학

 

 

필자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 가끔 학생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야외수업을 하시던 교수님이 계셨다. 학교가 산기슭에 자리한 덕에 조금만 걸어도 산속 깊이 들어간 듯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던 말씀. “이 산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 줄 아는가? 토지대장상의 소유주가 아니다. 지금 우리처럼 이 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림으로써 산을 사랑하게 된 자, 그가 이 산의 진정한 주인이다.”

 

대학을 다니는 딸아이에게서 최근에 들은 이야기다. ‘통일교육관련 강의에서 남북한이 통일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보라는 교수의 말에 손을 든 사람은 20명 가까운 수강생 중 자기와 또 다른 학생 2명뿐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배우며 학교를 다녔던 필자에게 이 이야기는 꽤 충격적으로 들렸다. 다음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다. 원어민 교수가 진행하는 영어강의 시간에 한 번은 교수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는데, 실제로 손을 든 사람은 자기 혼자뿐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몰라 필자는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국가 대표 핸드볼 선수로 뛰던 한 엄마는 자녀와 관련해 어떤 억울한 일을 겪은 뒤 이런 나라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이민을 가버린 적이 있었다. OECD 회원국 중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의 정신이 꼴찌인 나라(19일자 뉴스 참조)에 살고 있는 형편에서 타인으로부터 험한 일을 당한 사람이 조국에 환멸을 느끼고 떠난다고 해서 비난만 할 수도 없지 않나 싶다.

 

애국심의 예를 들자면 이스라엘의 경우가 가장 인상적이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 등 열강의 지원으로 나라가 망한 지 2000여 년 만에 팔레스타인에 재건국(再建國)했다. 2000년 동안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던 유대인은 도대체 어떻게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2000년의 세월이 흘렀다면 그간 온갖 타민족 피가 섞였을 것이고, 국적을 증명할 서류도 남아 있을 리 만무하잖은가. 이런 점에서 1948년 건국과 더불어 이스라엘이 자국 국적을 부여할 수 있는 자격으로 제시한 첫째 어머니가 유대인인 자’, 둘째 스스로 유대인이라 생각하는 자는 시사하는 바 크다. 어릴 때 어머니의 무릎에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부심(自負心)을 갖고 자란 사람은 자연히 그 조상들의 역사를 자기의 역사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는 곧 유대인의 정체성으로 연결됐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못지않은 민족의 영웅들이 있다. 이순신-안중근-윤봉길 등이 대표적 예다. 특히, 1932년 일제 관동군의 수뇌부를 처단한 윤봉길의 의거는 나라를 다시 찾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의거에 크게 감동한 당시 중국 총통 장제스가 카이로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고, 이를 뜨악해하던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끝까지 설득함으로써 전후(戰後) 조선의 독립을 약속받았던 것이다. 사실 이 의거 직전에 일본은 열강으로부터 한반도 지역을 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와 더불어 일본의 고유 영토로 승인받았고, 그래서 일본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전후에 조선이 독립하리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아직도 나라를 잃고 헤매는 중동의 쿠르드 족과 우리의 차이는 윤봉길과 같은 인물을 길러냈느냐, 못 길러냈느냐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대인들도 때로는 자신들의 수난의 역사가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의 뿌리요 운명임을 받아들였을 때 더욱 뜨거운 나라 사랑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도 때로는 굴곡진 우리의 역사가 싫고 각박한 오늘날의 삶이 싫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역사요,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애정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나라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것은 험한 일을 겪으면서도 이 나라에 남아 그 굴곡진 역사조차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라의 앞날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만일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이러한 애국심과 주인의식을 가진 젊은이들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언제 쿠르드 족과 같은 처지로 전락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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