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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0년 의료비 폭탄이 '처량한 노후'를 부른다

풍월 사선암 2014. 1. 11. 10:52

마지막 10년 의료비 폭탄이 '처량한 노후'를 부른다

 

[서민 가정 울리는 '長壽의 역설']

 

사망 직전의 치료 비용이 평생 의료비의 20~30% 차지

65세 이상 진료비, 10조원서 4년새 16조원으로 늘어

 

회생 불능 판정받고도 치료 포기 않는 특수한 문화도 영향

高價 검사 반복면회 제한된 중환자실서 홀로 세상 뜨기도

 

경남 A요양병원 4인실에서 만난 황갑순(가명·83) 할머니 가족. 큰아들(60)은 전직 경찰관, 둘째딸(55)은 식당 종업원, 셋째딸(53)과 막내딸(50)은 전업주부라고 했다. 노환으로 입원 중인 할머니가 입만 열면 "나 좀 집에 데려다 달라"고 중얼거렸다. 13녀 중 "우리 집으로 가시자"고 선뜻 말을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1981년 남편을 잃고 혼자 살다가, 노환으로 3년 전부터 본인 뜻과 상관없이 가끔 바지에 대소변을 지렸다. 1쯤 떨어진 읍내 약국에서 약을 사 먹어가며 관절염 통증을 다스렸다. 여든을 넘기면서 집 안에서도 자꾸 넘어지고 밥도 제대로 못 넘겼다. 자식들 성화에 "집 떠나는 게 죽기보다 싫다"던 할머니가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모든 장기가 제 기능을 잃은 상태"라고 했다.

 

10년 전만 해도 이 지역에선 노인을 요양병원에 모시는 사람이 드물었다. 지금은 요양병원이 많이 늘어난 데다, 병시중할 자식 세대도 환갑 전후가 됐다는 이유로 직접 수발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황 할머니가 흐린 목소리로 "내는 여기가 감옥 같다"고 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病魔)는 평범했던 한 가정을 풍비박산 냈다. 가족회의 끝에 막내아들이 병든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했다. 3남매는 모두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었다. 아들은 차가운 교도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4, 아버지 이씨가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살던 포천 집에는 가족사진이 찢긴 채 나뒹굴고 있었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개미처럼 일한 한국인들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빈곤의 굴레''외로움의 늪'에 빠진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중 노인 상대빈곤율 1, 자살률 1위다. 왜 이런 일이 닥칠까?

 

'한국인의 마지막 10'을 발목 잡는 세 가지 착각

 

취재팀이 만난 전문가들은 "한국인에겐 세대를 막론하고 삶의 마지막 10년을 가난과 고독 속에 보내게 하는 '세 가지 착각'이 있다"고 했다.

 

"한국인은 아직도 '자녀'가 곧 자신의 노후인 줄 알아요. 과거 세대는 없는 형편에 모든 걸 투자했고, 요즘 40~50대도 과외비·대학 등록금·어학연수비 대다가 은퇴 자금 모을 시기를 놓칩니다. 겉으론 아니라면서 속으로는 '버틸 만큼 버티다 막판엔 자식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데 착각입니다."(윤승진 유산·상속 전문 변호사)

 

"한국인은 인생에 '여든 이후'가 없는 줄 알아요. 인생 2막을 계획하는 사람도 70대까지만 생각하지, 80대 이후를 물으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는데, 요즘 진짜 '노년'은 여든 이후입니다."(윤성은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인은 죽음이 어느 날 '' 하고 갑자기 닥치는 줄 알아요. 대다수가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살다가, 짧게는 2~3, 길게는 10년 이상 앓으면서 경제문제와 외로움을 겪다가 세상을 떠납니다."(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준비 안 된 인생 말기

 

이런 딜레마는 지역과 세대와 계층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 끝에 공통으로 기다리는 복병이 '본인이 꿈에도 원하지 않았던 형태의 죽음'이다. 고령화로 인해 사망 직전 지출하는 '사망관련 의료비'가 평생 의료비의 20~30%를 차지할 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서울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숨진 김명숙(가명·73). 작년 초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했는데, 좀처럼 차도가 없었다. 검사 한 번 할 때마다 병원비가 목돈으로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환자 본인은 문병 온 지인들에게 "나는 사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검사고 뭐고 다 그만두고 공기 좋은 곳에서 애들이나 자주 보며 편안하게 떠나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자식들 입장은 달랐다. "이렇게라도 해야 우리 마음에 한이 안 남는다"면서, 상태가 좀 나을 땐 요양병원에 모셨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옮기는 걸 반복했다. 김씨는 중환자실에서 혼자 숨졌다. 가족 면회시간이 아니라 주위에 의료진과 의료장비뿐이었다.

 

전문가들은 "노후빈곤에 시달린다면서도 회생 불가능한 사람까지 치료를 포기 못하는 한국의 특수한 문화도 한 몫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연간 진료비는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8년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섰고, 매년 상승해 지난해엔 164502억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