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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 나승연, “감동은 지독한 연습에서 나온다”

풍월 사선암 2013. 10. 21. 21:45

[인터뷰]전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 나승연, “감동은 지독한 연습에서 나온다.”

 

어떻게 하면 멋지고 감동을 주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을까?’ 누구나 한번쯤 해봤음직한 고민일 것이다. 전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을 지낸 나승연은 그 해답을 알고 있다. 그녀는 하나의 프레젠테이션을 적어도 100번은 반복할 만큼 연습이 완벽을 낳는다Practice makes perfect’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프로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내 앞의 청중과 즐겁게 대화를 나눌까를 늘 생각하는 마음의 프레젠터.

 

오라티오 사무실 서재 앞에서 포즈를 취한 나승연 대표. 틈이 날 때마다 문학, 자기계발, 위인전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취미가 있다고 한다.

 

발표자와 청중이 하나로 묶는 것이 훌륭한 소통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바로 평창입니다!” “~!” 20117월 남아공 더반 IOC 총회에서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자 현장에 있던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었다. 12년에 걸친 3번의 도전 끝에 일군 승리였기에 기쁨은 더욱 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소통의 비결은 나눔이라는 마인드를 가진 프레젠테이션의 달인 나승연이 있었다.

 

조민지: 어떻게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이 되셨습니까?

나승연: 어느 날, 두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어요. 첫 번째는 전에 아리랑TV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의 전화였어요. 평창 유치위원회로부터 대변인이 될 만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다음날 유치위 사무총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지난 2002년에 제가, 여수엑스포 유치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를 봐두었다고 하시더군요. ‘유치위에 와서 비슷한 일을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어요. 처음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렇게 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대변인직을 맡게 되었죠.

 

안해석: 평창올림픽 유치 성공에 기여하신 이후 훌륭한 소통의 아이콘이자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승연: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라틴어 어원은 코무니카타communicata,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커뮤니케이션 하면 훌륭한 발표자가 청중에게 실수없이 유창하고 완벽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떠올리죠.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소통은 발표자와 청중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경청하는 것입니다.

 

꼬마 대사, 30년 후 한국의 스포츠 사절로

나승연의 아버지는 나원찬 전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다.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난 나승연은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 영국, 덴마크 등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낯설기만 하던 친구들과 말문을 트면서 정이 들라치면 전혀 다른 나라에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일은 열 살도 안 된 꼬마소녀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었으리라.

 

김은우: 유년시절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겪은 어려움은 없습니까?

나승연: 거의 3년에 한 번 꼴로 새로운 나라로 옮겨다니며 새 친구들에게 적응해야 했어요. 게다가 별로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다 보니,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경청을 통해 수줍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었어요. 낯선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질문도 하고, 그러면 또 무슨 대답을 하는지 듣고. 그렇게 하면서 비교적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

 

박영훈: 인종차별을 겪은 적도 있으시죠?

나승연: 그럼요. 처음 인종차별을 겪은 것은 아홉 살, 덴마크에서였습니다. 당시 덴마크는 한국 아기들을 많이 입양했기 때문에, 아시아인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대중교통을 탈 때나 자전거를 타고 갈 때면, 금발머리의 덴마크 아이들이 저를 보며 칭총 칭총하고 중국인 흉내를 내며 놀리더군요. ‘한국 아기를 입양하는 것은 개를 입양하는 것보다 싸하고 조롱을 받은 적도 있어요. 덴마크인들은 개를 굉장히 예뻐하는데, 그런 개들은 순종이라 값이 비싸거든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개에다 비유하지?’ 싶었어요.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서양에 알려진 아시아 국가는 중국과 일본 정도가 고작이던 시절, 한국이란 미지의 나라에서 온 검은 머리 소녀는 현지인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나마 한국에 대해 안다는 이들조차도 그녀가 나는 한국에서 왔어라고 하면, ‘남한이냐, 북한이냐?’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크게 실망했을 법도 하지만, 나승연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내가 꼬마 외교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한국을 알리면 되지하고 생각한 그녀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잡채, 불고기, 비빔밥 등 어머니가 만들어준 한국요리를 대접했다.

 

그로부터 30, 한국은 세계 8대 무역대국으로 성장했고 올림픽과 월드컵, G20 정상회의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인들의 눈에는 한국이 ‘6.25전쟁을 치른 나라’ ‘김치만 먹어야 하는 나라’ ‘교통체증이 심하고 시민들이 영어를 못 하는 나라정도로 치부되는 현실을 보며 그녀는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평창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이션은 발전된 한국의 참모습을 알릴 좋은 기회였다.

 

사람을 향해 호기심을 품으라.

2 12년간의 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나승연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과로 진학한다. 그녀는 어떻게 대학시절을 보냈을까?

 

박영훈: 흔히 대학시절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대학시절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나승연: 센추리(Century)라는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연습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배운 곳이 거기였습니다.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어느 영어말하기 대회에 참가해야 했어요. 석 달 동안을 연습했는데, 5분짜리 스피치를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석 달 간을 연습했습니다. 그냥 동아리 내부 학생들끼리 하는 대회였어요. 그런데도 지독하게 연습을 시키더군요. 그 전까지 저는 제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다른 네이티브 스피커들을 제치고 제가 우승을 했어요. 그 일을 통해 내가 결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연습을 했기에 이룬 성과였죠. 아주 큰 것을 배운 경험이었습니다.

 

유년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나승연의 친구는 거의가 외국인이었다. 하지만 센추리에서 활동하면서 그녀는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한국 학생들과 교분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즐겁고 유익한 경험이었다는 것이 그녀의 회상이다. 졸업 후, 그녀는 한국은행과 SBS 방송국 인턴을 거쳐 아리랑TV에 공채 1기로 입사한다.

 

나승연 씨는 당시 빼어난 미모와 유창한 영어실력 때문에 영어방송계의 백지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이 송창운 아리랑TV 홍보팀장의 귀띔이다.

 

조민지: 언론인이 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나승연: 한국의 참모습을 세계에 알리는 민간 대사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대해 에둘러 표현하는 BBC, CNN, <뉴욕타임즈> 등에 의존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영어를 통해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은 우리 힘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고요.

 

박영훈: 기자로 일하시면서 어떤 점이 가장 큰 즐거웠습니까?

나승연: 기자가 아니었더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는 거죠.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하나가 재즈뮤지션인 윈튼 마설리스Wynton Marsalis입니다. 늘 그의 음악을 동경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설리스가 워크숍과 공연을 하러 한국에 온 거예요. 그는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저는 무작정 그를 찾아가 얼굴 앞에 마이크를 대고는 죄송하지만, 질문 몇 가지만 할게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러시죠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일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안해석: 언론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이나 자질은 무엇일까요?

나승연: 사람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뉴스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거든요. 물론 자연에 의한 사건이나 천재지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천재지변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언론인으로서 가져야 할 첫 번째 자질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거나 쓸 때, 그 이야기를 접할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합니다.

 

100번도 읽지 않고 어떻게 감동을 주려 하는가?

2000년 아리랑 TV를 퇴사한 나승연은 2003년 오라티오를 설립, 현재 공동대표로 있다. 라틴어로 연설을 뜻하는 오라티오는 영어 프레젠테이션과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아리랑 TV 퇴사 후에도 쉬지 않고 방송 프로그램과 국제행사 MC를 맡아온 그녀이지만, 여전히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는 긴장된다고 한다.

 

김은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프레젠테이션을 하셨을 텐데요. 그래도 청중 앞에 서면 긴장되는지요?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나승연: 늘 긴장되지요. 프레젠테이션 장소로 가는 도중, ‘왜 이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고 했을까? 이걸 또 왜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일단 무대에 올라가 1~2분 정도가 지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제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응시하다 보면 프레젠테이션이 즐거워집니다. 그러면 긴장을 잊을 수 있지요. 하지만 긴장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준비와 연습입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고 연습도 안 되어 있다면, 긴장은 더욱 심해지죠. 그러면 프레젠테이션을 망칠 가능성도 커지고요. 긴장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연습입니다.

 

안해석: 프레젠테이션의 달인들은 하나같이 연습을 비결로 꼽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나승연: 평창 올림픽 유치위원회 발표자들을 예로 들어 볼게요. 8명의 발표자들이 모두 네이티브 스피커는 아니었습니다. 토비 도슨과 저만이 네이티브였죠. 하지만 그들은 유창하고, 분명하게, 확신에 찬 어조로 발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연습의 힘이었죠. 비록 그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영어였지만 10, 15, 20, 30, 40번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연습을 할 때마다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OOO , 이 부분은 바꿉시다. 발음이 제대로 안 되시네요.”

좋아요, 단어를 바꾸죠. 좀 더 간단한 걸로요.”

긴 문장은 잘 못 읽으시는군요.”

괜찮아요, 줄이면 됩니다. 두 문장으로 나누겠습니다.”

, 발표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그 부분은 너무 빨리 읽는데요.”

괜찮아요. 몇 군데 빼죠, . 좀 줄입시다. 이걸 다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계속 연습을 하다 보니, 다른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말하는 것과 다르네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 내용을 넣고 싶은데요.”

좋아요. 한 번 들어봅시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렇게 또 새로운 내용을 첨가했습니다. 연습을 하는 동안, 발표자들은 단순히 주어진 원고를 읽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원고를 갖게 된 것입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그들의 눈은 빛나기 시작했고 제스처까지 사용하게 됐습니다. 청중을 보면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암기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외우기만 한 사람은, 그 사람 눈만 봐도 표가 납니다. 하지만 평창 프레젠테이션의 발표자들은 충분히 연습을 했고, 원고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두 단어 정도 실수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말을 하는 것이니까요. 발표자들이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보며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김연아나 문대성 등 선수 출신들은 연습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어떤 선수도 신이 내린 재능만 갖고는 절대로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도 없이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김연아와 문대성은 프레젠테이션도 그렇게 연습했습니다. 여러분이 10번 연습했다면 그들은 100번을 연습한 것입니다.

 

Practice, Practice, Practice! 나승연이 프레젠테이션 강의를 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다. 이 말만큼 그녀와 그녀의 인생을 잘 나타내는 말이 또 있을까? IOC 총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평창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힘, 그 힘은 기교나 세련미가 아닌 한순간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은 성실함에 있었다. 그녀가 내일 또 어떤 새 프레젠테이션을 갖고 다가와 우리의 가슴에, 또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킬지 기대되는 이유다.

 

데일리투머로우 김성훈 기자 / 승인 2013.10.02

취재 | 조민지, 김은우, 박영훈, 안해석 캠퍼스 리포터 사진 | 홍수정 기자

 

나승연 대변인 PT 원본영상 [1] (2018 평창 동계 올림픽)