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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알 수 없는 아버지 마음

풍월 사선암 2014. 1. 4. 06:57

 

아직도 알 수 없는 아버지 마음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 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

 

 

'자전거 전도사, 지리학 박사, 아흔 부친을 살갑게 모시는 효자.'

 

고향 산청에서 아흔살 아버지 모시며 안빈낙도 '父田子田'

 

박찬석(69) 전 경북대 총장. 30여년 교육계에 몸담고 국회의원까지 지낸 박 전 총장이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그는 요즘 대구와 경남 산청에서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대구에서는 다양한 문화강좌와 토론모임을 하며, 고향 산청에서는 나무와 풀과 채소와 더불어 살고 있다.

 

그는 요즘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으시냐는 뻔한 질문에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로 되받았다.

 

앞산 자락 그의 아파트에서 자연인 박찬석의 근황을 들어봤다. 그는 건강한 시골살이 자전거 타기 활성화 세계지리 문화강좌 지역과 국가를 위한 정치, 교육 등 하나씩 입담을 풀어내며 힘줘 말했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열정은 여전했다. 요즘도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종종 앞산에도 오르고, 시골에서 풀도 뽑는 그의 91세 부친에게서 부전자전을 느낄 수 있었다.

 

시골생활의 건강과 여유

 

-시골 생활이 힘들지 않습니까?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고향은 지리산과 황매산 사이에 자리잡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입니다. 집 인근에 논 여덟 마지기와 밭이 조금 있는데 오랜만에 농사를 지어보니 쉽지가 않아요.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매주 이틀은 시골 가서 풀도 뽑고, 나무도 가꾸고 그럽니다.”

 

-어떤 농사를 짓습니까?

 

논농사는 영농조합이 있어 모심기와 벼베기는 수월합니다. 집 앞뒤에 있는 밭에는 각종 채소를 비롯해 도라지, 강냉이, 고구마, , 호박 등 없는 게 없어요. 비록 조그만 밭뙈기지만, 고랑을 내고 풀 뽑을 때는 꽤 힘이 듭니다. 적은 양이지만 수확할 때는 즐겁습니다. 집 주위에 감나무 10여주가 있는데 썩고 해충이 파고들어 감이 열리지 않는 바람에 작년에 농약을 치고 가꿨더니 올해 열매가 열리더라고요.”

 

-혼자 작업하시면 지루할텐데

 

항상 아버지와 함께 갑니다. 연세는 드셨지만 여전히 정정하십니다. 지금도 자전거 타고, 등산 하고, 풀도 뽑고 하십니다. 아버지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벌초는 혼자 했습니다. 그런데, 시골생활을 다시 시작하다 보니 농약살포기나 관리기, 예초기 등 농기계를 구입하는데 돈이 꽤 들어요.”

 

정치보다 문화강좌가 체질

 

-대구 생활은 어떻습니까?

 

교육계와 정계를 떠난 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고민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영어는 좀 합니다. 또 세계지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각국의 지리와 문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지식이 있다고 봅니다. 그 때문에 이를 활용해 볼 생각이었어요. 요즘엔 세계지리와 문화를 영어로 강연한다고 그러저러 다닙니다.”

 

-문화강좌라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매주 화요일은 달성군 현풍 제일삼성병원에서, 토요일은 동구 이마트 인근 아리따 레스토랑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강좌를 합니다. 주로 세계지리산책이란 제목으로 이집트, 중국 신장위구르, 몽골 황사 등 시의에 맞는 소재를 택해 다룹니다. 매주 오전 2시간씩 하는데, 1시간은 다큐멘터리 등 영상물을 보여주고, 나머지 1시간은 영어로 세계지리·문화에 대해 강의합니다. 위키피디아나 엔사이버, 브리태니커 등 인터넷 백과사전을 자료로 활용하지요. 또 영상물은 주로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에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합니다. 빔프로젝트, 노트북 등 장비를 직접 챙겨 꼼꼼히 준비합니다. 물론 강연료나 자료준비에 드는 비용은 받지 않아요. 말하자면 그접니다.”

 

-문화강좌를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지역사회나 주민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봉사라고 볼 수 있지만, 결국은 제 삶을 위해서이지요. 가르친다기 보다 제 공부를 한다고 여깁니다. 지난달에는 서울 한 재단의 주선으로 전국 대학생 100여명을 인솔해 내몽골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사막에 모래가 날리지 않도록 나무 막대기를 꼽는 사장작업활동이었지요. 사장작업이 확산되면 모래가 날리지 않고, 싹도 틔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화강좌나 봉사활동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다른 시간은 어떻게 활용합니까?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나 교수, 의사,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진보적 인사 20여명으로 구성된 토요마당이란 모임이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얘기부터 통일문제, 시사적인 문제를 두고 영상물도 보고, 토론도 합니다. 또 낮에는 경북대 체육관에서 명예교수들과 친목모임을 갖기도 합니다.”

 

자전거 타기는 시대적 대세

 

-‘자전거 전도사로 알려졌는데요.

 

의정활동기간 중 자전거 활성화에 대한 마스트 플랜을 짠 것이 가장 보람이었습니다. 마스트 플랜에는 에너지 절약과 환경, 건강, 관광코스, 도시교통 등 자전거의 효용성에서부터 인프라 구축과 행정 등 자전거의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자전거운동 활성화의 시발점이 됐다고 자부합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을 보완하고 개정하는 역할도 했지요."

 

-대구 도심에서도 효용성이 있을까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자전거 도로는 시내교통, 어린이교육용, 관관용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필요합니다. 대구 등 도시의 경우 교통상황을 감안할 때 도로 갓길이 아니라 도로망 한복판에 자전거도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길가의 경우 상가, 주차, 수송수단 등 때문에 제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갓길에는 자전거도로가 있어도 자전거를 제대로 탈 수가 없지요. 네덜란드처럼 도로 한복판에 자전거도로를 낸 사례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요?

 

이를 위해서는 도로 다이어트화가 필요합니다. 대구 도심의 도로 폭이 평균 3.5m인데 50를 줄여 3m로 하더라도 평균 시속 40~50인 도심에서는 교통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자전거 도로는 편도 폭이 2~2.5m 정도로, 양쪽 4m 정도를 확보해야 합니다.”

 

지방대의 몰락은 지방의 몰락

 

-30여년 동안 교육계에 몸담으셨는데.

 

대구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바로 교육입니다. 특히 지방대학이 몰락하면 지방이 몰락합니다. 세계화의 무한경쟁 속에서 지역경제, 지방대학을 비롯해 지역이 소외되는 현상이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지방대학을 살리고 지역인재를 양성해야 이를 기반으로 지역이 살 수 있는데, 인재들이 중앙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구조적 문제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방정책, 균형정책이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는 지역균형 정책을 강하게 써야 합니다. 지역인재 할당제, 세제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를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이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지방자치가 더 활성화돼야 합니다. 각종 세금을 지역으로 이양하고, 경찰권 등 상당 폭의 중앙기능을 지방으로 이양해야 지역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구 여권에서 최근 정치참여를 제안한 것으로 아는데.

 

정치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정활동이 의미는 있었지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특히 영남권에서는 정치적 토양이 다른 목소리가 받아들여질 정도의 좋은 여건이 되질 않아요. 지역성 극복을 위해서는 붕당(파벌) 정치보다는 정책 정치로 나가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한미관계, 대북문제 등에 대해 국익과 유연한 사고를 고려해야 합니다. 이전 정권의 정책기조를 이어갈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 관계 정립에서 정부와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2009.09.05 /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박찬석은?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경북대 지리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경제지리학 석사. 네덜란드 사회과학원 지역개발 전공. 미국 하와이대 지리학 박사. 대한지리학회 부회장, 전국국립대 교수협의회 의장 역임. 경북대학교 13·14대 총장. 전국 국공립대 총장협의회장 역임. 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자전거학회 수석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