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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독립 투표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

풍월 사선암 2014. 9. 19. 10:44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를 이틀 앞둔 16일 에든버러에서 한 남성이 찬성’(Yes)이라는 낱말이 쓰인 스코틀랜드 깃발을 들고 길을 걷고 있다. 에든버러/AP 연합뉴스

 

스코틀랜드는 왜 독립 분리 하려는 걸까

올해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하는 이유는?

 

스코틀랜드는 분리 독립할까?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여부를 결정짓는 주민투표가18(현지시간)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진행된다. 한국시간으로는 18일 오후 3시에 투표가 시작돼 다음날 아침 6시에 마무리된다. 스코틀랜드는 왜 영국에서 분리 독립하려는 걸까? 그 역사적인 배경은 무엇일까?

 

1. 로마제국도 점령하지 못했던 스코틀랜드

 

로마 사람들은 스코틀랜드를 칼레도니아(Caledonia)로 불렀다. 그 뜻은 스코틀랜드에 살았던 부족 이름에서 나왔지만, 로마인들에겐 정복되지 않는 땅으로 다가왔다. 로마제국 시대, 잉글랜드는 로마에 복속됐지만 스코틀랜드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거친 파도에 의해 깎여진 산맥과 접근조차 하기 힘든 깊은 계곡들로 이루어진 이 땅을 정복하는 건 쉽지 않는 일이었다.

 

서기 43년 로마는 잉글랜드를 정복한 뒤, 79~84년 여러 차례 스코틀랜드로 진격했으나 거센 저항에 부딪쳐 점령에 실패하게 된다. 로마는 스코틀랜드를 점령하는 대신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장벽으로 막아 버렸다. 서기 122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동쪽 뉴캐슬에서 서쪽 솔웨이 만까지 113km의 장벽을 쌓는다. 그 뒤 잉글랜드는 300년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지만, 스코틀랜드는 로마로부터 자유로웠다.

 

2. 영화 <브레이브 하트> 실제 모델은 윌리엄 월레스

 

1286318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신하들과 연회를 즐기던 국왕 알렉산더3세는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킹혼(Kinghorn)에 있던 아내를 보러 간다며 말에 올랐다. 만취한 채 말을 탄 왕은 다음날 아침 목이 부러진 시체로 발견됐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딸 마거릿 마저 4년 뒤에 죽자 스코틀랜드는 왕위계승 전에 휩싸이게 된다. 이 틈을 타 1296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군대를 이끌고 와 스코틀랜드를 점령해 버렸다.

 

이 때 등장한 이가 스코틀랜드의 독립영웅으로 불리는 윌리엄 월레스(Willam Wallace)였다. 멜깁슨이 감독·주연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실존 모델이다. 월레스는 12979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농민이 주축이 된 5000명의 군사로 25000명의 잉글랜드 정예군을 격파했다.

 

하지만 반격에 나선 에드워드1세는 직접 군대를 지휘하며 폴커크전투에서 월레스를 완파해 버렸다. 그 뒤 월레스는 도피 중 사로잡혀 런던으로 보내졌다. 처형은 잔인했다. 사지는 네조각으로 찢겨나갔고, 거세된 뒤 내장은 불태워졌다. 머리는 런던 다리에 걸렸고, 팔과 다리는 영국의 네 군데 변방에 경고용으로 보내졌다.

 

영화에선 이 장면은 다르게 처리했다. 월레스는 프리덤을 외치며 죽는 것으로 나온다.

   

3. 올해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를 하는 이유

 

윌리엄 월레스의 죽음은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의 불쏘시개가 됐다. 그가 죽은 뒤 스코틀랜드 귀족인 로버트 더 브루스는 게릴라전을 벌이며 성들을 하나 둘씩 탈환하기 시작했다. 1314년 스코틀랜드 독립군들이 베녹번성을 공격하고 있을 때, 당시 잉글랜드 왕인 에드워드2세는 반란군을 뿌리 뽑겠다4만여명의 대병력을 이끌고 베녹번으로 진격했다.

 

에드워드 2세는 런던에서 베녹번까지 뚫린 좁은 가도로 진군했고, 7500명의 독립군들은 베녹번 앞 가도에서 기습공격을 했다. 잉글랜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에드워드2세는 몇 명의 기사들과 목숨만을 건진 채 런던으로 퇴각했을 정도였다. 이 전쟁 결과, 브루스는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1세로 즉위하며 스코틀랜드는 독립하게 된다.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 투표를 올해 치르기로 한 것 역시, 올해가 베녹번 전투 6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4. 라이벌인 두 여자가 낳은 하나의 왕국

 

메리 스튜어트는 1542년 스코틀랜드 왕국의 공주로 태어났다.

 

왕국의 린리스고우 궁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5세로, 메리가 태어난 지 6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는 프랑스의 명문 귀족이자 방계 왕족 출신인 마리 드 기즈였다. 15439개월의 아기였던 메리 스튜어트는 대관식을 치르고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지만, 딸의 안전을 염려한 어머니는 프랑스에 보낸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왕과 결혼한 메리는 남편이 죽자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1565년 메리는 자신과 같은 스튜어트 왕가의 일원인 헨리 스튜어트와 재혼했지만, 남편은 왕이 되려는 욕심에 메리를 감금했다. 당시 메리는 임신 중이었는데, 감금 중에 출산한다. 출산 소식을 듣고 남편은 아내를 풀어주었으나, 남편은 귀족에게 암살당했다.

 

메리는 제임스 헵번 백작에 의해 다시 감금당하는 신세가 됐고, 그의 강요에 의해 결혼하게 된다. 이 결혼으로 백성들 사이에선 메리가 백작과 짜고 전 남편을 죽였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결국 메리는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찾아갔다.

 

하지만 메리가 잉글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칼라일 성에 감금됐다. 엘리자베스1세는 오촌 조카뻘인 메리가 신교의 국가인 영국에서 가톨릭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메리는 셰필드에서 18년 동안 유폐 생활을 계속했다. 하지만 1587년 메리는 가톨릭 반란을 주동했다는 혐의로 처형됐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 후사가 없었다. 여왕의 독신주의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데서 받은 충격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성공회를 만든 헨리 8, 어머니는 천일의 앤으로 불렸던 앤 불린이었다.

 

1603324일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했다. 바로 메리의 아들이었다. 1707년 연합법이 통과되자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의회가 통합되면서 한 나라가 됐다. 스코틀랜드 왕이 잉글랜드 왕을 겸하면서 하나의 국가가 됐지만, 많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피로 쟁취한 독립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고 여기고 있다.

   

5.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려는 이유는

 

300년 이상 영국이라는 울타리에 있었던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하려는 이유는 민족적 감정에 더해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스코틀랜드의 조선과 항만시설은 독일의 주요 공격목표가 되면서 큰 타격을 받으면서 전후 스코틀랜드 지역 산업이 무너졌다. 산업기반을 잃은 스코틀랜드의 경제는 잉글랜드에 비교해 낙후됐다.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총리가 강력한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스코틀랜드 경제의 기반이던 철강과 조선 산업은 무너져 내렸다. 반면 런던의 금융 산업은 성장 발전하고 있었다.

 

이런 역사적 이유로 스코틀랜드의 민족주의와 분리 독립을 표방하는 국민당(SNP)이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국민당은 1999년 대영제국에게 스코틀랜드의 자치권을 인정받았고, 2011년에는 자치의회의 다수를 구성하면서 분리 독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북해유전 품은 스코틀랜드 독립, 영국 경제 파탄부를까?

 

18(현지시각) 치러질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이틀 앞둔 16일 에든버러 시내 같은 아파트의 위·아래층 창문에 분리독립을 찬성하는 예스와 반대하는 표시가 붙어 있다. 에든버러/AP 연합뉴스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알아야 할 5가지’-시사편

 

스코틀랜드는 307년만에, 분리 독립할까? 분리 독립 하든 안하든 18(현지시간)에 이뤄질 주민투표는 유럽 전역은 물론 세계 정세에 영향을 줄 것이다. 스코틀랜드 국내 정치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스코틀랜드 국내외 정치, 경제적으로 이번 투표는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그 시사적 물결을 따라가보자.

 

1. 왜 북해유전이 중요한가

 

영국과 유럽대륙, 스칸디아반도로 둘러싸인 북해에서 1967년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다. 매장량만 무려 30억톤으로 추정되며 천연가스도 나온다.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유전구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 북해유전의 원유 생산지가 대부분 북쪽에 몰려 있어 약 90% 정도가 스코틀랜드에 귀속된다는 점이다. 현재로선 북해유전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팔아 번 돈이 영국 정부 재정에 상당 부분 들어가지만 분리 독립 후엔 이를 모두 스코틀랜드가 가질 수 있다.

 

분리 독립을 찬성하는 이들은 이 재정을 이용해 세금은 낮추고 복지수준은 올릴 수 있을 것이란 꿈을 꾸고 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영국은 북해유전의 천연자원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스코틀랜드가 현재 영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 하지만 유럽의 에너지 자원을 놓고 각국이 경쟁을 벌이는 만큼, 영국은 에너지 경쟁에서 지게 된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불발돼도 당분간 에너지 자원의 국가별 경쟁 시장에 여파가 상당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불안한 건 스코틀랜드도 마찬가지다. 산유국이라고 해서 항상 안정적인 경제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석유 가격 변동성에 휘둘리며 쉬우며 자원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도 무시 할 수 없다.

 

2. 스코틀랜드는 탈핵할 수 있을까

 

스코틀랜드 남서부 클라이드만에는 영국의 핵잠수함 기지가 있다. 만약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한다면 이 기지는 영국 영토 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할 운명에 처한다.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2020년까지 기존의 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철수 요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은 이전 비용만 2535억 파운드를 내야한다. 우리 돈으로 약 420006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현실적으로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비용이 확보된다고 바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라는 위험기지를 옮기기 위해선 새로 자리 잡는 지역의 주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핵물질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영국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은 그리 쉽지 않아 2020년까지 추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어찌 됐든, 이번 주민 투표로 영국 국민들은 핵 기지를 어디론가 이동시켜야 할지 모를 불안에 놓였고, 스코틀랜드는 드디어 영국의 핵 기지에서 벗어날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3. 독립하면 파운드화 쓸 수 있나

 

현재 영국은 유로존에 속해있지만 유로화를 쓰지 않는다. 여기엔 과거 대영제국의 역사와 자부심, 파운드화라는 자국 통화에 대한 프라이드가 숨어있다. 실제 유로화가 도입되던 초반에 파운드화가 유로화보다 더 강세이기도 했다. 그렇게 영국인들은 파운드화를 유지했다. 스코틀랜드는 현재는 영국과의 화폐동맹으로 파운드화를 사용한다. 그러나 분리 독립 후에도 영국과 화폐 동맹을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영국으로서는 양날의 검이다. 독립 후 스코틀랜드와의 화폐 동맹이 깨진다면 파운드화를 쓰는 인구가 줄면서 영국의 파운드화의 통화시장 입지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영국으로선 분리 독립된 스코틀랜드의 나라빚을 갚을 의무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홀가분 한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 유럽연합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파운드화조차 쓰지 못할 것이므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독립하면 재정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라 말하며 주요 7개국 부자나라 대열에 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4. 스카치 위스키는 얼마가 되나

 

스코틀랜드에서 제조되는 위스키, 스카치(Scotch whisky)는 곡식을 발효시킨 뒤 다시 증류해 만든다. 이 스카치 위스키는 동양의 증류기술이 중세 십자군 전쟁을 통해 된 후 아일랜드를 거쳐 스코틀랜드에 전파됐다고 알려진다. 십자군 전쟁시 가톨릭 수사들에 의해 그 비법이 전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스카치 위스키를 사먹으려면 원래 수입관세가 20%로 높았다. 하지만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 된 뒤 관세가 15%로 떨어졌고, 이후 계속 5% 포인트씩 낮아져 올 7월부터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만약 스코틀랜드가 분리 독립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FTA 효과로 낮아진 관세 혜택을 보지 못하고 다시 원상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스카치 위스키 업계의 큰 손인 한국 고객들은 다시 20%의 관세가 부과된 비싼 위스키를 먹어야 할 것이다.

 

5. 남든 독립하든 스코틀랜드 내 찬반 갈등, 아물 수 있나

 

이번 주민투표 실시로 독립하든 안 하든 스코틀랜드 안에는 이미 찬성파와 반대파가 이미 팽팽히 갈린 상황. 어느 쪽이 우세인지 모를 정도로 5050 팽팽하다. 주민투표가 실시 된 이후엔 어느 결과가 나오든 결과를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줄겠지만, 정치 경제적으로 큰 후유증을 피하긴 어려워보인다.

 

독립하면 독립한 대로, 영국 내에 남으면 남는 대로 국민 통합이 가능할까. 이번 투표가 괜히 스코틀랜드 구성원 간의 갈등을 불어넣은 것은 아닐까. 분리 독립 주민 투표를 앞두고 16일 에든버러 시내를 방문한 이정훈 <한겨레> 기자는 같은 아파트에서도 찬성과 반대를 뜻하는 ‘YES’, ‘NO’ 펼침막을 가구마다 다르게 내걸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분리 독립을 찬성하는 측은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층이 많고, 안정을 바라는 중장년층은 반대여론이 많아 세대간 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한번 멀어진 찬반 양론은 언제든 불씨가 되어 스코틀랜드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겨레 신문 : 201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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