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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만 노인의 힘

풍월 사선암 2014. 3. 6. 09:14

대한노인회장 당선에 화환 130여개 쏟아진 이유

625만 노인의 힘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유세현장에 모인 청중들. 대부분이 장·노년층이다.

 

개봉 1개월 만에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영화가 수상한 그녀. 관객 700만명 돌파를 앞둔 수상한 그녀의 흥행 성공에는 몇 가지 코드가 있다. 그중 하나가 노인 문제다. ‘수상한 그녀는 노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노인전용 실버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일을 하는 노인들 이야기가 수상한 그녀. 홀몸으로 아들을 키운 70대 여성이 어느 날 자신의 지나온 날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을 만나고, 20대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수상한 그녀는 노년의 사랑이 젊은이의 사랑 못지않게 절박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순정남 박씨(박인환 분)는 욕쟁이 할머니 오말순(나문희 분)을 연모하며 주변을 맴돈다. 박씨가 내 눈에 한번 빠져볼텨” “집 나간 말순이 돌아오면 결혼할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장·노년층 관객들은 환호한다. ‘수상한 그녀는 노인 문제를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다루다 보니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자녀 3()가 극장에 몰려드는 가족영화로 자리 잡으며 흥행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황혼이혼이 꾸준하게 증가하는 것 역시 달라진 노인 의식을 보여준다. 200823.1%이던 황혼이혼율이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5060세대의 70%는 황혼이혼에 공감한다는 조사도 나왔다. 노년세대가 황혼이혼을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행복추구권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를 가나 왕성하게 활동하는 젊은 노인과 만날 수 있다. 탑골공원, 종묘앞 공원, 인천자유공원 등은 수도권의 대표적인 노인 공간이다. 이곳에 주로 나오는 노인층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평균 75세가 넘는다. 한 연구논문에서도 학력이 낮고 무직이고 소득이 낮은 사람일수록 공원 이용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 밝혀졌다. 현재 장애인고용공단 이성규 이사장이 서울시립대 교수 시절 쓴 논문에 따르면 서구복지국가의 공원 이용 계층은 중산층 이상의 여가생활 공간으로 이용률이 높다.

 

대다수의 노인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시설은 집 근처에 있는 경로당이다. 그 다음이 동마다 있는 주민자치센터, 노인종합복지관이다. 서울 중계동에 있는 중계근린공원에는 실버카페가 있다. 이 카페는 노인들이 운영한다. 영화 수상한 그녀는 이 카페에서 상당 부분을 촬영했다. 서울 1호선 지하철이 천안까지 연장되면서 서울 노인들의 활동반경이 천안 병천까지 확장됐다. 만원 한 장이면 병천 순대국을 먹고 커피를 한잔 마시며 놀 수 있게 되었다. 서울의 경우 학력이 높은 사람들은 시내 중심가의 커피전문점을 즐겨 이용한다. 특히 서울시청 주변의 스타벅스, 카페베네, 투썸플레이스 같은 커피전문점은 실버 세대의 매출이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는 서울시립성북노인종합복지관이 있다. 이곳은 창립 15주년이 되었고 회원 수는 14000명에 달한다. 하루 이용객 수는 1500명에 육박한다. 성북노인종합복지관은 댄스스포츠, 풍물, 하모니카, 민속체조, 한국무용, 차밍디스코 6개의 여가 문화동아리가 있다. 이들 동아리에는 60세 이상 노인들이 참여할 수 있다. 성북노인종합복지관은 서울에서 평균적인 수준의 복지관이라 할 수 있다. 동아리 회원들은 각종 행사 및 대회에 참여한다. 보행과 의식에 문제가 없다면 노년층들은 어디서든지 여가문화를 즐길 수가 있다. 복지관에서 만난 77세의 최모씨는 하모니카 수업이랑 민속체조, 그리고 짝지어서 춤추는 댄스스포츠가 인기가 제일 많다고 말했다. 최씨는 컴퓨터 수업은 신청하고 6개월은 기다려야 배정받을 수 있다면서 그래도 여기 오면 많은 친구들도 사귀고 하루 종일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성북구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82세 여성 김모씨의 말이다. “노인이라고 별다를 바가 없어요. 육체적인 힘이 약할 뿐이지. 우리도 쓸 만한 사람이고, 사회나 어떤 자리에서 역할을 부여받길 원해요. 내가 무언가를 맡아서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지난 27일 끝난 대한노인회 중앙회장 선거는 달라진 노인의 파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대한노인회 중앙회장 선거가 전국적 관심을 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국잡지협회장 출신인 이심(74) 회장은 4년 전인 2010년 대한노인회장에 당선되었다. 이때만 해도 대한노인회장 선거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역대 노인회장을 지낸 인물 중에는 이규동씨, 안필준씨 등이 알려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씨는 5공화국 시절 12개월 동안 잠깐 노인회장을 맡았다. 기무사령관을 지낸 안필준씨는 2003년 노인회장을 맡았다. 그런데 이심 회장이 4년 임기를 마치고 재선에 도전하면서 양상이 180도로 변했다. 국회의원 출신인 안동선, 김성순, 김호일이 대한노인회장에 도전하면서 과열양상으로 비치기도 했다. 안동선씨는 4, 김성순씨는 3, 김호일씨는 2선 의원을 각각 지냈다. 김성순씨는 서울 송파구청장을 역임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다. 대한노인회장 선거에 전직 의원들이 한꺼번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심 회장은 정치인 출신의 도전을 61.7%라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이심 회장의 재선 기사는 신문에 단신으로 처리되었고, 일부 신문에서는 이심 회장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전직 의원들이 왜 대한노인회 중앙회장 자리를 노렸을까. 한때 뒷방 늙은이 취급받던 노인의 파워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만큼 막강해졌다는 뜻이다. 노인은 2012년 대선에서 결정적 힘을 보여줬다. 60세 이상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76.8%를 몰아줬다. 노년층의 몰표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이는 앞으로 어떤 후보도 노년층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대통령 당선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지지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역대 대통령 당선자가 대한노인회를 찾아간 것은 박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UN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기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노인은 625만명. 대한노인회는 전국 625만 노인을 대표하는 단체다. 대한노인회에 등록된 회원은 260만명. 이는 전국 62000여개 경로당에 회원으로 등록한 숫자다.

 

노인의 파워를 조직으로 엮어내는 곳이 바로 대한노인회 중앙회다. 1969년 설립된 대한노인회에는 광역 단위에 16개 연합회가 있다. 다시 244개의 시··구 지회가 있으며 그 아래는 읍··동 분회 2000여개를 두고 있다. 62000여개의 경로당은 대한노인회가 운영하는 것이다. 경로당 운영과 관련 대한노인회는 2012년부터 정부로부터 16억원을 지원받고 있다. 또한 대한노인회는 미주·브라질·호주·태국 등 6개 해외 지회를 두고 있다. 대한노인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단체다.

 

대한노인회 중앙회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에 있다. 지난 224일 오후 이심 회장을 대한노인회 회장실에서 만났다. 대한노인회 중앙회는 2층 건물이다. 회장실·임원실·기획조정실은 2층에 있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을 때 작은 로비에는 20여개의 화환들이 빙 둘러 놓여 있었다. 모두 이 회장의 재선을 축하하는 화분들이었다. 잠시 후 비서의 안내를 받아 회장실로 들어갔다. 순간 입에서 악! 하는 소리가 날 뻔했다. 회장실은 크지 않았지만 창틀과 바닥에 빈틈없이 축하 화환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회장의 책상 위에도 축하난이 10여개 올려져 있었다. 방안에 있는 화분은 눈대중으로도 130개는 훨씬 넘어 보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틈틈이 보낸 사람의 면면을 살폈다. 부영그룹 이중근, 웅진그룹 윤석금 등 기업인의 이름이 보였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보낸 화환도 여러 개 보였다. 가장 많은 그룹은 전국 노인회 지회장들이 보낸 화환이었다. 책상 위에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정현 대통령 홍보수석의 리본이 달린 화환도 있었다. 화환 리본의 면면과 개수는 대한노인회장의 격상된 위상을 웅변했다.

 

이심 회장은 회원들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와 관련, “대한노인회를 정치적으로 이끌어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전직 의원들이 왜 대한노인회장 자리에 도전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가정이나 회사나 이제는 노인들이 돈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이들이 돈을 풀지 않으면 경제가 안 돌아갈 수도 있다. 현재 재산이 있는 65~75세 노인들 상당수는 죽을 때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싫어한다. 이들의 관심은 재산을 어떻게 가치 있게 쓰고 가느냐는 것이다. 이제 노인들은 실질적으로 사회변화를 가져올 능력이 있다.”

 

이 회장의 일정은 웬만한 대기업 CEO 못지않다. 인터뷰 다음 일정은 여의도 국회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면담이었다. 이 회장은 여야를 대한노인회의 파트너로 생각한다. 이 회장은 대한노인회가 여야를 가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2년 창립된 노인노동조합인 노년유니온(위원장 김선태)이 바로 노년층 파워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노년유니온은 20135, 전국단위노동조합으로 발족했다. 정부를 상대로 일자리와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단체로 55세 이상의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년유니온에 가입할 수 있다. 비록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노년유니온은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방증한다.

 

노년층은 이제 10~20년 전의 노인들과는 천양지차가 되었다. 지금의 60대는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65세부터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어도 75세 이상이 되어야 노인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60~74세를 젊은 노인 6074세대로 부르는 신조어도 생겼다. 디지털 기기 사용 여부로 삶의 질이 차이가 난다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도 옛말이다. 지하철을 타 보면 노년층이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60세 이상 스마트폰 이용률이 지난해 113%였던 것이 11월에는 27%로 높아졌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6074세대는 시대변화를 따라간다는 자부심과 함께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경험을 맛보는 중이다.

 

 

이심 대한노인회장

 

위대한 국가는 젊은이가 망친 나라를 노인이 구한다고 했다

 

노인이 아닌 사람은 대한노인회 홈페이지에 들어갈 일이 매우 드물다. 이심 회장과 인터뷰를 앞두고 대한노인회 홈페이지의 회장 인사말을 읽어 보았다. 인사말에서 다음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한노인회는 부양의 대상에서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이 된다는 무슨 뜻인가. 이 회장은 국가에 정말 중요한 일이 생길 때 대한노인회가 가장 먼저 솔선해 행동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대한노인회는 평창올림픽 유치 때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 당시 260만 회원이 전화로 유치 운동을 벌였고, 천안함 폭침 논란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성금을 걷어 유족에게 전달했다.

 

먼저 대한노인회에서 하는 일을 살펴보자. 노인취업센터, 자원봉사센터, 경로당지원본부가 있다. 이는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하는 국고 사업이다. 세 가지 위탁사업에 100억원이 소요된다. 순수하게 대한노인회에 배정되는 정부 지원 예산은 16억원. 16억원은 주로 경로당 지도·관리, 해외 지회 지원, 대한노인회 경상비 등으로 쓰인다.

 

대한노인회 활동 중에 흥미로운 게 노노케어(老老care)’. 이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노인이 노인을 보살핀다는 것이다. 특히 치매 같은 경우 진단 초기에서부터 경로당에서 치매환자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자식이 치매 부모를 집안에 가두고 출근하면 일이 되겠나? 치매 부모를 경로당에 모시고 오면 경로당에서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이건 한 가정을 살리는 것이다. 노인의 마음은 노인이 잘 안다. 젊은 사람은 대화가 안 되고, 치매 노인들에게 접근이 안 된다. 경로당에 치매환자를 보내면 한 가정을 살리는 게 된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한노인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년이 없는 현역사회다. 대한노인회는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그게 안 되는 분들에게는 자원봉사 기회를 줘야 한다. 그것도 어려운 분은 경로당에 나와 운동을 하도록 권한다. 노인이 한 시간 운동을 하면 500원씩 적립해 드린다. 그러면 동기부여도 생기고 더 열심히 운동한다. 노인들이 경로당에 나와 운동을 해 건강해지면 국가예산을 절감해 국가적으로도 이익이다.”

 

2012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비 총액은 18조원. 이 중 노인의료비가 34%를 차지했다. 대한노인회는 현재 정부에 복지청 신설을 요청해 놓고 있다. 이미 132만명이 서명해 청원서를 제출했다. 복지청이 신설되면 대한노인회의 목소리가 예산 편성 단계부터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여야의 중진의원을 두루 접촉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임기 중에 노인연수원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청소년연수원은 전국 곳곳에 있다. 그런데 왜 노인연수원은 없는가. 은퇴하고 나서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집중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시설이 절실하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 이 회장은 기자에게 로마시대의 정치인 키케로의 말을 아냐고 물었다. ‘위대한 국가는 젊은이가 망친 나라를 노인이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