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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들의 유행어 '내가 누군지 알아?'… 패가망신 지름길이죠

풍월 사선암 2014. 10. 7. 20:50

들의 유행어 '내가 누군지 알아?'패가망신 지름길이죠

 

'대리기사 폭행 논란' 김현 국회의원 사건으로 본'내가 누군지 알아?'의 심리학

라면 상무·신문지 회장

유도회장, 知人 출입 제한에 "여기선 내가 이다" 高聲

공항선 ·국회 연줄 내밀고 호텔선 "내가 계열사 임원이야"

"졸부가 비싼 명품 사는 심리"

단기간 명성·돈 얻은 자들이 일반인과 '구별짓기' 하는 것

다 갖춘 진정한 최상류층은 되레 신분·지위 숨기는 경향

, 누군지 알아?누구신데요?

요즘 젊은 경찰들엔 안통해 '잘 걸렸다' 여기고 더 조사

대리기사 항변 눈에 띄어 "국회의원이면 다입니까?"

 

지난 1일 오후 10시쯤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산책을 하던 안모(26)씨 앞에 주황색 택시 한 대가 급정차했다. 고급 양복을 입은 40대 남성이 문을 벌컥 열고 나오더니 택시기사를 향해 ", 이 개××, 당장 내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60대 택시 기사가 "몇 살인데 반말이냐. 부모도 없냐"고 하자 40대 남성은 "그래 없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그룹 부장이다"라며 고함을 쳤다.

 

지난 170시쯤 서울 여의도에 콜을 받고 도착한 대리기사 이모(52). 30분을 기다렸지만 손님들은 출발할 기미가 없었다. "다른 사람 부르시라"며 떠나려다가 손님들과 시비가 벌어졌고, 이씨는 이들로부터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폭행을 말리던 주변 행인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자 폭행을 하던 50대 남자들이 말했다. "신고했어? 내가 누군지 알아?"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과 술을 마시고 나온 세월호 가족대책위 간부들이었다. 이날 이후 한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내가 누' 세 글자를 쳐넣기 무섭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문장이 자동 완성된다.

 

'라면 상무' '신문지 회장' '빵 회장'. 지난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들의 별명이다. 사회적 지위가 좀 높거나 재산이 많다고 남을 깔보려는 천박한 특권 의식이 빚어낸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이다.

 

 

사회 지도층의 삐뚤어진 특권 의식

 

"내가 누군지 알아? 여기선 내가 왕()이다."

 

24일 오후 715분쯤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유도 경기장 VIP·선수 전용 출입구에서 70대 남성의 노성(怒聲)이 터졌다. 스스로를 ''이라고 칭한 사람은 남종현(70) 대한유도회 회장이었다. 출입증이 없는 동반인 출입 문제가 발단이었다. 그와 함께 온 지인 5명 중 3명은 출입증이 없었다. 안전요원이 제지하자 왕의 분노가 폭발했다. 왕의 지인들은 결국 임시출입증을 받아 경기장에 들어갔다. 남 회장은 숙취 해소 음료 '여명808'을 만드는 그래미 회장이다.

 

28일 저녁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결승전이 열린 문학야구장 귀빈석에 앉아 있던 노경수(65·새누리당) 인천시의회 의장은 갑작스레 몸을 일으켰다. 운전기사용 출입증을 갖고 입장하려던 아들(34)이 안전요원의 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심기 불편해진 의장의 입에서 나온 말. "내가 누군지 아나. 인천시의회 의장이다. 의장도 몰라보나."

 

전문가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거나, 유명인일수록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삐뚤어진 특권 의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비행기 기내식 라면이 덜 익었다고 승무원을 폭행한 W(54) 전 포스코에너지 상무, 비행기 이륙 1분 전에 공항에 도착해 '왜 탑승을 안 시켜주느냐'며 신문지로 직원을 때린 강태선(65) 블랙야크 회장, 호텔 주차장에서 "차를 옮겨달라"는 말에 "네가 뭔데 차를 빼라 마라야"며 지갑으로 호텔 지배인 뺨을 때린 강수태(66) 프라임베이커리 회장 등의 사례도 있다.

 

한 나라 권력 총출동하는 현장

 

'내가 누군지 알아'는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발언자로 등장한다. 백화점 명품관과 특급 호텔, 항공사 등에는 이들 회사를 ''로 다룰 수 있는 '' 소속 권력자들이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백화점에선 지방자치단체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단골로 등장한다고 한다. "내가 ○○○ 시장과~" "××구청장과는~" 운운하며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항의하는 손님이 많다는 것이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음식이나 식재료와 관련해서 항의할 때는 식약처를 내세우는 사람이 많다. A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위생 단속 등을 할 권한이 지자체나 식약처에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사 백화점이나 특급 호텔에선 해당 그룹 계열사 임원임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항공업계에선 청와대·국회·정부기관과의 관계를 과시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B항공사 관계자는 "특히 국토교통부 고위 공무원과의 연줄을 과시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항공사 관리·감독 업무를 국토부가 관장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좌석 업그레이드 때문에 불만을 제기하며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하는 고객이 가장 많다"고 했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공무원·사업가들은 좌석 업그레이드를 받은 경험이 1~2번쯤은 있기 마련인데 "지난번에는 해줬는데 왜 이번에는 안 해주느냐"고 따질 때가 많다고 한다.

 

경찰은 어떨까. 한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국회·정부는 기본이라고 보면 된다""대한민국의 모든 권력기관이 총출동한다"고 말했다. "내가 경찰 ○○위원회 ~" "나 안전행정부 ○○~"라며 구체적인 기관·성명을 대는 사람도 많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조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해보면 정말 고위 공무원, 대기업 임원이어서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패가망신을 부르는 주문(呪文)

 

'내가 누군지 알아?' 사례는 외국에서도 종종 화제가 된다. 할리우드 스타 배우 리즈 위더스푼은 지난해 4월 옆자리에서 음주 운전을 하던 남편이 경찰에 적발되자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난동을 부렸다. 그는 "당신이 누군지 알 필요 없다"는 경찰에게 "내가 누군지 당장 찾아보라"며 날뛰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주 몬티셀로시() 고든 젠킨스 시장은 음주 운전 혐의로 체포된 뒤 "내가 누군지 알아? 너희를 취직시켜준 사람이야"라며 행패를 부렸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내가 누군지 알아?'는 단기간 명성을 얻거나 지위를 확보한 사람들에게 세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신흥 졸부들이 화려한 사치품을 구매하는 심리와 같은 행동"이라며 "자신의 실제 가치는 높은데 명성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느낀 이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며 일반인과 구별짓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산·학력·지위·명성을 모두 갖춘 전통적인 상류층은 이런 물의를 일으키면 오히려 불리하다는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숨기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유범희 유범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내가 누군지 알아?'는 열등감의 그림자"라며 "그 성향이 심하면 '마음의 병'으로 다뤄야 한다"고 했다. 유 원장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보통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자신이 기대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면 과거 보잘것없었던 시절의 자신을 무시·멸시하던 타인을 떠올리고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가 누군지 알아?'는 과거에 통했을지 몰라도 요즘엔 패가망신을 부르는 주문이 됐다"고 말한다. 김현 의원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 받게 됐다. 대한체육회와 경찰은 남종현 대한유도회 회장의 '임금님 스캔들'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노경수 인천시의회 의장 아들은 사문서 부정행사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라면 상무'는 직장을 잃었고 '빵 회장' 회사는 폐업 위기까지 갔었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지난해가 갑()'무한 횡포'에 제동이 걸린 원년(元年)이었다고 말한다. '라면 상무' 사건의 최대 수혜자였던 항공업계 관계자는 "'진상 고객' 숫자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현장에서 지위·신분을 과시하던 손님들 역시 이제는 불만사항을 이메일로 얌전히 써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호텔업계 역시 20~30%가량 감소했다고 한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요즘엔 해외 명품관을 중심으로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고객에게 '누구신데요?'라고 대응하는 분위기도 생기고 있다""매장에서 난동을 피우면 다른 손님들이 즉시 동영상으로 찍어 SNS에 퍼뜨리기 때문에 과거처럼 무턱대고 막 나가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 역시 "요즘 20~30대 젊은 경찰들은 신분·배경을 과시하는 50~60대 피조사자들을 역겹게 생각할 때가 많다. 어차피 조사하면 나올 신분을 먼저 밝히면 '잘됐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더 철저히 조사한다"고 말했다. 김현 의원 일행에게 폭행당한 대리기사 이씨의 항변도 과거와 달랐다. "국회의원이면 다입니까?"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입력 : 2014.10.07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