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버마재비

풍월 사선암 2013. 12. 14. 00:08

 

버마재비

 

버마재비를 아시는지요? 버마재비는 사마귀를 뜻하는 북한말이지요. 한문으로는 당랑(螳螂)’이라고 합니다.장자(莊子)<외편(外編) 산목편(山木篇)>당랑박선(螳螂搏蟬)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 말은 지금 당장의 이익만을 탐하여 그 뒤의 위험을 알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죠.

 

어느 날 장자가 사냥을 즐기고 있는데 남쪽에서 큰 까치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장자의 이마를 스치듯 근처 밤나무 숲에 앉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긴 그 까치는 날개의 길이가 일곱 자, 눈 둘레는 한 치나 되었죠. 까치를 한참 바라보던 장자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저 놈은 분명히 까치 같아 보이는데 저렇게 넓은 날개를 가지고도 왜 높이 날지 못하고 겨우 밤나무 숲에나 앉고, 저렇게 큰 눈을 가지고도 어째서 사람의 이마를 스칠 정도로 잘 보지 못할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장자는 옷깃을 걷어 올리고 재빨리 까치를 향해 화살을 겨누었습니다. 그런데 까치 주변을 살피던 장자의 눈에 실로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지요.

 

자기가 겨누고 있는 까치는 풀잎의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또 사마귀는 나무 그늘에서 세상모르고 맴맴 울어대는 매미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닌가(螳螂搏蟬)? 모두 자기가 노리는 사냥감에 정신을 빼앗겨 자기 몸의 위험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 ()를 추구하는 자는 해()를 불러들이는구나!”

 

장자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활과 화살을 팽개치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때 뒤쫓아 온 밤나무 숲을 지키던 주인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장자는 밤도둑으로 몰려 심한 욕설을 들어야 했죠. 까치를 겨누던 장자도 자기 뒤에서 자기를 노린 밤나무지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뒤 3개월 동안 장자는 자기 방에 틀어박힌 채 뜰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랑지부(螳螂之斧)’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당랑지부란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가로막는다는 뜻으로 제 분수도 모르고 강한 적에게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말의 출전(出典)은 역시장자<천지편(天地篇)> 그리고회남자(淮南子)<인간훈편(人間訓篇)>등에 나옵니다.

 

()나라 장공(莊公)이 사냥을 갔을 때 버마재비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공은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에게 물었습니다. “저 것은 무슨 벌레인가?” “사마귀라는 벌레입니다.” “그 놈의 벌레는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뒤로 물러설 줄을 모르는 놈으로 자신의 힘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를 가볍게 보고 마구 덤벼드는 놈입니다.” 장공이 말했습니다. “저 벌레가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천하무적의 용사가 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장공은 수레를 돌려 이를 피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어쨌든 버마재비는 부정적인 면으로 많이 회자(膾炙)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살이가 버마재비하고 아침부터 놀다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버마재비는 하루살이야! 벌써 저녁이 되었으니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루살이가 버마재비에게 물었습니다. “내일이 뭔데?”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기 때문에 내일을 모릅니다.

 

하루살이가 죽고 나니 버마재비가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만난 것이 개구리였죠. 개구리와 놀다가 가을이 왔습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버마재비야! 겨울을 지내고 내년에 만나서 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버마재비가 개구리에게 내년이 뭐야?” 라고 물었습니다. 버마재비는 내년을 모릅니다. 몇 달만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똑 같습니다. 아는 것만 알다가 갑자기 죽습니다. 아는 체, 잘난 체, 있는 체, 나름대로 열심히, 정신없이 살다가 그대로 딱 아는 그 만큼만 살고 죽습니다. 이제 금년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다보고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가 아는 것이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게 걸림돌은 되지 않았을까요? 혹시 내가 잘 못 알아 남을 그릇 인도하지는 않았는지요? 무얼 조금 안다고 남에게 피해는 물론 자신을 서서히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혹시 없는지요? 무어 돈 푼이나 있다고 으스대며 없는 사람들의 가슴에 못은 박지 않았는지요?

 

무얼 조금 안다는 사람은 저 버마재비 같이 무모할 수가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힘도 모르고 제 힘에 겨운 난처하고 삿된 경계(境界)에 끝까지 대결하여 싸우려 듭니다. 지혜 있는 사람의 눈에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죠. 지혜 있는 사람은 혹 무지 포악한 사람이 와서 시비를 걸면 슬그머니 그 경계를 피하였다가 뒤에 조용히 타이르듯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힘든 고비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는 그 고비를 억지로 뚫으려하지 말고 수월스럽게 돌아가는 것이 선책(善策)이고 지혜가 아닐 런지요.

 

 

첨부이미지

'행복의 정원 > 명상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산 정약용의 有生無生의 삶   (0) 2014.01.14
심오(深悟)한 漢字의 世界  (0) 2014.01.09
삶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0) 2013.11.30
人生의 세가지 싸움  (0) 2013.11.28
스님 얘기 하나  (0) 2013.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