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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태릉선수촌서 만난 빙속여제 이상화 '소치 최대 라이벌은 바로 나'

풍월 사선암 2014. 1. 2. 00:01

깜짝태릉선수촌서 만난 빙속여제 이상화 '소치 최대 라이벌은 바로 나'

 

◀‘빙속 여제이상화가 지난해 1227일 태릉선수촌 챔피언하우스 앞에서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했다. 살짝살짝 보이는 손톱은 파란색과 녹색으로 물들였다. 이상화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손톱 손질을 받는다.

 

소치 겨울올림픽 개막이 38일밖에 남지 않았다. 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25·서울시청)211일 오후 945(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센터 스타트라인에 선다. 어느새 이상화는 세계 여자 빙속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됐다. 지난해 12012~2013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6차 대회에서 3680으로 개인 첫 세계기록을 세운 그는 이후 세 차례나 자신의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11월 월드컵 2차 대회 2차 레이스에선 3636을 기록하며 10개월 사이에 0.44초나 단축했다. 4년 전 밴쿠버 올림픽에서 이상화가 딴 금메달은 도전의 열매였다. 이번엔 챔피언의 자리를 지켜야 할 입장이다. 금메달 후보 1순위로 꼽히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텐데도 그는 참 씩씩했다. 지난해 1227일 태릉선수촌 챔피언하우스에서 만난 이상화에게서 스프린터로서, 또 여자로서의 행복과 고민을 살짝 들을 수 있었다.

 

-2014년이 밝았습니다. 새해 소망은 당연히 금메달인가요.

 

글쎄요. 환상적인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소치 올림픽에서 어떤 메달이든 따게 된다면 성공적인 한 해일 것 같아요. 결과에 상관없이 재미있게 놀다 오려고요.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면 2014년은 100점을 채우는 한 해 아닐까요? 많이 응원해주세요.”

 

-세계기록을 연이어 세웠습니다.

 

정말 잊지 못할 시즌이에요. 세계기록을 그렇게 많이 세울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시니어 대회에 처음 나갔을 때 세계의 벽이 높다는 걸 느꼈고,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았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계속 1등을 하니까 짜릿한 기분이 들었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이 분위기를 소치에서도 이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세계기록은 제 자부심이에요. 한동안 안 깨졌으면 좋겠어요.(웃음)”

 

-훈련할 때 말고는 요새 어떻게 지냅니까.

 

그냥 자요. 대회가 계속 있었고, 시차도 계속 바뀌어서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어요. 중간에 자주 깨거든요. 한 번도 안 깨고 푹 자 보고 싶어요.”

 

-낮에 시간이 빌 때는 뭘 하나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손톱 관리를 받아요. 유니폼 입고 스케이트를 신으면 여자로서 꾸밀 수 있는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겉에 보이는 손톱을 예쁘게 꾸며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최근엔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었어요.”

 

-이상화 선수 허벅지 얘기를 참 많이들 해요.

 

사실 허벅지에 대해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게 싫어요. ‘꿀벅지라는 별명도 저에 대한 관심을 주시는 거니까 고맙기는 한데, 좀 그래요.”

 

-한참 재밌게 놀 나이인데 .

 

올림픽까지는 훈련에 집중하고 싶어요. 훈련이 끝나도 태릉선수촌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쉬죠. 태릉선수촌 식당에서 나오는 밥도 양을 조절해서 먹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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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죠? 18일부터 열리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도 불참하던데.

 

지난해 11월 세계기록을 세우고 사실 너무 아팠어요. 몸살이 심하게 걸려서 면역력도 많이 떨어졌어요. (도핑 테스트 때문에) 약을 함부로 먹을 수 없어요. 감기가 다 낫지 않아서 추운 날에는 진짜 조심해야 해요.”

 

- 고교 시절 토리노 올림픽부터 이번이 세 번째 올림픽 출전입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 처음 나가 보니까 다른 대회 때와는 분위기나 긴장감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5위에 그쳐 아쉬웠어요. 2010년 밴쿠버 대회 때는 경험이 쌓여서 좋은 결과를 만들었죠. 이젠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세 번째 올림픽을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에는 어땠나요.

 

“2010~2011 시즌에 안 좋았어요. 부담과 긴장을 이겨내지 못했죠. 그걸 이기는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뭘 해도 안 되니까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2011~2012 시즌에 그걸 이겨낼 방법을 혼자 찾았어요. 이후에 자신감이 많이 붙었고 더 큰 목표를 갖고 달릴 수 있었어요.”

 

-마인드 컨트롤에 성공했다는 얘기인가요.

 

많은 분이 금메달을 기대하셔서 솔직히 부담이 좀 돼요. 올림픽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아무도 몰라요. 저도 스타트를 앞두고 긴장해요. 얼굴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실수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있는 건 당연해요.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은 안 하는 편이에요. 마인드 컨트롤에 더 신경 쓰고 있어요.”

 

-체력적으로 도움이 된 훈련이 있나요.

 

사이클요. 어휴, 진짜 힘들었어요. 중간에 내리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흐름이 끊어지면 안 되니까 그냥 막 탔어요. 주어진 일에 무조건 최선을 다하거든요. 그래서 끝까지 해냈어요. 사이클 훈련이 기록 단축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훈련을 참 독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여름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초등학생 때부터 해온 노력이 아까운 거예요. 부족한 점이 많은 제가 여기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었어요.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네요.(웃음) 제가 스피드 스케이팅을 좋아하는 이유는 노력한 만큼 기록이 정직하게 나오기 때문이에요.”

 

-소치에서 이상화 선수의 최대 라이벌은 누구죠.

 

“(곧바로) 저예요!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나오니까요. 다른 경쟁자들을 의식하기 전에 일단 저부터 방심하지 않고 잘 준비해야죠.”

 

=김지한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이상화가 말하는 이상화]

빙상장 얼음처럼 쿨한 성격 / 경기 전날엔 클래식도 듣죠 / 살살 녹는 회 진짜 좋아해

 

가장 잘 먹는 음식은 일식이다.

회가 입에 살살 녹아요. ~짜 맛있어요.”

 

내가 스케이트 외에도 잘하는 운동은 배드민턴이다.

“(갑자기 떠오른 듯) ! 배드민턴 . 친구들하고 좀 치는 편이에요.”

 

스케이트를 안 탔다면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스케이트 말고는 특별할 게 없어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을 것 같은데요.”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다.

볼 때마다 재미있더라고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출연해보고 싶어요.”

 

미모를 위해 피부과를 다닌다.

빙상장에 계속 있으면 피부가 건조해져요. 시간 나면 피부과에 가서 관리 받아요.”

 

경기 전 나는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신나는 노래를 많이 들어요. 경기 전날 마음에 진정이 안 될 때는 클래식을 듣기도 해요. 발라드는 처져서 안 들어요.”

 

내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쿨하다.

빙상장 얼음 같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모태범·이승훈은 변함 없는 친구들이다.

같이 있으면 제가 홍일점이니까 참 좋아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인데 이번 올림픽에서도 다들 잘될 거예요.”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밴쿠버 올림픽이다.

그냥 모든 게 좋은 기억밖에 없어요. 밴쿠버 올림픽 덕분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요.”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올림픽이다. 

“(기다렸다는 듯) 지금까지 올림픽을 목표로 달려왔어요. 그 다음 목표는 나중의 일이니까 그때 가서 생각할 거예요. 지금은 무조건 올림픽!”

 

[중앙일보] 입력 2014.01.01 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